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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구공오 Apr 07. 2020

밤이 되면, 사랑을 놓자!

앓던 사랑의 정의에 대해 말한다.

여전히, 내 마음을 앓게 만드는 이름이 있다. 무던히 잊으려고 노력했건만, 너는 내 학창 시절의 기억 끝자락에서 아직도 내 이름을 부른다. 저 멀리서. 기어코 외면하려 했건만, 끝내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방송부를 하기보다 더 전에 알았던 그 소년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또한 사랑받기에 충분하였다. 그땐 꿈을 이루는 것에 온 신경을 쏟았던 난, 소년에 대한 내 이름 모를 감정을 그냥 덮어놓고, 가끔씩 바라보기만 하였다.



감정에게 '너에게 이름을 붙이거나 널 정의하지 않을 거야. 넌 그냥 그대로 내 곁에서 시간과 함께 천천히 흘러가면 돼.' 라는 무책임한 말로 지우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너에 대한 소문과 사랑 이야기들이 나의 감정을 붉게 물들여놓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얄미운 너의 사랑놀이로 인해, 내 붉은 감정이 심한 난도질을 당하였다. 물론, 네 잘못은 아니지만, 지금도 사랑에 참 약한 나라서 너의 탓으로 돌리고 싶다. 그 소년은 짧은 사랑놀이도 얄미웠지만, 처음 만나던 순간도 미웠던 거 같다.



우리 고등학교는 남녀 분반이었고, 1학년 1학기 동안은 여자아이들은 따로 자습실에서 이동하여 야자를 했었다. 야자 감독 선생님들이 관리하기 수월하도록, 위층 남자반이 내 반에 와서 공부를 하였다. 그때, 그 소년은 입학 첫날부터 유명하여, 여자아이들의 입에 오르락 내렸다. 내 친구들은 그 소년을 보러 가자고 나를 졸랐지만, 난 그저 내 책상 서랍 속 책들을 가지려 가야 한다는 이유를 내걸고, 반에 갔었다. 관심도 없었다. 난 지금 내가 처음으로 저항한 꿈이 무척이나 소중했으니까.


 난 내 책상으로 다가가려 하다가, 나와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남자아이를 안는 소년을 보았다. 그 둘의 키 차이 때문에, 그 소년은 안은 남자 뒤에 몇 발걸음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나와 두 눈을 올곧게 마주하였다. 주변 남자애들은 그 소년이 나에게 장난을 치기 위한 단순한 행동이기 때문에 웃었지만, 그때 나는 동공 지진이 왔었다. ‘이건 뭔 상황이지?’, ‘나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란 머리의 공백을 메꾸었다. 너무 놀랐던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책을 급하게 챙겨 나와버렸고, 도망치는 나의 모습과 걸어가던 소년의 모습이 접점을 이루었다.



 그 순간을 이후로, 그에게 눈길이 갔던 거 같다. 그 뒤로도 방송부 축제 영상 출연, 방송부의 학생회 토론 선거 진행, 연극부와의 협동(그 소년은 연극부였다.) 등으로 방송부의 빌미로 많이 마주쳤다. 하지만,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못 했다. 그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 채, 바라보기만 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처음 만났던 순간의 장난은 친해지고 싶어서 걸었던 소년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그때의 난 나 자신의 가치를 낮게 보았고, 소년을 향한 감정을 사랑이라 표현하지 않고 싶어, 끝없이 외면하였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소년은 나를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난 그를 사랑했기에 이렇게 자세히 소년의 순간들을 적을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 참으로, 우리 둘 사이는 친해질 기회가 많았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다녔던 영어, 수학학원에서 매일 마주쳤던 날들. 학원 수업을 듣고 있는 나를 멀리서 멍하게 지켜보는 소년의 모습까지도. 고등학교 1학년의 시작부터 학창 시절의 끝, 졸업까지. 수많은 기회가 날 기다렸지만, 용기 내보지 못하여 결국 21살이 된 지금까지도 네가 생각나 글을 쓰게 되었다. 졸업 후, 난 네 이름을 SNS에서 찾게 될 때, 그제야 내가 널 많이 좋아했구나 라고 깨달았다. 여전히 너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 끝없이 외면하고 싶었던, 애가 닳던 내 감정은 사랑이었다. 많이 사랑했다. 솔직히, 네가 주제와 주체가 되는 글을 절대로 쓰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후회와 그리움으로 덮어져 버린 감정을 다시 꺼내어 숨을 불어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부와 내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려면, 반드시 소년의 이름이 있어야, 정리가 되기 때문에 쓰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한 사람에게 들끓는 불덩이 같은 마음을 외면하지 말라고. 그 감정이 서툴고, 버겁고, 힘겨워도 용기 내서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면 좋겠다. 비록 혼자서 불덩이를 끌어안는 결과가 오더라도. 후회는 남지 않게.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모를 것이다. 옆에 있다면, 꼭 사랑한다고 표현하길 바란다. 난 이 글을 시점으로 그만 고여 있던 소년에 대한 모든 것을 흘러 보내려 한다. 너무 깊이 혼자 앓아버려 기 일보 직전이기 때문에. 소중히 간직하려 하였지만, 나의 후회와 그리움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마음이 아려 오지만, 그토록 징 하게 한 짝사랑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괜찮다.



만약, 인생이 너와 같은 얄미운 장난을 쳐서 우리가 만난다면, 그때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너에게 용기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대는 나의 사랑을 사랑과는 가장 먼 단어라며
나를 떨어트려 놓으려 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대를 향한 것이니
내 모든 것을 가져가도 좋으리오.
아니 빼앗아 버려도 좋으리오.
어찌 이 저항도 그대를 향한 것인지 모르리오.
부디 그대가 나를 대하는 행동도 사랑인지 모르고 하는 행동이어라.

-자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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