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에서 살아남기
미국에 도착한지 거의 두 달이 되었다. 바빴다고 하기엔 애매한 시간이었다. 몸은 안 바빴는데 정신이 바빴다고 해야 하나. 두 달간의 생활을 요약하면, '어찌저찌' 정도가 되겠다.
어찌저찌 집을 계약하고 열쇠를 받았다. 한국과 다르게 가스나 전기나 인터넷이나 보험을 다 알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초반에 골머리를 좀 썩였다. 전화 통화를 하고, 내 영어 실력에 대해 절망하고, 다시 어떻게든 전화 통화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은행 계좌를 만들고 주민등록증 비슷한 것을 받고 운전면허증을 교환했다. 이케아에 가서 가구도 사고 카바나에서 차도 구매하고. 대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저찌 다 해냈다.
대학원 첫 두달은 내 상상과 너무 달랐다. 우리 과는 한 달 동안 자신에게 맞는 교수를 찾으러 다녀야한다. 원하는 교수에게 어필을 하고, 대학원생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내향적인 인간에게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특히 영어로 대화한다는 것이 이렇게 피곤할줄 몰랐다. 읽고 쓸 줄 아는 것과 듣고 말할 줄 아는 것은 천지차이다. 특히 듣는 것이 제일 피곤하다. 한국에서야 적당히 다른 생각을 하며 흘려 들어도 대충 알아 듣지만서도, 여기서는 모든 힘을 집중하지 않으면 이해가 어렵다. 사실 집중해도 이해가 안되는데. 결국 나는 잡담을 듣든 세미나를 듣든 모든 체력을 다해 들어야만한다. 당연히 집에 오면 녹초가 된다.
과 수업도 쉽지 않다. 사실 수업에 집중하는 것은 학부 때나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여기서는 꼭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공부가 아니라 연구를 하고 싶어서 왔는데 연구는 커녕 학과 수업에도 허덕인다. 하기사 학교를 떠난지도 5년이 다 되어가는데 쉽게 될리가 없다. 또 생물 수업이 아니라 화학공학 수업을 듣고 있는데 (필수 수업이다) 화공 베이스가 하나도 없는 나로써는 머릿속에 물음표만 떠오른다. 수 많은 느낌표들 사이에서 혼자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기분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 사실 물음표가 말줄임표로 바뀐지는 좀 오래 됐다.
연구를 위해 논문을 읽는다. 논문 읽는 것은 수업 과제를 하는 것보다 행복하다. 내 일과 관련이 있으니까. 오랜만에 아이디어를 짜보고 실험을 설계하고 하니 옛날 생각이 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과제에 시간을 쏟아야 한다. 초반에는 어찌저찌 따라 갔는데, 지금은 마음이 꺾여버렸다. 과제 점수를 봤다. 꼴등 근처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오, 살면서 처음 보는 점수. 수치심과 열등감과 자괴감. 수업이 아니라 연구가 중요하다고 정신 승리를 했지만 결국 그날 혼자 맥주 여섯 병을 마셨다.
이곳에선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인사를 한다. 굉장히 어색하다. "How's it going?"을 처음 들었을 때는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 만나는데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왜 궁금한걸까. 혹시 전에 만났는데 내가 얼굴을 못 알아보는건가 싶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고 요즘은 뭘 하고를 주절주절 말했다. "How's it going?"이 그냥 "Hi"랑 비슷한 인삿말인줄은 결국 구글 검색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하기사 처음 보는 사람의 인생이 궁금할 일이 뭐가 있겠나.
어떻게 지내?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 모든게 다 어렵고 새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