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선택의 이유> 1번째 인물_필라테스 강사 이지영
인생에는 비수기가 있고 성수기가 있다. 잠시 쉬고 싶은데 그 '잠시'라는 짬이 안 나서 미친 듯이 달리다가 번아웃이 되기도 하고, 당장 내달리고 싶은데 타이밍을 기다리며 발구르기만 하는 시기도 있다. 비수기에도 우리 몸과 마음은 바쁘다. 쉬면서 여기저기 손을 봐야 한다. 이 방향이 맞는지, 이 신발은 더 신을 만한지, 물 한병 미리 떠놔야 하는 건 아닌지, 내 무릎은 성한 지... 긴 인생길에서 채비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거기에다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내려면 일정 수준의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필라테스를 만난 건 대학 졸업 이후 맞이한 첫 비수기, 즉 백수시즌 때였다. 24시간이 자유의 몸이었지만 필라테스 강습을 등록하기 전까지는 오랜 망설임이 있었다. 강습료에 대한 부담, 백수라서 더 바쁜(?) 상황에 모든 수업을 참석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건 핑계였다. 코어 근육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기괴한 기구 위에서 발레 같은 우아한 몸짓을 할 자신이 없었을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스스로 제 몸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건 꽤나 슬프고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는 점이다. 선생님의 시범 동작은 언제나 중력을 무시한 듯 가뿐했다. 중력이 선생님에게만큼은 적용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이 들 정도였다. 대단한 힘을 키울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지만, 매번 시뻘게진 얼굴로 온 몸을 버텨내야 했다. 수업 회차가 늘어날수록 '그래. 내가 내 몸 정도는 일으킬 수 있어야지.' 하는 나름의 강단이 생겼다. 그렇게 몇 달 간의 수업을 하는 동안 '제 몸을 일으킬 정도의 힘'이 생겼고, 이직을 하게 되면서 다시 달려야 하는 성수기가 찾아왔다.
약 2년의 시간이 흘렀고 희미해진 복근을 재건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당시 수업을 담당해주셨던 이지영 선생님을 다시 뵙고 싶었다. 매일 많은 이들에게 '제 몸을 일으켜 세울 힘'을 만들어주는 이지영 님을 인터뷰 지면에 모시기로 했다. 지영 님은 필라테스 강사로서 5년째 수업을 하고 계시고 그 전에는 대기업 인사팀에서 5년 간 근무했다. 지영 님을 만나 자신의 삶을 바로 세운다는 것, 혼란스러움 속에서 선택을 한다는 것, 지루함 속에서 지속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여름 날씨가 찾아온 어린이날 하루 전, 경남 마산에서 바닐라 라떼가 가장 유명하다는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바닐라 라떼를 마셔보면 향만 감도는 바닐라 시럽을 사용하는 곳이 있다. 이 곳은 바닐라의 풍미가 고급 승용차의 승차감처럼 혓바닥을 진득하게 누르는 맛이 있는, 제대로 된 바닐라 라떼 맛집이었다. 음료를 세 모금을 힘껏 들이마신 다음,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단디 : 안녕하세요. 지영 님, 오늘 수업은 몇 시부터 시작하시나요?
지영 : 오전 수업이 2시간 있었고 저녁 6시 30분부터 3시간이 남아 있어요.
단디 : 시간이 중간에 붕 뜨는 거네요. 프리랜서의 장점이라고 해야 될까요?
지영 :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근데 곧 다시 나가야 한다, 라는 마음 때문인지 중간에 비는 시간에 완전히 휴식하는 게 쉽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평일 오후에 한적한 카페를 즐기는 건 항상 좋아요.
단디 : 일과가 완전히 끝나야 마음이 놓이죠. 지영 님과 저를 포함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N 잡러로 불리잖아요. 지영 님은 필라테스 강사로 활동하신 지 5년째고 이전에는 선박 업계 대기업(이하 Q사) 인사팀에 5년 정도 계셨다고 알고 있어요. 벌써 인생 2번째 커리어 패스를 걸어가고 계신데 대학교 진학부터, 회사를 들어가고 나오고, 두 번째 직업을 갖기까지 어떤 선택을 해오셨는지 듣고 싶어요.
지영 : 우선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고 식품영양학과를 들어가서 영양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학생이었죠.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요. 근데 결국 타 지역에 있는 전문대 회계학과를 들어갔어요. 어머니께서 취업을 100% 보장하는 학과이고 하향 지원이라 장학금이 나온다는 이유로 전문대 진학을 추천하셨는데, 당시에 저는 ‘엄마 말이 법이다’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했거든요. 입학해보니 실업계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 친구들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이미 배우고 와서인지 수업에 큰 흥미가 없어 보였어요. 저는 전산회계, 무역영어 같은 실용 학문을 처음 접했기 때문에 따라가려면 공부를 해야 했는데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좋은 성적을 받는 모습을 교수님께서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자연스레 좋은 채용 공고가 나오니 저를 추천해 주셨어요. 그렇게 첫 직장으로 Q사에 입사하게 됐죠.
단디 : 추천을 받긴 했지만 원하던 학과를 다닌 것도 아니고, 직무나 회사를 선택할 때 고민이 많았을 텐데요.
지영 : 막연히 서울로 가고 싶다는 로망도 있었어요. 서울에 있는 회계 프로그램밍 회사로 탐방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규모도 작아 보이고 분위기가 썩 맘에 들지 않아서 선택지에서 제외했죠. 당시에는 재학 중인 대학을 기준으로 Q사를 가는 게 제일 성공한 취업이라고 생각한 것도 큰 것 같아요. 실제로 Q사가 좋은 회사기도 하지만요.
단디 : 첫 면접에서 많이 떨진 않았나요?
지영 : 엄청 떨었어요. 열심히 웃으면서 대답하긴 했지만 말을 잘 못했거든요. 당연히 떨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합격을 한 거예요. 설계팀에서 2년 계약직으로 시작했어요.
단디 : 취직하자마자 인사팀에 들어간 건 아니었네요.
지영 : 네. 입사 9개월 차에 인사팀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면접 당시에 저에게 높은 점수를 준 상무님이 저를 부르셨다고 해요. 인사팀으로 옮긴 뒤로는 퇴직, 발령, 육아휴직 파트를 담당하면서 쭉 일했어요. 매일 아침 전 사원 현황 체크하는 일부터 최근 5년 이내 육아휴직 신청한 직원 수, 명예퇴직한 직원 수 등 인사 데이터를 관리하는 일이 주 업무였어요.
단디 : 그 일을 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즐거웠나요?
지영 : 아침에 출근하면 모든 분들이 저부터 찾으셨어요. 인사 데이터는 개인 정보라서 접근 권한이 해당 담당자에게만 있거든요.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좋았어요.
단디: 그럼에도 일하면서 지치는 날도 있으셨을 텐데요. 근무 형태는 계속 계약직이었나요?
지영 : 아, 2년 계약직 기간 도중에 채용 시험에 응시해 정규직으로 전환됐었어요. 시험 6개월 전부터 퇴근하면 같은 책을 5번 볼 때까지 그 공부만 했어요. 업무는 창의적인 일은 아니었어요. 절대적으로 시간을 많이 필요한 크고 작은 일들이 매일 쌓여있었고 하루 종일 앉아서 모니터 보는 게 일상이었으니까요. 고립된 지역인 데다 회사 숙소에서 지냈던 터라 매일 같은 사람들과 생활해야 했는데, 다행히 팀원 모두 정말 좋은 분들이셨어요. 그분들이 저를 많이 챙겨주셔서 오래 근무하는 게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단디 : 직장 생활을 하면 주기적으로 슬럼프가 온다고 하잖아요. 지영 님은 1년쯤에 팀 이동을 하고, 2년쯤에 정규직 전환 준비하느라 바쁘게 시간을 보냈을 것 같아요. 처우나 동료, 근무 환경에 만족하셨는데 어떻게 퇴사를 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지영 : 23살에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예쁨을 받기도 했지만 이십 대 후반이라도 공채로 들어오신 분들이 부러웠어요. 인사팀에서 저를 빼고는 모두 유학파시거나 명문대 출신이셨거든요. 근무할수록 공부를 더 해야겠다, 학력을 높이고 싶다는 열망이 점점 더 커져갔죠. 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그만뒀어요.
단디 : 직장인에서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다니. 불안하지 않았나요? 언젠가는 재취업을 해야 하고 한동안은 소득이 없는 상태가 되잖아요.
지영 :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대학을 가자, 나는 무조건 더 잘된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웃음) 12월에 대학 원서를 넣고 개강 전까지 시간이 있어서 운동을 해보려고 필라테스 샵에 갔어요. 경남 마산 지역에 최초로 생긴 기구 필라테스 샵이었는데, 등록하러 간 날 계속 운동할 계획이면 강사 교육을 들어보라고 했어요.
단디 : 강사 코스는 몇 백만 원이라 부담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뭐야 여기!’하고 홱 돌아서 나왔을 수도 있고. 어떻게 선뜻 교육을 듣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을까요? 해본 적도 없는 운동이잖아요.
지영 : 회사 다니면서 모은 돈, 퇴직금 등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웠고, 운동을 좋아했던 편이라 선뜻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해에 학교를 다니면서 강사 코스를 수료했어요. 운 좋게도 바로 강사로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들이 찾아왔어요. 마산 최초 기구 필라테스 샵이라서 강사진을 갖춰야 했고 붐이 막 시작될 때라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중간에 한 달 정도 유럽 여행도 가야 했었는데 원장님께서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첫 수업은 떨렸지만 사람들이 저를 보고 따라와 주는 자체가 정말 좋았어요.
단디 : 저는 눈으로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 SNS에서 필라테스 강사가 올린 피드를 자주 접해요. 그만큼 대중에게 드러나 있는 직업인데, 본인은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다른 강사에게 경쟁의식을 느끼지는 않나요?
지영 : 신기하게도 그런 스트레스는 전혀 없어요. 기술적으로나 학술적으로나 저보다 뛰어난 분들은 많으실 거예요. 하지만 저처럼 수업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 저뿐이잖아요. 제 회원 분들은 ‘웃으러 온다’,’ 스트레스 풀러 온다’, ‘운동하고 나면 많이 웃어서 배가 아프다’라는 말씀들을 많이 하세요. (웃음) 한 명의 인생에 어느 한 부분만큼은 내가 즐거움을 주고 있구나, 라는 걸 느끼면서 일해요. 개인적으로 컨디션이 안 좋다가도 수업을 하면 즐거워져요. 근데 가끔 사정이 있어서 수업을 잠시 쉬어야 하는데 이걸로 미안해하는 회원이 계세요. 저는 상대방에게 부담 주는 걸 싫어해서 회원권 연장하세요, 다시 꼭 등록하러 오세요. 이런 말은 정말 잘 못하죠. 영업 같은 걸 조금은 할 줄 알아야 되나 고민되기도 해요.
단디 : 저도 최근에 재즈 피아노 레슨을 잠시 그만둬야 했어요. 사정상 어쩔 수 없었지만 저도 아쉬우면서 선생님께 죄송했는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고 마음을 살피시는 게 보여서 감사했어요. ‘다시 여유가 되면 무조건 선생님에게로’하는 인간적인 믿음이 생겼어요. 이렇게 진심은 가닿는 것 같아요. 그 마음결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세월을 보낸 뒤에도 주변에 남게 되는 거고요. 혹시 이 일도 이제는 좀 지루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지영 : 지루함은 공부를 안 했을 때 나태함이랑 같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세미나를 듣고, 새로운 부분을 공부하다 보면 더 배워야 할 게 많구나 느껴져서 지루함이 사라져요. 근데 회사에서 일할 때는 지루했어요. 더 알고 싶어 진다기보다 계속 근무하면 이 지역에서 정착해서 결혼하고 이 조직에 위로 올라가는 길만 남아있구나 싶었거든요. 지금 직업이 천직인 듯해요.
단디 : 학사 과정을 끝마쳤을 때 기분은 어떠셨나요?
지영 : 수업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게 좋았어요. 돈 때문이 아니라 수업하는 게 재미있거든요. 학교 다니는 내내 ‘아, 수업 많이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단디 : 그런데 고등학생 때 포기한 식품 영양을 공부하러 다시 대학교까지 갔는데, 왜 직업으로는 연결이 안 됐을까요?
지영 : 퇴사 직후에는 공부한 다음 영양사가 되려고 생각했어요. 근데 마지막 학기에 영양사 실습을 나갔었는데 ‘이건 내 일이 아니구나’하는 직감이 들었어요. 페이도 흡족하지 않았고요. 연차가 쌓이면 당연히 급여는 올라가겠지만 이미 직장 생활을 해봤고 필라테스 강사로서 대기업 수준의 벌이를 해서 소득 수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상태였거든요. 건강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꾸준히 있어요. 요리 채널도 자주 보고 건강한 식사법, 영양제 등에 대한 정보도 잘 찾아봐요.
단디 : 실습이나 탐방 같은 기회를 적극 활용한 점도 있지만, A에 준하는 선택지 B가 언제나 있었던 게 인상적이네요. 선택하는 것만큼 선택지를 두 개로 줄이는 것도 어려운데 판단이 명확하신 것 같아요. 후회는 없으신가요? 처음부터 4년제 대학으로 갈걸, 같은 지극히 가정법에 기반한 후회요.
지영 : 후회는 없어요. 4년제를 안 간 것도 잘한 것 같아요. 전문대라서 비교적 유리하게 Q사에 들어갔으니까요. 항상 제 인생에서 좋은 기회가 주어졌고 저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단디 : 뒤돌아보고 망설이는 성격이 아니라서 다가오는 기회를 잘 잡으시는 것 같아요. 가장 가까운 목표는 샵 오픈인데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이나 고민이 있나요?
지영 : 당연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샵이 너무 많이 생기고 있는 시점에서 준비한 샵이 잘 될까 하는 걱정은 있어요.지금 나를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개업해서 잘 되는 건 다른 거잖아요. 실패하기가 두려운 것 같아요. 한번 개업했는데 실패하면 다시 직원으로 들어가는 것도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단디 : 최근에 제 친구가 ‘만 원짜리는 주머니에서 구겨져도 만 원 짜리이다. 걱정 마라’라는 말을 해줬어요. 본인의 가치는 변하지 않으니까 힘내라는 응원이었는데 거기에다가 저는 이렇게 답을 했죠. ‘그 지폐가 구겨지기도 싫으면……?’. 막상 답을 하고 나니 이런 마음이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하는 거구나 싶었어요. 무조건 다 잘 갖춰지고, 잘 됐으면 하는 마음, 욕심이죠. 불안감이 커지니까 ‘지금 무얼 해보지?’하는 재미난 생각은 안 떠오르더라고요.
지영 : 맞는 말이에요. 최근 들어 명상, 뇌호흡, 단전호흡에 대한 관심도 생겼어요. 예전에는 요가 수업에 들어가면 너무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제대로 릴랙스 하는 게 중요하구나 느끼기 시작했거든요. 지금은 제 수업이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라 회원분들이 좋아하시긴 하는데 이런 부분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요.
단디 : 불안한 사회를 살다 보니 오히려 우리는 ‘이게 내 스타일이야.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규정을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그런 규정을 굳이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에너지 넘치는 수업이 지영 님의 수업이겠지만, 40대에 지영 님이 ‘이게 내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수업은 지금과 달라져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계속 변하니까요.
지영 : 그러네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너무 기대돼요. 사실 예전에 어떤 분으로부터 ‘필라테스 한 가지만 해서 어떻게 먹고살아요?’ 같은 대담한 질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저는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자연스레 열릴 거라고 믿어요.
에필로그
자신이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던 단호하고 명쾌한 그녀의 목소리가 온종일 귓 속을 맴돌았다. 내가 길 위에 서서 내뱉었던 후회가 떠올랐다. 간신히 현재에 집중하려고 노력 중인데, '그때 A가 아니라 B를 했어야지' 하고 주변에서 쿡 찔러서 속상했던 날도 생각났다. 수많은 선택지에서 고르고 고르다 지쳐 있었던 날들도.
녹취된 음성파일을 다시 들으며 인터뷰를 정리하는데 그 날 마신 바닐라 라떼가 자꾸 떠올랐다. 한 사람이 바닐라라떼처럼 달콤하지만 가볍지 않은, 진득한 에너지를 가진 가질 수 있구나를 그 날 알게 됐다. 달큰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허기지는 오후에 마시는 바닐라 라떼와 비슷하다.
지영 님은 원고 감수 요청 메일에 "제 삶이 글로 쓰여지니 신기해요. 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고마워요."라고 회신을 주었다.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자연스레 열릴 거라고 믿는다'는 지영 님의 말처럼 나도 꾸준히,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후회한 걸 후회했던 과거도 아주 오래 전 일이 될 때까지, 나를 일으키는 힘이 관성처럼 나 스스로를 계속해서 밀고 나갈 때까지.
2020.05.04.
경남 마산 카페 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