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검사관, 파리를 달리다]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하면 모든 걱정이 다 끝날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금세 우려로 바뀌었다. 내 이름만큼 쉬운 영문도 없는데 벌써부터 오타가 눈에 띈다. 혹시 몰라서 핸드폰 공기계를 하나 지참해 갔지만 조직위에서 지급해 준 심카드가 전혀 작동하질 않는다. 검사 일정 조정 및 각종 지시사항 전달 그리고 검사 현장에서도 수시로 소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핸드폰은 필수다. 역시 로밍을 해 가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한 일행 중 한 명이 승차권을 지급받지 못했다. 그의 정보가 명단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는 3만 원에 가까운 기차표를 자비로 부담하고 이동을 해야 했는데 아무리 올림픽 특수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승차권 가격이 비쌀 줄은 몰랐다.
14시간 가까이 되는 비행에 피곤한 몸과 무거운 가방을 끌고 한 시간 가까이 대중교통을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2명이 함께 사용해야 할 숙소치고는 비교적 좁았고, 에어컨과 냉장고, 커피포트도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여행을 온 사람들이 지불해야 할 엄청난 숙박비를 고려하면 이마저도 감사한 일이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파리에 도착한 이후 직접 부딪혀 가면서 일을 처리하다 보니 한국에서 메일에만 의존해 낭비했던 감정 소비와 의미 없는 고민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어제는 유니폼 배부센터를 방문해서 출입카드와 근무복 등을 배부받고는 바로 선수촌으로 이동해 교육을 받았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지만 무더울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영상 19도 안팎을 넘나드는 선선한 날씨에 몸이 한층 가볍다.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선수촌 도핑관리본부에서 진행된 오리엔테이션과 직무 교육. 모든 교육이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틈틈이 지난 올림픽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안부를 나누고 선수촌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선수촌을 걸으니 비로소 파리올림픽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형형색색으로 치장된 선수촌의 모습과 열정 넘치는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렇게 파리에 젖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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