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충랑 포도

순남씨의 부엌에서 내가 컸다

지난 주말 옥천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포도 농장에서 포도를 샀다. 막내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한 상자 사다 드리느냐 물어봤더니 “좋다”고 하신다.      


나는 포도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안 좋아한다기 보다 나 먹으려고는 잘 안 사게 되는 과일이 되어 버렸다. 포도를 먹을라치면 알갱이를 하나씩 입술로 물고 약간의 힘을 주면서 알갱이를 쏙 뺴 먹어야 하는데 이때 포도 껍질에 남아 있는 단물이 아까워 포도 껍질을 쪽쪽 빨 수밖에 없다. 단물과 함께 농약도 같이 입 속으로 들어오는 게 아닐까 하는 찜찜함이  내가 포도 구입을 망설이는 첫 번째 이유다. (사실 포도에 남아있는 ‘히꺼무리한’ 자국은 농약이 아니라 포도분이다.)     


두 번째 이유는 먹고 남은 포도 껍질은 금방 날벌레가 꼬인다. 어디서 등장하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날라 다닌다. 다른 과일보다 빨리 생기는 것 같다는 것이 나의 경험적 주장이다. 눈에는 보이는데 잘 잡히지도 않는 날벌레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부지런을 떨어야만 한다. 아이고 귀찮다. 그래도 먹겠다고 포도 알갱이를 통째로 오물거리면 포도 알의 부드러운 단맛이 끝날 때 쯤 포도 껍질의 시큼한 맛이 올라오면서 껍질의 질겅거리는 식김 만이 남아 어느 순간 저작활동을 중단케 하고 그대로 목구멍으로 꿀꺽 삼키게 한다. 끝이 좋지 않는 과일이다.      


포도는 즙으로 짜 먹으면 정말 맛나지만 즙으로 마시는 ‘순간의 기쁨’에 비해 착즙기계를 분리하고 찌꺼기를 처리하고 설거지하고 기계 말리고 다시 조립하는 후처리 과정이 싫어져 착즙기계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래저래 포도를 사지 않고 보낸 여름이 열 손가락을 넘었다.      


그래도 시골에 왔는데, 복숭아와 포도의 고장이라는 옥천에 왔는데, 뭐라도 사고 싶어 포도를 샀다. 포도를 파시면서 농장주께서는 여러 번 말씀하셨다. “캠벨(캠벨얼리)은 끝났고 다른 품종이니 한번 드셔 보세요. 많이 달지도 않고 좋아요. 포도를 흔들면 알이 후두둑 떨어질 거에요. 상한 거 아닙니다. 알갱이를 씻은 후 물기 빼고 두고 먹으면 한참 동안 먹을 수 있어요.”

      

옥천에서 산 포도는 서울까지 모셔왔다. 농부님 말씀대로다. 씨없는 포도라 먹기 편하고 당도가 엄청 높지 않아 오히려 맛나다. 내가 구입한 포도는 품종이 ‘충랑’이다. 살짝 옆으로 세면 충청도의 충과 포도의 랑에서 이름이 충랑이 되었단다.  ‘충랑’은  충북농업기술원에서 거봉과 켐벨얼리를 교배하여 개발한 우리나라 품종으로 2018년 품종 등록을 했다고 한다. 오호 자랑스러운 충청의 포도로세~~ 

(출처 : 월간원예 <신품종포도 ‘충랑’ 캠벨얼리 대체품종으로 기대   http://www.hort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43)      


포도를 사지 않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우리 집은 내가 어릴 때 포도농사를 지었다. 삼촌들이 특히나 포도를 징글징글해 했다. 어린이였던 나는 우리 집 포도밭에 가 본 적이 없다. 어디 고개 넘어 비탈진 산자락이라고 했다. 막내삼촌이 지친 낯빛으로 리어커를 ‘삐따닥하게’ 끌고 서 있던 빛바랜 사진이 기억난다. 삼촌들은 포도농사를 하느라 너무 고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포도를 안 좋아한다고 했다. 


포도를 우리 먹자고만 지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내다 파셨을 뗀데 판로가 어디었지? 우리 집이 포도농사를 더 이상 짓지 않았을 때도 큰 할아버지네와 이모할머니댁은 여전히 포도농사를 지으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여전히 여름이면 포도가 있었다.      


새집을 지은 자리에 있던 광(창고)에는 어린이인 내가 대여섯 명은 들어가도 남을만한 큰 독이 땅에 묻혀있었다. 포도주 전용 독이다. 포도주는 포도와 소주와 설탕이 들어갔다. 유독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설탕이다. ‘푸대’ 자루에 담겨 있던 백설표 설탕. 누런 광 바닥에 있는 커다란 검은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가던 하얀 알갱이들이 보석처럼 눈부셨다.      


우리 집 포도주는 당연히 레드와인이었다. 세상에 포도는 다 검붉은 줄 알다가 서른 살 쯤 미국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 집 포도가 켐벨얼리 종이었다는 것을. 할머니는 포도주를 손님상에도 내고 제사상에도 올렸다. 나도 아주 ‘쪼끔’ 테이스팅할 수 있었다. 달았다. 맛있었다. 달콤했던 포도주의 추억 때문에 매트하다던가 드라이하다던가 하는 온갖 미사여구의 와인에 익숙해지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모는 ‘충랑’포도가 맛있어서 주말에 농산물수산시장에 가서 다시 사보시겠단다. 충청도의 포도 ‘충랑 포도’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나는 올해는 되었고 내년에 다시 옥천에 가게 되면 충랑 포도를 사야겠다. 포도알 하나 입에 물며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작가의 이전글 닭개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