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또황 Jun 02. 2020

 <퇴근의 쓸모> 3편. 웃음의 힘을 믿나요

3편. 웃음의 힘을 믿나요


나는 허벌나게 웃음이 많다. 엄청 잘 웃는다. 어렸을 때 동생과 먼저 웃는 사람이 지는 내기를 즐겨 했는데, 동생은 항상 아주 간단하게 나를 이기고는 어차피 질 거면서 또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웃으면 이상한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곤란할 때도 있다. ‘여기서 웃으면 이상하겠지?’ 하고 인지하는 순간 웃기다. 몇 년 전에 수술실 들어가는 침대 위에서 혼자 웃음이 터져 낄낄 웃는 나를 보고 웃음을 참던 간호사 선생님이 생각난다. 어릴 적부터 웃긴 말이나 멋진 장난을 보면 열심히 외웠다가 꼭 써먹기도 했다. 지금도 다른 무엇보다도 장난치는 게 제일 재미있다. 덕분에 또황(또라이 황**)이라는 별명도 얻게 됐나 봐.


그렇게 해맑은 영혼인 내가 이상하게 작년부터 나를 잃어버리고 맥없이 힘들어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으로 변한 게 몇 번이나 된다. 그러다가 1편에도 썼던 것처럼 퇴근해서 집에 가기가 무서울 만큼 힘든 시기가 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공황이었다. 서울에서 일할 때는 힘든 날에 퇴근하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같이 맛있는 걸 먹고 수다를 떨다 보면 속이 한결 나아졌는데, 목포에 내려온 뒤로는 몇 달에 한 번 정도만 친구들 얼굴을 볼 수 있게 됐다. 물론 목포에도 친구들은 많지만, 친구들 대부분이 회사 동료라서 그런지 무슨 얘기를 했을 때 속이 시원한 게 아니라 괜히 마음이 더 무거울 때가 많다. 얘기하지 말 걸 그랬나 싶고, 나는 왜 이렇게 약해 빠졌나 싶어서 괴롭다. 그래서 새벽을 넘기는 게 너무 힘들었던 그 시기에 퇴근 후의 시간을 많이 괴로워하며 보냈다.


힘들 때 찾는 책과 영화와 음악도 그때는 힘이 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어쩌다 라디오를 듣게 됐다. 가식적인 말투의 디제이들을 이리저리 피하다가 솔직하면서도 어딘지 바보 같은 말투의 디제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찾았다. 그 디제이와 게스트들이 투닥거리는 것을 듣다가 웃음이 터져서 “아학학! 핡학학!”하고 큰 소리로 웃게 됐는데, 집에서 혼자 그렇게 웃어본 게 얼마 만인지..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니 방 안에 우중충하게 깔린 어둠이 걷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힘들 때마다 라디오를 들었고 점점 집에 가는 게 무섭지 않게 됐다.


나는 믿을 수 있는 친구와 대화를 하고 나면 별말을 하지 않아도,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도 그냥 마음이 편안해진다. 라디오를 듣는 것도 비슷한 효과가 있었다. 다정하고 솔직한 그 말투를 듣다 보면 마음이 안정됐고 나도 모르는 새 깔깔 웃다 보면 늘 애써 움켜쥐고 있는 자괴감을 잠시 내려놓고 후련할 수도 있었다. 온전히 의지할 누군가가 없다는 게 가끔 슬프지만 그래도 다행이지.. 이렇게 마음에 안정을 주는 일을 하나씩 찾게 되는 건.. 마음의 평화 짱! 웃음 짱! 앞으로는 장난 더 많이 쳐야지! 우헤헤!!!


- 다음 달에는 ‘4편. 수련’으로 돌아올게요. 세상 사람들~! 다음 달에도 정시 퇴근 많이 합시다~!






* <여기 사람 있어요>가 더 궁금하다면?

https://emptypublic.com/we-are-here

매거진의 이전글  <퇴근의 쓸모> 2편. 나만 생각한 한 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