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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May 26. 2023

채용 시 핏(fit)을 보는 게 모두를 지게 만든다

lose-lose 게임

1.

스타트업에 오고 나서 많이 듣는 얘기 중 하나가 사람 채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0명을 면접 봤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100명 이력서 받아보면 10명 정도 면접보고 그중 한 명 마음에 들까 말까 한다 등. 규모도 있고 잘 나가는 회사임에도 그렇단다.


2.

우리 회사도 작년에 IT 포지션 채용을 오랜 시간 진행하며 수십 명을 면접 봤는데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딱 두 명, 그리고 실제로 채용한 건 기대치가 낮은 신입 사원이었다. 뽑았더니 다른 회사 가버린 사람도 있었고. 


3. 

왜 이렇게 채용이 힘든 걸까? 곰곰이 생각하며 오랜만에 휴먼GPT를 돌려봤다.


4.

스타트업에는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많다. 스타트업으로 특정 짓지 않아도 요즘 구직자들은 개성이 강하고 또 그걸 인정해 가는 사회 분위기이다. 그런데 개성이 강한 사람들을 섞어 놓기만 하면 문제가 생긴다. 회사에서도 성격이 맞는 사람들을 뽑으려고 한다.


5. 

그래서 회사와 구직자가 서로 핏(fit)이 맞는지 따진다. 구직자는 블라인드 찾아보며 회사가 나의 개성을 만족시킬지 찾아보고 회사도 레퍼런스 체크 돌리며 구직자가 기존 문화와 어울릴지 검증한다.


6.

핏이 잘 맞으면 좋은 시너지가 나고 모두가 해피할 것이다. 그런데 서로 잘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연애하다 결혼한 부부도 궁합(=핏)이 안 맞아서 이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회사와 구직자의 관계가 딱 들어맞는 경우가 있기나 할까? 면접이라는 몇 시간짜리 과정을 통해 핏을 검증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어차피 면접 볼 때는 서로 가면을 쓰고 만나지 않던가.


7.

그러다 보니 회사는 사람 뽑기가 힘들고 구직자는 갈만한 회사가 없거나 취직이 잘 안 된다. 서로가 루즈-루즈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8.

10여 년 전만 해도 좀 달랐다. 회사가 갑, 구직자가 을. 회사는 사람을 뽑을 때 회사 문화에 구직자가 맞추도록 강요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적당히 부족하거나 안 맞는 것 같아도 본인이 알아서 맞추겠지 하며 채용했다. 구직자도 회사에 맞춰 간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서로의 니즈가 낮으니 채용이 쉬웠다. 한 달이면 사람 뽑고 이전 회사 인수인계기간 주고 출근시킬 수 있었다.


9.

과거처럼 강압적인 분위기가 좋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떻게 됐건 현재와 같은 개성과 핏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흘러 왔을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인 것이다. 그래도 아쉬운 건 그때는 채용이 훨씬 쉬웠다는 점. 면접 때 새롭고 다양한 사람을 만난 본다는 설렘도 있었다. 지금은 채용한다고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핏이 맞는 사람을 어떻게 찾지?


10.

문제는 채용이 어렵다면 새로운 대안이 빠르게 대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chatGPT 같은 생성형 AI들. 사람 뽑기도 힘든데 뽑아서 적응시키고 리소스 낭비할 시간에 AI 돌려버리면 된다. AI의 핏은 단방향이다. 내가 AI에 맞출 거 있나? AI가 나와의 핏만 맞추면 된다. 


11.

chatGPT가 한 달에 2달러다. 연봉 24달러, 우리돈 3만 원. 4대 보험 없다. 복지도 필요 없고 24시간 일 시키는 게 가능하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앞으로도 완벽하지 않을 거라고 상상하기 힘들다. 


12.

그렇지 않아도 생성형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게 아닐까 두려운 시기인데 채용 과정 중 핏 맞추는 문화가 그걸 빠르게 앞 당기는 건 아닐까? 구직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좋을 게 없고 회사 입장에서도 리스크다. 사람을 AI로 대체하는 일에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알 수 없다.


13. 

AI로 대체된 회사의 미래를 간단히 그려보자. 연봉 3,000만 원 세 명을 고용하려던 회사가 연봉 1억 한 명을 고용하고 AI를 이용해 세 명분을 대체한다. 특별한 한 명을 고용해야 하기에 사람 뽑기는 더더욱 힘들 것이다. 거기다 그 한 명이 인수인계 없이 퇴사해 버리면 회사 업무는 그대로 스탑이다. 세 명이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이 인수인계받을 수 있지만 한 명만 있을 때는 불가능하다. 


14. 

우리 이제 서로 핏 보지 말고 쉽게 지원하고 채용하며 AI가 대체할 미래를 막아봐요. 이럴 순 없다. 앞으로 더 고도화되면 됐지 과거로 돌아갈 일은 없다. 다만 그 핏이라는 거, 모두를 지고 있게 만든다면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더 좋은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 봐야 할 시기인 것 같다. 


15.

핏 맞추기 힘들어 사람을 안 뽑고 AI로 대체한다면 그것 참 무서운 세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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