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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치 Feb 03. 2022

벌새

세상의 모든 은희들을 위한 날갯짓

본 내용은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등장인물


은희 : 1994년을 살고 있는 14살 은희.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처음으로 날갯짓을 시도한다.


영지 : 은희가 다니는 한문학원에 새로 오게 된 선생님. 은희의 날갯짓을 위해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은희의 삶에 남을 큰 존재다.






story

1994년 서울 대치동에 살고 있는 14살 은희. 떡집을 운영하는 엄마와 아빠, 오빠 그리고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은희는 집과 학교, 학원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어느 날 은희가 다니던 한문 학원에 새로운 선생님이 오시는데, 바로 영지다. 영지는 은희의 상황과 상처를 깊이 바라본다. 은희가 스스로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은희는 불완전함과 불안정 속에서 이겨내기 위해 영지 선생님의 조언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영지 선생님 덕분에 은희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상황을 직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무너졌고, 영지 선생님은 은희의 곁을 떠났다. 영지는 계속해서 영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콩가루일까?”

은희의 집은 평화롭지 않다. 엄마와 아빠는 하루 종일 떡집에서 일을 하고, 언니는 아빠의 눈을 피해 학원 대신 방황을 선택한다. 아빠는 성적이 우수한 장남인 오빠에게만 집중한다. 그리고 바람을 피기도 했다.하지만 부끄러움 하나 없는지 자식들 앞에서 욕과 거친 행동까지도 숨기지 않는다. 엄마는 늘 지쳐있고 은희에게 무관심하다. 그리고 오빠는 은희를 때린다. 비단 은희에게만 일어난 일들이 아니었다. 은희의 친구 지숙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은희의 주변에서 자주 일어났던 일이고, 그들은 덤덤히 자신의 상처를 보여줄 뿐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다. 


가족들이 은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은희의 머리에 혹이 생기고 수술해야 한단 말을 듣고 아빠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고, 은희는 가족들로부터 평소에 받지 못한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평소에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가족의 사랑이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이다. 


은희네는 사랑하는 방법이 어려워했던 것이다. 오빠는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이 가장 만만했기에 자신의 분노를 은희에게 풀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방법을 ‘잘못’ 알았기에 생긴 일들이 한 사람에겐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알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함부로 위로도 건네지 못한 채,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날들이 떠올랐다. 가정폭력, 외면 등 가족이라는 단어 뒤에 들어가면 안 될 상황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곳에 남아있다. 과연 그 사랑을 사랑이라 칭해도 될까. 



미처 치우지 못한 유리조각

은희의 언니 수희가 학원을 가지 않고 놀러 나간 사실을 알게 된 아빠는 크게 혼을 낸다. 급기야 ‘네가 애들을 잘 못 돌봐서 이런 거 아니냐’며 엄마에게 소리를 지른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의 몸을 밀치며 싸우기 시작하고, 엄마가 던져버린 전등에 아빠의 팔은 다치게 된다. 그날 밤 은희와 수희는 잠 못 이룬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니 깨져있는 전등은 베란다에 덩그러니 놓여있고 엄마와 아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티비를 보며 웃고 있다. 은희는 이 상황이 이상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소파 밑을 우연히 보게 된 은희는 미처 치우지 못한 유리조각을 발견한다. 깨져버린 유리조각들은 깨끗이 없어진 게 아니었다. 이 가정에, 누군가의 마음엔 여전히 깨진 유리가 존재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외면해도 유리는 남아있다. 이 유리가 언젠가 또 누군가를 다치게 할지 모른다.



엄마를 찾는 은희 

영화는 은희가 엄마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심부름을 다녀온 은희가 문을 세게 두드리며 엄마를 부른다. 소리를 지르고 발도 동동 구른다. 현관문을 올려다보면 은희는 자신의 집이 아닌 아래층을 찾아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희는 또 한 번 엄마를 계속해서 부른다. 집 앞을 지나가던 은희는 아파트 계단에 엄마가 있는 것을 보고 엄마를 몇 번이고 부르지만 엄마는 듣지 못한 채 지나간다. 


어른이 된 나는 지금도 종종 엄마를 찾는다. 도움이 필요하거나 모르는 게 있을 땐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에게 의지를 하게 되는 건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다. 중학생인 은희는 엄마에게 의지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늘 너무 지쳐있기에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를 찾고 싶은 은희의 심정이 그 장면들 속에 녹아있지 않을까 했다.


+) 마지막 부분에 엄마가 은희에게 감자전을 만들어준다. 은희는 엄마에게 돌아가신 외삼촌, 유일하게 엄마를 걱정해준 존재에 대한 그리움을 묻는다. 그 질문이 엄마에게 어떤 영향을 준 걸까. 감자전을 먹는 은희 옆에 앉아 가만히 은희를 바라본다. 잊고 있던 딸의 존재. 부재를 통한 존재의 깨달음. 엄마에게 그런 순간이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장면이었다. 


+) 관련 인터뷰  https://star.mt.co.kr/stview.php?no=2019082009491257736


Q. 영화가 현실적인데, 가장 첫 장면은 상징적이다. 은희가 902호의 문을 두드리는 장면은 어떤 의미인가.

김보라 감독:  첫 장면은 시간대도 구체적 시간대가 아니고 따로 떼어져 있는 섬 같은 장면이다. 이 영화는 은희가 물리적 집이 아닌 마음속 집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찾기 힘든 여정인데, 은희가 처음 집을 찾지 못하는 얼굴에서 마지막에 마음 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계획이었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영지 선생님

영웅은 화려하고 찬란하게 등장해야 할 것 같지만, 영지라는 영웅은 그렇지 않다. 고요하고 차분하게 은희의 옆을 가만히 있어주며 그를 돕는다. 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영웅의 역할은 충분했다. 


영지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까.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한 채 영웅은 떠났다. 영웅은 왜 항상 우릴 떠나는지 모르겠다. 영웅이 준 씨앗으로 그 힘을 그리워하며 우리는 무럭무럭 자라난다.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마.”

은희, 나 그리고 모두가 듣고 싶어 했던 말. 우린 어떻게든 맞서 싸워야 하며, 절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 은희는 오빠에게 폭력을 당하는 동안, 누구에게도 이 말을 듣지 못했다. 맞지 않는 것. 은희에게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을 단 한 사람만 말했다. 영지 선생님의 말은 은희가 당한 폭력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앞으로 ‘우리’가 겪는 불합리한 상황들에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고 맞서야 한다는 말을 영지 선생님은 은희와 우리에게 말해준 것이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나는 저 대사를 품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거리에도 '구겨진 얼굴'은 많다. 집회 현장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들. 그들은 조용하고 얌전하지 않다. 늘 화를 내고, 얼굴을 빨갛게 만들며 언성을 높이고, 머리를 깎고 피를 토할 듯 절규하고 있다. 나는 그 구겨진 얼굴들을 보며 이제 절대로 '저렇게까지 흥분할 일이야?'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고 싶을 만큼 매일같이 겪는 불평등과 차별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듣지 않고 변하지 않아 결국 얼굴이 꾸깃꾸깃 구겨진 채로 거리에 나온 노동자들과 여성들, 장애인들, 그 밖의 약자들. 언제 어디서든 어떤 구겨진 얼굴을 마주했을 때 '얼굴을 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당신의 얼굴이 이렇게 구겨지도록 만들었는지를 묻는 것. 최대한 자주 그 구겨진 얼굴을 따라 옆에 서는 것. 책방을 운영하면서 힘들고 귀하게 배운 태도이다.”

[요조,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상식만천하 지심민기인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지에 가득하지만,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했던 함부로 동정할 수 없다는 말과 비슷하다. 각자에게 감춰진 내면은 누구도 알 수 없고 함부로 알기 어렵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 손길이 있다.

영지 선생님의 말을 들은 은희는, 혹을 뗀 이후로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영지 선생님을 멋대로 자른 원장 선생님에게 분노를 표하고, 때리기만 하던 오빠에게 처음으로 소리를 지른다. 물론 이렇게 맞서 싸운다는 건 외롭고 어려운 일이다. 은희마저 학원에서 쫓겨나고, 오빠는 은희의 뺨을 때린다. 그로 인해 고막이 터져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은 은희가 누군가에게 맞았다는 것을 눈치 챈다. 그리고 진단서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며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맞서 싸울 때, 더 큰 회오리가 몰아칠 수 있지만 또 어딘가엔 생각하지도 못했던 손길이 존재했음을 깨닫는다. 혹을 떼어낸 은희는 그렇게 성장한다. 용기를 낸 은희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성수대교 앞, 울음을 삼키는 은희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무너진다. 은희와 언니는 성수대교 앞을 가서 떠나간 친구들과 영지 선생님을 떠올리며 애도한다. 은희는 엉엉 울지 않고 울음을 꾹 삼켜낸다. 은희의 떨리는 턱밑과 꼭 감은 두 눈. 아이처럼 엉엉 울고 넘어가기엔 은희에게 너무 깊은 일임을 알 수 있었다. 


+) 관련 인터뷰 https://extmovie.com/article/49628691


Q. 당시에 벌어진 여러 재난 사건들 중 특히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주목한 이유는?

김보라 감독: <벌새> 시나리오를 쓰면서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를 생각했을 때,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난 해가 떠올랐다. 주인공 은희가 사회와 학교, 가정에서의 관계 속에서 겪는 단절과 붕괴의 느낌이, 성수대교가 물리적으로 단절, 붕괴되는 이미지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비단 은희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이 단절감, 붕괴 같은 걸 일상적으로 느끼며 살았단 것 같다. 일례로 영화 속 교실에서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가자”라는 장면이 나왔던 것처럼, 그 교실에 있던 모두가 야만적인 학교생활을 견딘 것이다. 가정에서도 가부장제 질서로 인해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더 우대를 받고 사랑을 받는다. 당시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성장통을 겪던 시기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한국 사회가 선진국이 되려는 열망으로 돌진하던 때에 그것을 멈추게 한 것이 성수대교 사건이었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몰입감을 더해준 연출 

영화 <벌새>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미술 소품, 의상, 헤어, 장소 등이 그 시대 속으로 한 번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이 모든 건 어떻게 준비했을지 궁금했는데, 아래의 관련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3871&utm_source=naver&utm_medium=news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벌새처럼

우린 각자의 혹을 달고 있다. 그 혹을 떼어내고 맞서기까지 수없이 날갯짓을 해야 한다. 1초에 90번 날갯짓하는 벌새처럼. 나는 어딘가에 존재할 은희들과 어딘가에 날고 있을 영지를 기억한다. 내 안에 있던 혹을 기억한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나의 첫 날갯짓이다.





letter


은희가 영지에게

저는 계속해서 외치는 중입니다. 생각보다 내가 맞서 싸워야 할 일은 정말 많아요.

그 누구가 저에게 해주지 않았던 말,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말라는 말을 그날 듣지 않았다면

제 안에 혹은 얼마나 쌓여가고 있었을까요. 


조금 힘든 날엔 성수대교에 갈게요. 

움직이는 손가락을 함께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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