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롬실루엣 Apr 10. 2023

패터슨

빈 노트에 담은 매일의 세상

내용은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내용은 영화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등장인물 

패터슨: 패터슨에 살고 있는 버스 드라이버. 매일 시를 쓰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다 바에 들려 맥주를 한 잔 하는 일상을 즐기며 살고 있다. 

로라: 패터슨의 아내. 미술과 음악을 좋아하며 자유로운 성향이다. 다양한 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패터슨의 시를 늘 극찬한다. 


 story 

영화는 한 사람의 일주일을 보여준다. 그 사람은 패터슨에 살고 있는 패터슨. 그는 패터슨 시내의 버스 드라이버로 일하며 매일 시를 쓴다. 그의 일주일은 똑같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상은 다채롭다. 패터슨이 쓰는 시를 따라 영화는 찬찬히 움직인다. 


섬세한 시선의 패터슨

 패터슨은 매일 버스를 운전하고 퇴근하면 바에 가서 맥주를 마신다. 패터슨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매일 다른 일들, 사람들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고 귀 기울인다. 패터슨은 일상을 섬세히 바라본다. 사람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버스 창 밖의 사람들의 걸음을 살피고 때론 누군가의 무례한 말에 또 다른 승객이 마음의 상처를 입진 않았을지 내심 걱정하기도 한다. 패터슨의 섬세함이 결국 시를 쓰게 했고, 모든 것이 영감의 원천임을 알 수 있다. 



 각자만의 시간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자신만의 시간 혹은 루틴을 가지고 있다. 패터슨의 루틴은 뚜렷하다. 매일 시를 쓰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다 바에 가서 맥주 한 잔을 하는 것.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패터슨이 자주 가는 바 사장님도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바를 운영하면서 틈틈이 체스를 둔다. 상대는 자기 자신이다. 가끔은 체스대회를 나갈 정도로 체스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오롯이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어주는 것. 그 모습이 멋지고도 부러웠다. 자신만의 시간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시간에 가장 몰입이 잘 되는지 혹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섬세히 관찰해야 한다. 부러운 마음을 손에 담아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빈 종이에 써내려 가본다.

 침대 협탁 

 패터슨이 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침대 협탁에서도 알 수 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로라의 협탁의 물건은 매일 달라지지만 패터슨의 침대협탁에는 늘 시집이 올려져 있다. 온종일 자신이 좋아하는 시에 몰두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영상미 

 영화의 또 다른 아름다움 중 하나는 영상미다. 사진을 찍듯이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느린 속도로 한 순간을 오랫동안 보여준다. 그 덕에 영화의 영상미를 여유롭게 음미할 수 있었다. 이 또한 시 한 편을 읽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사유하고 음미하는 기분. 



 쌍둥이 

 쌍둥이에 대한 해석의 추측은 많다. 내가 추측한 해석은 패터슨의 혼란스러움이다. 아내는 패터슨에게 쌍둥이 아이를 낳으면 어떨 것 같냐고 묻자 "왜 안 좋겠어."라고 대답한다. 평소 패터슨은 아내의 말에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기보다는 대부분 아내에게 맞춰준다. 패터슨의 습관적 긍정만으로는 그가 정말 아이를 원하는지 알 수 없다. 그 이후, 패터슨은 유독 쌍둥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패터슨은 유심히 바라보다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패터슨은 스스로도 아이를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아이를 원하면서도 두렵기도 한 혼란스러움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패터슨도, 영화를 보는 우리도 알 수 없는 그 복잡한 마음을 그의 시선에 담은 게 아닐까.


 패턴 

 이 영화는 패턴이 자주 등장한다.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는 아내 로라가 집을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장 눈에 띄게 들어오는 것이 원형 패턴이다. 모두 같은 원처럼 보이지만 크기, 넓이 모두 각기 다르다. 

 어느 날 패터슨은 귀갓길에 엄마와 동생을 기다리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는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자신의 비밀노트에 시를 적고 있었다. 그때 만난 소녀는 체크무늬 장화 그리고 체크무늬 가방을 들고 있다. 모두 같은 체크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각기 다르다. 이 패턴은 반복되는 일상을 의미하면서도 그 일상 속에서 각기 다른 일들이 존재함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의 힘 

 일상을 영감 삼아 비밀노트에 시를 적는 패터슨처럼, 엄마와 동생을 기다리며 비밀노트를 펼쳐 시를 쓰던 소녀처럼 나만의 비밀노트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시선과 순간을 담는 비밀노트. 그 형태가 꼭 시, 노트가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형태로 비밀노트가 만들어진다면 더 좋을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우린 모든 것을 기억할 순 없다. 잊어버려도 좋지만, 때론 붙잡고 싶은 순간도 존재한다. 기록은 사라져 버린 시간을 잠시 찾게 해주는 마법 같은 힘이 있고, 앞으로의 시간에 용기를 넣어주기도 한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패터슨의 반려견 마빈은 패터슨과 로라가 영화를 보러 간 사이, 패터슨의 모든 기록이 담겨있는 비밀노트를 물고 찢는 바람에 엉망이 되어버렸다. 패터슨의 모든 기록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허탈하고 무기력해진 패터슨은 근처 공원에 혼자 앉아 마음을 다스린다. 그런 그의 옆엔 일본 시인이 앉는다. 둘은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시인은 패터슨에게 빈 노트를 선물한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는 말과 함께. 

 패터슨의 기록은 사라졌지만 새 노트와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 그동안 패터슨은 세상을 보는 과정을 통해 노트 하나를 완성할 수 있었고 그의 끈기와 성실이라면 앞으로 더 많은 노트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시 

 영화 패터슨은 한 편의 시 같은 영화라고 불린다. 만약 시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를 통해 시의 매력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짧은 글 속에 들어있는 무궁무진한 세상을 찾아가는 여정, 반복해서 느리게 읽으며 풍미를 느끼는 것은 시만의 매력이다. 

 영화는 느릿한 장면 전환과 시를 직접 읽어주며 시를 쓰는 방법과 읽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글을 쓰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일상의 모든 것이 소재가 될 수 있음을, 결코 특별한 것만이 시의 소재는 아님을 알려주기도 한다. 



 낭독 

 영화에서는 패터슨이 시를 쓰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그때마다 패터슨의 목소리로 그 시를 낭독하며 장면을 채워준다. 패터슨 역의 아담 드라이버의 차분한 목소리와 시 그리고 함께 나오는 음악이 모두 잘 어울려서 여운이 길게 남았다. 영화를 다시 볼 때는 눈을 감고 그 소리만을 몰입하기도 했다. 한 편의 시 같은 영화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그다드 카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