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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혜진 Sep 18. 2020

인성이 중요한 이유

하버드 대학교가 발표한 입시 절차와 심사 항목을 보면 공식적으로는 인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듯합니다. 항목별 심사 비중을 보면 학업성적이 30%, 특별활동과 에세이 부문이 각각 25%, 추천서 15%, 인터뷰 5% 라고 합니다. 에세이와 비교과 활동을 합한 비율이 학업 성취도보다 높습니다. 선호하는 에세이 주제는 공부나 비교과 활동과 관련된 서술보다는 인성이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해석하자면 하버드가 원하는 인재는 학업 성취도는 기본이고 열정과 리더십, 소통과 설득 능력까지 갖춘 ‘사회인’이라는 뜻입니다. 더불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긍정적이라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을 동문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인성이 좋지 않을 때 , 세상에 적개심을 품을 때,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을 때, 세상과 소통하는데 서툴러서 혼자만의 세계에서 왜곡된 세계관을 갖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는 알고 싶지 않습니다. 무섭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인물은 역사나 현실 속에서 얼만든지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히틀러의 일생을 보면 영락없이 그런 인물입니다. 최근에도 심심치 않게 범죄를 저질러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천재들이 있습니다. 조건만 갖춰진다면 히틀러에 버금가는 악행을 저지를 인간들입니다. 그중에는 하버드를 비롯한 명문대학교 출신도 제법 많습니다.      


유나바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하버드 대학교 출신 테러리스트가 있습니다. 1942년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16세에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한 시어도어 카진스키입니다. 지능이 높지만 사회적응에는 실패한 전형적인 은둔형 천재입니다. 너무 어릴 때 본인보다 서너 살 나이 많은 학생들과 기숙사에 살며 어려운 공부를 했으니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았으리라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미시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24세 나이에 UC버클리대학의 수학 교수로 임용됩니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교수직을 스스로 사임하고 공장 노동자살아가다가  실연의 아픔을 겪은 후 외딴곳의 작은 오두막에 칩거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살던 지역에 부동산이 개발되자 자신의 영역을 공격당한 듯 분노와 적개심을 품고 테러리스트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는 폭탄을 제조해 대학교 교수나 항공사 등에 보냈습니다, 범죄는 점점 대담해져 자신의 신념을 담은 선언문을 언론사에서 발표하도록 피해자를 협박하기에 이릅니다. 그의 테러 행각으로 세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습니다만 한동안 그를 잡지 못해 미국 전역이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친형의 악행을 눈치챈 동생 데이비드 카잔스키의 제보로 검거됩니다. 결국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1998년 1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백인 중산층에서 유복하게 자란 천재지만 세상과 불통하고  삐뚤어진 세계관을 가지게 된 카친스키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입니다.  


문제는 자생적 테러리스트인 외로운 늑대들이 지금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고 카진스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데 있습니다. 세상을 자기들의 방식대로 바꿔보고 싶어 하는 자들 눈에는 천재 테러리스트가 영웅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카진스키의 사건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기억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2013년 12월 , 하버드 대학교 교정이 폭탄테러 위협 때문에 발칵 뒤집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학내에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이메일을 학내 경찰과 교직원에게 보낸 것입니다. 마침 학기를 마치고 짧은 겨울 방학이 시작될 즈음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기말고사 준비에 여념이 없을 시기입니다.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1년 8개월 만 인데다 이슬람 무장 단체의 협박에 자주  시달리던 미국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빠르게 연방 경찰이 투입돼 첨단 수사기법으로 범인을 찾아냅니다. 그런데 범인의 정체와 범죄 이유가 의외였습니다. 하버드 대학교 2학년 ‘김 씨’가 기말고사 시험을 보기 싫어서 시험 일정이 취소되길 바라는 마음에 저지른 거짓 제보였습니다.


장난처럼 시작된 일이지만 사안이 엄중하지라 그 즉시 ‘김 씨’는 구속되었습니다.


나는 큰딸이 하버드 대학교에 원서를 제출한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이뉴스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관심 있게 사건의 뒷이야기까지 수소문했습니다.  얼마 후 한화로 1억 정도의 보석금을 내고 김 씨가 풀려났다는 소식을 하게 됐습니다.


 김 씨는 어떤 사람일까. 정말 고작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다른 사연이나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궁금했습니다.


대부분의 하버드 생이 그렇듯 김 씨 역시 매우 뛰어난 인재였더군요. 지인들의 평판에 의하면 하버드에서도 성적이 우수하고 친구관계에도 문제가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엘리트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고 하니 좋은 가정교육을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했을까요. 어쩌면 지나치게 과감하고 지능이 좋아서  들키지 않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세상에서 시험 점수가 가장 중요해서 위험을 소홀히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나는 그가 저지른 행동의 진짜 이유와 생각이 궁금합니다.  


그런데 과연 하버드는 그 청년의 범행에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하버드는 재학생을 최대한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학교입니다. 6년 졸업률이 98%에 달할 정도로 한번 하버드 학생이 되면 어떻게든 졸업을 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 씨’의 사안을 하버드가 어떻게 처리할까 궁금했습니다.


 사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들은 뒷이야기로는 ‘김 씨’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더군요. 나는 김 씨가 법적인 대가를 치르고 나면 하버드가 복학을 허락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험 점수에 연연하느라 학교와 지역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머리 좋은 인재를 용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중요하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그때 행동을 후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능이 좋고 계획한 것을 실천할 능력까지 갖춘 사람이 왜곡된 세계관과 잘못된 판단을 한다면 수많은 사람이 곤경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관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은 개인적 성공조차 이룰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공감 능력이 없다고 해도 돈을 잘 벌거나 유능한 인재로 자리매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는 사람이라면 그 성공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위의 두 사건을 보면서 두 인물 모두 공감에 서툴렀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인성은 소통과 공감과 배려 없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세계를 중요하게 여기느라 남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정당한 논리를 내세워도 범죄자나 파렴치한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요.      


하버드를 비롯한 많은 대학들이 지원자의 인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를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하기에 이보다 더 쉬운 해답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 딸이 미래형 인재의 덕목을 모두 갖췄다거나 인성이 훌륭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비교과 활동이나 에세이를 통해서 일관되게 보여준 내 딸의 공감 능력을 높이 산 것은 아닐까 생각될 뿐입니다.      


미국 대학의 입시제도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일부 진보적인 대학의 경우 대학 진학의 기회를 쉽게 얻지 못한 약자와 빈곤계층에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달라지는 인재상에 맞춰 학생을 선발하기보다 인재의 개념을 바꾸어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변화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변화해야 한다는데 동의합니다.  


가끔 서구형과 한국형 인재의 차이를 실감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공통점도 많습니다. 나는 내 딸들이 세계의 문화와 가치관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며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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