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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송이 부각

순남씨의 부엌에서 내가 컸다

열흘 전쯤 난생 처음  탐조 프로그램에 참가했었다. 장소는 서울 어린이대공원. 아니다. 어린이대공‘산’을 오전 내내 돌아다녔다. 어린이대공원 둘레에 그런 풀숲이 있을 줄이야. 사전 정보 없이 갔던 탐조 활동은 도시의 새를 모니터링 하는 프로젝트의 하나인 듯 싶었다.     


‘공원’이라고 해서 반바지를 입고 간 덕에 미상의 곤충에게 스무 군데 넘게 물린 자국이 종아리에 생겼다. 집에 있는 물파스로 진정이 되겠다는 생각은 오판이었다. 목요일 발생한 물림은 이틀 쯤 지나고 나니 퉁퉁 부어오르고 진물이 잡히기 시작했다. 토요일 저녁에는 야간 진료를 하는 병원에 가는 수선을 떨 수 밖에 없었다. 알러지 반응이란다. 벌레에 물려 알러지 반응이 날 수 있구나! 이렇게 면역력이 없어서야 시골에 가서 살 수 있을까.     


내 요즘 꿈은 새가 오는 집에 살아 보는 것이다. 새가 알아서 오는 집은 도시에 없다. 시골로 가야 한다. 시골집에는 텃밭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그래도 혹시라도 무엇인가를 심을 수 있는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생기게 된다면 맨 처음 기르고 싶은 채소는 들깨다. 서울 한복판에 앉아 새가 오는 시골집이며 텃밭이며 깻잎 기르기까지 헛된 상상의 나뭇가지를 키우고 있다. 생각이야 오만가지도 가능하다. 꿈이라도 꾸자.      


내 마음 속 시골집에 봄이 오면 들깨를 뿌리겠다. 깻잎 순이 나오면 솎아서 나물로 먹고, 잎이 제대로 크면 쌈으로 먹고 장아찌도 담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름이 사그러들 쯤에는 들깨송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와우. 들깨송이. 들깨를 심고 싶은 궁극의 목적.      


어린 깻잎순과 예쁜 깻잎은 얼마든지 돈 주고 살 수 있었다. 심지어 겨울에도 깻잎은 살 수 있다. 그런데 들깨송이는 살 수가 없었다. 팔지를 않는다. 광장시장에서도 본 적이 없다. 재래시장 튀김 코너에 가면 있으려나? 내 눈에는 보이질 않는다. 튀김이 아닌 부각으로도 눈을 돌려 보았다. 김부각, 다시마부각, 고추부각, 연근부각. 그런데 들깨송이 부각은 못 봤다. 어디 숨어 있느냐 들깨송이 부각.      


할머니는 들깨송이를 찹쌀 풀에 푹 담갔다가 빼서 창호지 위에 줄 세워 말리셨다. 들깨송이는 엄지손가락만큼 굵기가 있는 것이었다. 들깨송이가 그 정도 굵어지면 날 것으로는 먹을 수 없는 억센 놈들이다. 찹쌀 풀은 들깨송이 끝에서 줄줄 흘러내릴 만큼 묽게 쑤어야 나중에 튀겼을 때 튀김옷이 바삭할 뿐 아니라 들깨송이에 골고루 찹쌀 풀이 스며든다. 찹쌀 풀을 입은 들깨송이는 햇빛에 바짝 말려 두셨다. 그리고 식용유에 튀겨내면 바로 들깨송이 부각이 되었다.      


들깨송이 부각이 왜 이리 먹고 싶은지. 찹쌀 풀도 식용유도 다 있는데 들깨송이가 내게는 없다. 들깨송이는 들깨를 키워야 얻을 수 있다!     


작년에 막내이모가 텃밭 농사를 시작하신다고 했을 때 나는 들깨송이 타령을 몇 번 했었다. 막내이모의 기억에도 할머니표 들깨송이 부각이 저장되어 있었다. 몇일 전 이모로부터 연락이 왔다. 들깨송이가 피기 시작해 나를 위해 한주먹 따로 두셨다고. 이렇게 감사할 수가.      


꽁꽁 여며둔 비닐봉지에서 꺼낸 들깨송이는 정말 한주먹이었다. 어린 들깨송이는 엄지손가락이 아니라 새끼손가락의 반의 반 보다도 가녀렸다. 그래도 들깨라고 향기는 대단했다. 찹쌀 풀을 쑤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집에 있던 부침가루로 들깨송이를 골고루 무치고, 부침가루로 묽은 튀김옷을 만들었다. 그리고 식용유에 튀겼다!      


맛은 그럭저럭 식감은 영 아니다. 그래도 맛났다. 맛있었다. 이게 뭐라고. 수십년만에 다시 튀겨진 들깨송이를 먹었다. 아쉬웠지만 반가웠다. 다음에는 제대로 된 들깨송이 부각을 만들어 먹고 싶다. 그런 날이 내게 올까. 들깨송이는 들깨를 키워야 얻을 수 있다. 벌레물림에 대한 면역력은 어떻게 키우는 거지?


사진설명 : 막내이모에게 받은 들깨송이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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