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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혜진 Mar 08. 2021

질문하기


내 큰딸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모를 때는 물어라. 질문을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들어라. 내 딸은 자신이 궁금한 것은 물어야 직성이 풀리고 누군가 자신에게 질문을 하면 상대가 만족할 때까지 답변해줘야 다리 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 딸은 캐나다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질문을 많이 하라도 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한국에 와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선생님들을 제법 귀찮게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늘 너무 질문이 많은 아이가 걱정스러워 질문을 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대학교 생활을 할 때 한 교양과목 교수로부터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 같다.” 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내 눈에는 과하다 싶게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찾아가고, 도움을 요청하는 내 딸이 하버드 대학교 교수 눈에는 수동적 학생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내 딸 말에 의하면 다른 아이들이 워낙 질문을 많이 해서 상대적으로 질문을 적게 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 자신도 제법 많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질문을 할 것도 찾기 위해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교수는 질문을 하지 않는 학생은 미리 예습하지 않아서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 모르거나, 교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을 때뿐이라며 질문을 더 많이 할 것을 독려했다고 합니다.      


내가 자라던 7~80년대의 대한민국은  질문하면 안 되는 사회였습니다. 지시하면 따르고 가르치면 의심 없이 외우는 게 '정상'이었습니다. 건방지거나 태도가 불량한 사람만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여고생 시절 하얀 여름 하복을 입고 교실에서 수업을 듣던 무더운 여름날,  어떤 아이가 수학 선생님께 왜 하필 미지수를 x로 쓰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 수학 선생은 늘 학생들에게 등을 보이고 혼자 칠판에 문제만 풀다 수업을 마치는 분이었으니 반 아이들 모두 무료하게 선생님의 뒤통수만 바라보다가 일순간 모두 다 같이 화들짝 놀라 질문 한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질문의 내용이 무엇이든 , 교실 안에는 작은 활력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받은 선생님은 아이를 교탁 앞으로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아이의 볼 따귀를 거칠게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교실 뒷문에 다다를 때까지 한 발자국씩 밀고 나갔습니다.  제법 덩치가 큰 아이였지만 여고생이 당하기엔 과하게 수치스럽고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고 선생은 출석부를 챙겨 아무렇지도 않게 교실을 나갔습니다. 하지만 교실에 남아있던 누구도 감히 그 아이를 선뜻 위로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양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했습니다. 그 아이도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을 뿐 이상하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모두 다 같이 너무도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닥트리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질문을 한 아이는 무료한 수업 시간에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했을 뿐인데 선생님의 심기를 몹시 상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수학 선생님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네가 그건 알아서 뭐할래, 평소에 공부도 못하는 게 꼭 수업 분위기 흐리는 쓸데없는 질문이나 하지." 했던 말이 지금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 반 학생들 중 아무도 그 선생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교실 분위기는 언제나 쥐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선생은 귀 찮은일 없이 일 년 내내 칠판에 자기 혼자 문제만 풀다가 수업을 마치곤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구잡이로 얻어맞지 않으려고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은 수학을 잘하지 못했고 잘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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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너무 오랫동안 질문을 할 수 없는 사회가 지속된 탓인지 여전히 대한민국은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입니다.  보수적인 사회, 소통하지 않는 사회, 상명하복의 사회에서 질문을 할 수 있는 자유는 없습니다.  




한때 한국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영상이 한편 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콕 집어 한국인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겠다고 했는데 아무도 질문하지 않자 한 중국인 기자가 나서서 질문을 하는 내용입니다. 나는 그때 그 자리에 있던 한국 기자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습니다. 주목받는 게 두려웠을 테고 자칫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을 겁니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질문이 많은 사람은 타인의 눈총을 받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보느라 궁금한 것이 있어도 선뜻 질문하지 못합니다. 자칫 맥락 없는 엉뚱한 질문을 한다는 핀잔을 들을까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남들은 다 아는 내용은 혼자만 모르고 있거나 주제나 분위기에 어긋나는 '쓸데없는' 질문을 하게 될까 봐 함부로 질문을 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질문은 일종의 반항입니다. 질문은 기존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는데서 출발합니다. 서열화가 고착된 한국 사회에서 질문은 윗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질문하면 학생은 답변하고 집안 어르신이 질문하면 자손들은 답변합니다. 그러니 감히 세계 최강 국가의 대통령에게 대들듯이 질문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높은 어른과 그런 대화를 해본 적이 없으니 감히 어떻게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강연도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고 그 자리에 모인 기자들은 '대화'에 초청된 것입니다.  서구에서 강연자는 신랄한 질문 앞에 적절한 답변을 준비하지 못하면 실력마저 의심받습니다.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 같은 성인들은 제자들의 바보 같은 질문에도 현명하게 답변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지도자는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바마도 모든 강연에서 질문을 받고 명쾌한 답변을 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날 한국 기자를 꼭 집어 질문을 요구한 것이 무슨 의도였던 간에 한국인 기자는 질문을 준비했어야만 합니다. '대화'에 초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질문을 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있던 한국인 기자들은 정말 궁금한 것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기자들은 평소에 세계정세와 한국과 미국의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는 직업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질을 탐구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의심하거나 비판해본 적 없이 현상만을 뉴스에 내보내는 기자였다면 평소에도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아는 것, 보이는 것, 들리는 것만으로 기사를 쓰는 게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마치 시험 성적을 잘 받기 위해 공부하는 고등학생처럼 받아쓰기해서 '정답'만 기사로 내보내는 게 익숙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질문을 하려면 의문을 품어야 하는데 의문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한국도 점점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질문이 없이는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질문을 통해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인생에서도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항상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게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인생을 왜 성실하게 끝까지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물 위에 뜬 나뭇잎처럼 흔들리기 쉽습니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변을 찾으려면 ’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생각이 많으면 공부에 방해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이들에게 대화하는 법,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 데는 사회에서 만난'공부 잘했던 바보'들 덕분입니다. 이민, 유학 업무를 하다 보니 사회적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며 살아온 중년의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대화하는 법을 모르고 특히 질문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기업의 한 부서에서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일수록 세상 물정에도 어둡고 대화를 할 줄도 몰랐습니다. 집에서는 배우자가 회사에서는 부하직원이 여러 가지 시중을 들어주는 사람이 퇴직 후 이민을 하겠다고 하면 나는 그들을 만류하고 싶어 졌습니다. 자산을 잃고 오도 가도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감이 충만해서 잘못된 확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 중 어떤 사람은 나에게 질문하지 않고 해답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있고 엉뚱한 질문을 하고 바른 답변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화에도 서툽니다. 상명하복의 관계에서 지시하고 보고를 받는데 익숙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판단조차 잘하지 못합니다. 내 회사 동료는 그런 사람을 '전문직 바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사람도 이른바 성공이 가능한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는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다양한 질문을 했습니다. 아주 사소한 질문을 장난처럼 묻기도 하고 진지하게 의견을 듣고 싶어 집요하게 파고들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내 질문에 답변을 하다 보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다시 확인하고 뒤집어 생각하기를 바랐습니다. 때로는 기존에 알고 있던 신념이나 확신을 의심하게 하는 질문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신앙적 관점에서 신의 존재를 무조건적인 믿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아이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답변의 근거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공부를 왜 하는지 물었을 때도 처음에는 뻔한 답변만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를 삶의 목표와 연관 짓고 가치관을 점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답변하기 난처한 질문도 하고 쉽게 답변할 수 없는 심오한 질문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자신과의 대화를 하며 질문하고 답변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생각이 많아졌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내 딸들이 의문을 많이 갖고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생활의 기본인 대화의 물꼬를 트는 가벼운 질문부터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진진하게 자문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질문까지, 늘 질문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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