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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쁜남자 Nov 15. 2023

의미 이전에 재미

<재미>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음악

♬ 맛있으니까



나는 회를 좋아한다. 반면 내 친구는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같이 회 먹으러 가자 그러면 치를 떤다. 친구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놈의 맛도 없는 회를 왜 먹느냐는 거다. 친구 입장이 되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회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가 꽤 많다. 일단 비싸고, 가격 대비 양도 적고, 결국에는 초장 아니면 간장 고추냉이 맛이고, 본격적으로 회를 먹기도 전에 곁들이 안주로 배 채우는 게 다반사고, 여름철에 잘못 먹으면 식중독까지 걸릴 위험이 있다.



회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일일이 반박해 보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런데도 나는 회를 좋아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딱 하나다. “그래도 맛있는데.” 이런 음식이 어찌 회뿐일까. 젤리는 또 어떤가. 포도 맛, 딸기 맛, 오렌지 맛 젤리라고 해서 실제 비타민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먹으면 배가 부르는 것도 아니고, 많이 먹어봤자 이만 썩는다. 그런데도 나는 젤리를 좋아한다. 왜? 맛있으니까.



세상 참 맛있다 
아픔 있어도 눈물 있어도 
니가 있어서 오늘도 웃는다 
살맛이 난다 함께 하기에 
세상 참 맛있어요

컬투의 [세상 참 맛있다 (Feat. 타이거 JK)]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 그 안에서 마땅한 이유를 찾거나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루에 섭취해야 할 영양분의 총량과 열량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 음식을 먹음으로써 내 몸속에서 벌어질 현상과 각종 질병을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 그냥 먹고 싶으니까 먹는 거고, 먹어보니 맛있으니까 다음에 또 찾는 거다. 이처럼 우리 취향은 생각보다 무척 단순하다.








♬ 취향과 이상형



컴퓨터 게임 하는 것보다 운동하는 것이 더 재밌고, 여럿이 우르르 모여 술자리 갖는 것보다 홀로 앉아 글 쓰는 것이 더 재밌고, 잔인한 공포영화보다 화려한 액션영화가 더 재밌고, 새로 출시된 자동차 이야기보다 새로 발매된 음악 이야기가 더 재밌다. 이 모든 게 취향이다. “왜?”라고 물었을 때, 또렷하게 답변할 수 없지만 우린 각자 자신만의 취향을 갖고 있다. 취향이 명확할수록 우리 삶은 더 재밌어진다. 



여기서 한 걸음 더 재밌어지려면 나도 모르고 있던 내 취향을 더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거다. 그동안 초장과 간장 고추냉이에 찍어 먹었던 회가 맛이 없었다면, 쌈장과 다진 마늘과 참기름이 어우러진 양념장에 찍어 먹어보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책 읽는 것만 좋아했다면 밖에서 땀 흘리며 활동하는 운동도 해보는 것이다. 전에는 겪어 보지 못한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내 취향을 알아가는 방법이다.



누구나 다 이상형이 있다. 이랬으면 좋겠고, 저랬으면 좋겠고. 그런데 막상 그런 사람을 만나보면 내 생각과 기대와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이상형이라는 것도 내가 상상했던 내 취향이기에 경험해보지 않으면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다.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 조언하는 이유는 상대방을 잘 알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바로 알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우라는데 있다.








♬ 재미에 관한 환상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사는 게 재미가 없어요.”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쓴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는 그런 이들에게 재미에 관한 환상을 버리라고 말한다. 재미란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며 황홀한 판타지를 선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회와 젤리를 먹으며 맛과 행복을 얻듯, 재미 또한 쉽고 단순하게 접근해서 그 자체를 즐길 필요가 있다. 컬투 노래에서 “세상 참 맛있다”를 바꿔 부른다면 “세상 참 재밌다”가 될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이런 사소한 재미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재미에 관한 환상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재미에 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미는 엄청나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과 같은 환희를 느껴야 한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정말 못 노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휴가를 가서도 무슨 엄청난 재미가 없는가 하고 거리를 헤매다가 결국은 폭탄주로 밤을 지새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상 뒤집어지는 재미가 없으니 차라리 폭탄주나 마시고 자기 위장을 뒤집어 버리는 것이다. 

김정운의 《노는 만큼 성공한다》 - 199쪽



나는 ‘의미’라는 말을 좋아한다. 내가 하는 말이나 내가 쓰는 글에서 자주 발견되는 단어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담긴 그 무언가에 집중하려다 보니 말과 행동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너무 의미에만 집착하다가 정작 재미를 놓쳐버리는 경우가 없을까. 어쩌면 의미 이전에 재미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의미 찾다가 기회를 잃어버리기 이전에 재미있어 보이면 일단 시작해 보는 마음가짐을 갖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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