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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개장

순남씨의 부엌에서 내가 컸다

 육개장에 소고기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 머리 속의 전기회로가 살짝 꼬이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육개장의 육 肉 은 닭고기였다. 서울에서만 육개장에 소고기를 넣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원래 육개장이란 소고기를 푹 익혀 채소와 함께 빨갛게 끓여내는 탕이었다!     


아마도 소고기를 먹을 형편이 아니었을 것이다. 소고기는 제사나 명절 때 스치듯 사용하는 식재료였다. 더운 여름에 보양식으로 온 가족이 고기를 넉넉히 먹을 수 있게 하려고 닭으로 육개장을 만드신 게다. 닭 한 마리 잡으면 육개장 한 ‘도라무통’(드럼통)이 너끈히 나왔으니까.     


할머니가 닭을 직접 잡는 모습은 딱 한번 봤다. 새로 지은 집에서 였다. 부엌에 서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 나오면 수돗가가 있었다. 해가 서쪽으로 거의 넘어갈 무렵이었다. 닭이 할머니 손에 잡혀 있었다. 수돗가 옆 커다란 양은솥에서 물을 펄펄 끓고 있었다. 할머니는 칼로 닭의 목을 땄다. ‘닭목아지’를 잡고 펄펄 끓는 물에 닭의 몸통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데쳤다. 그러고 나서 닭의 깃털을 뽑으셨다.      


우리 집에는 닭, 개, 돼지, 토기 등이 살다 갔다. 소는 없었다. 동물농장처럼 한꺼번에 동물들이 다 있던 것은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식용으로만 동물을 키우신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에는 밥상에 올라오기도 했다.      

닭은 가끔 키워졌는데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옛날 집 안방에서 어느 추운 날 할머니는 할아버지 밥 위에 방금 나은 달걀이라며 생달걀을 깨서 할아버지 밥을 화산 분화구처럼 만들어 그 안에 톡 올리셨다. 내 기억에 약간의 참기름과 외간장을 곁들인 생달걀비빕밥은 할아버지만을 위한 것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심지어 나에게도 그런 호사는 없었다. 어른이 된 후 계란비빔밥을 먹을 때면 할아버지의 단독 생계란비빔밥이 생각나곤 했다. "생달걀은 비리다. 그래서 할머니가 내게 안 주신거야."

     

돼지도 우리 집에 있었다. 화장실 옆에는 커다란 아까시나무가 있었는데 그 아래가 돼지우리였다. 아까시나무가지에 하얀 꽃이 피면 아이들이 달달한 아까시꽃을 따려고 돌을 던지는 일이 생겼다. 할아버지는 돼지가 놀랄까봐 아이들을 불러 아까시 꽃을 따 주셨다. 돼지가 항상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 여름방학 때 돼지우리에 여러 마리의 돼지를 봤지만 그 때가 몇 학년 때였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개는 반려동물이었다. 집을 지킨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판단되는 몸집이 작고 귀여운 강아지도 있었다. 어떨 때는 발바리, 어떨 때는 세파트. 어떨 때는 바둑이, 어떨 때는 누렁이. 종을 바꿔가며 개들이 우리 집에 있었다. 개는 우리 집에 그냥 늘 있었다.      


토끼는 사연이 좀 있다. 우리 집 토끼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다시 우리 집 육개장으로 돌아가자. 할머니표 육개장은 닭을 삶는 것부터 시작이다. 삶은 닭은 살을 잘 발라내고 국물은 따로 두었다. 고기가 식으면 뼈에서 살이 잘 안 떨어지기 때문에 뜨거울 때 끝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커서 내가 해보니 손가락이 아프도록 뜨거워졌다. 닭개장을 만드는 날이면 나는 닭살을 바르는 할머니 앞에 턱을 괴고 앉았다. 할머니가 가끔 주시는 닭고기를 냉큼 잘 받아벅기 위함이었다. 할머니는 내게 닭살 바르는 일은 시키지 않으셨다.      


할머니표 육개장에는 부추가 많이 들어갔다. 서울에 올라와 먹은 소고기 육개장에는 부추 대신 파가 들어 있었다. 소고기도 아주 가끔 숟가락에 걸렸다. 우리 집 육개장은 닭고기일만정 고기는 많이 들어있었는데.      


사 먹어보려고 닭고기로 만든 육개장을 찾아보기도 했다. 삼계탕을 파는 식당, 닭곰탕을 파는 식당은 맛집도 많던데 닭으로 만든 육개장, 즉 닭개장을 파는 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제는 닭을 먹지 않지만 닭을 먹던 시절, 닭개장을 만들려고 일부러 삼계탕을 끓이기도 했다. 삼계탕보다 나는 닭개장이 더 맛있었다.    

  

삼계탕을 먹다가 남은 국물은 양이 작기 때문에 물을 추가로 넣어야 한다. 남은 고기는 잘게 찟고 국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로 밑간을 했다. 채소는 숙주, 파, 부추면 충분. 숙주가 없으면 콩나물을 넣었다. 대파도 처음에는 데쳐서 넣다가 나중에는 생으로 넣었다. 양념한 고기, 육수, 물을 넣고 끓이다가 채소를 넣고 팔팔 끓인 후 간을 소금으로 한 후 마지막에 양껏 부추를 넣어 한소끔 끓이면 된다. 부추를 넣어야 닭개장의 냄새가 내가 먹던 그 육개장의 냄새가 되었다. 후추는 먹기 직전에 뿌리면 향이 더 좋다.


요리 프로그램이 흔한 요즘도 닭개장은 무슨 별미처럼 소개되는 것을 본다. 다운 여름네는 이것저것 들어간 육개장 같은 음식은 “쉬 쉰다”며 걱정하셨던 할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할머니 이제는 음식 쉴 걱정을 안 하는 세상이 된지 오래되었어요. 그래도 조심할께요.”      


※이제 조류도 먹지 않게 되어 닭개장을 만들지 않다보니 음식 사진이 없다. 막내이모한테 부탁해봐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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