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남씨 부엌에서 내가 컸다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라도 내가 땅에 먹을거리를 심을 수 있다면 마늘을 심겠다. 한번은 키워보고 싶다. 마늘을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마늘이 힘들다. 생마늘이든 익힌 마늘이든 잘 안 먹는다. 회식만 하면 밤새 목이 아려오는 이유가 쌈장 속 생마늘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쌈장을 끊었다. 웬만하면 생마늘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는 반찬에도 손을 대지 않는다. 콩나물무침, 시금치나물, 배추 겉절이 등등. 아무리 몸에 좋아도 소용없다. 내 목에서 마늘은 오랫동안 아리다.
그럼에도 마늘을 키우고 싶다. 우리 집은 땅이 없었다. 포도농사를 짓던 땅이 조부모님 소유였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이야기다. 우리 집은 논농사를 짓지 않아 늘 쌀을 사 먹었다. 밭농사도 없었다. 내 기억 속 유일한 농사가 마늘농사다. 농사라고 하기도 그렇다. 우리 집은 ‘또랑’이라고 부르는 실개천이 집 울타리를 대신했다. 이 또랑은 장마가 끝나면 약간의 땅이 드러나곤 했다. 그 땅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늘을 심으셨다. 내 땅은 아니지만 누구의 땅도 아닌 그런 땅.
우리 집에는 문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대문이고 나머지가 이 또랑으로 나가는 쪽문이었다. 쪽문을 열면 바로 개울이 나왔다. 개울은 U자 형으로 움푹 들어간 지형에 흐르기 때문에 서너 걸음 조심히 내려가서 개울물을 건너고 다시 길로 올라서면 시장으로 가는 신작로가 쭉 뻗어 있었다. 이 또랑에서 고무신으로 송사리를 잡기도 했었다.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물이 말라 버렸기 때문에 송사리 잡이는 그만 두었다.
마늘 농사에서 나는 마늘종을 뽑는 미션을 부여 받았다. 생각보다 마늘종은 쉽게 뽑히지 않았지만 나름 재미가 있었다. 뽁뽁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늘종이 뽑혔다. 마늘종을 그냥 두면 꽃이 피는 것 같았다.
이제 생마늘은 안 먹지만 아니 못 먹지만, 마늘종은 먹고 있다. 주로 볶아 먹는다. 마늘종에도 아린 맛이 있기 때문에 볶기 전 끓는 물에 데치면 아린 맛이 줄어든다.
내가 마늘을 심고 싶은 이유는 따로 있다. 마늘 때문도 아니고 마늘종 때문도 아니다. 마늘잎 때문이다. 마늘, 마늘종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어디서든 살 수 있지만 마늘잎 사정이 그렇지 않다. 저장이 안 되는 모양이다. 마늘종이 나오기 전 잠깐 동안 재래시장에서 운 좋을 때 구할 수 있다. 마늘잎은 억세면 먹기 힘들다. 여린 마늘잎은 더욱 구하기 어렵다. 여기 올린 마늘잎 볶음 사진도 작년에 찍어 둔 것이다. 올해는 아직 마늘잎을 못 샀다.
할머니가 마늘잎이나 마늘종을 볶으실 때는 그냥 생으로 바로 후라이팬 직행이었다. 미리 데치고 하는 것은 없었다. 마늘종은 몰라도 마늘잎은 생으로 볶는 게 낫다 싶다. 그래야 잎의 셀룰로이드가 더 살아 있어 씹는 맛이 난다. 마늘잎 볶음의 약간의 호사라면 멸치를 투입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다 할머니가 하시는 거 보고 배운 것이겠지. 짭쪼롬하고 살짝 알싸한 맛과 고소한 맛이 겹친다.
밭에 마늘 심는 일은 꿈같은 일이다. 실현 가능한 일 먼저 하자. 오늘 바로 영천시장에 마늘잎 나왔나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