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적으로 말하면 백수가 되었습니다
이번 달, 저는 대책 없이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직장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당장 퇴사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준비 없는 퇴사였기 때문에 이직이나 창업에 대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일단 이번 겨울은 직업 없이 보내기로 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은 항상 ‘할 일’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어떤 업무는 하루 만에 끝내야 했고, 어떤 프로젝트는 몇 달 동안 진행했지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할 일부터 생각했고, 잠들기 전에는 내일 할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장이 없으니 ’할 일‘도 없어졌습니다. ‘할 일’이 없어지자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 무인도에 떨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업무’가 없는 세상은 망망대해 같았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으니까요.
지인들은 해보면 좋을 일들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외국에서 한 달 살기, 혼자 여행하기, 자격증 따기, 대학원에 진학하기... 그러나 모두 제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우리 딸, 하고 싶은 대로 해.”
어머니는 그렇게 말해주셨지만 정작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 열흘은 드라마만 실컷 보았습니다. 강좌도 하나 등록해 보고, 운동도 조금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하고 싶은 일’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할 일’의 자리를 메꿀 ‘하고 싶은 일’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있긴 했습니다. 시간에 쫓기던 때는 귀찮아했던 바디로션 바르기, 설거지, 분리수거가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원대하고 포부가 넘치는 ‘하고 싶은 일’은 보이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작은 일들이 계속 늘어갔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끝없는 수평선처럼 막막했지만, 기분 좋은 작은 일들이 쌓이면 뗏목이라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혹시 아나요? 이 뗏목이 저를 바다 너머로 보내줄지도 모르잖아요.
이왕 준비 없이 퇴사한 김에, 저는 대책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해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