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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Dec 20. 2023

4년에 걸친 촬영의 마지막

주철장 <쇳물 붓는 날>

처음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무런 연고도 없을 때 처음 협회에 찾아가 장인을 소개해달라고 할 때 사무국장님은 최근에 협업한 잡지 사진을 보여주셨다. 사진을 보다가 한 페이지에서 멈췄는데, 그게 주철장 선생님의 종 사진이었다.  '이 분이다' 속으로 내심 쾌재를 부르고 이 선생님 소개해달라고 졸랐다. 며칠 뒤 선생님이 계신 진천으로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촬영감독님과 둘이 진천으로 향했다. 


그때 내가 본 <w> 잡지 포토_김신애 

처음 만나는 장인은 어떨까.. 한눈에 날 간파하고 "돌아가"라고 하진 않을지 내심 속으로 선생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인사를 건넸다. 공장 한편에 자리 잡은 집무실로 옮겨 선생님의 인생의 흔적들이 담기 상패와 여러 사진들을 감상했다. 영광스러운 상패에는 먼지가 내려앉고 사진 속 선생님은 젊어 보였다.  소파에 앉아 준비했던 말과 준비 못했던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선생님은 쉽게 허락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갈 무렵에 술 한 병을 주셨다. 오는 길에 촬영감독님과 "이 술은 의미 있는 날 깝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선생님의 첫 촬영에 돌입하고 마음만 앞섰지 어떻게 담을지 몰랐던 시행착오의 나날들이 지나갔다. 선생님과 친해지고 싶어 혼자 내려가 단 둘이 소주를 하기도 하고 집에서 또 한 잔을 마셨다. 소주 한 병과 함께 치킨 한 마리를 배달하시고 "젊은 사람들은 부족하다"며 먼저 방에 들어가셨다. 그렇게 조용한 댁 거실에서 혼자 소주를 더 마시고 방에 들어갔다. 어느 날은 촬영팀과 하룻밤을 선생님 공장 한편에서 텐트 치고 자기도 했다. 선생님은 날이 춥다고 다들 들어오라고 했지만, 나만 대표로 방으로 들어가 선생님을 안심시켜드렸다. 나는 할아버지가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셔서 없지만, 할아버지가 계셨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그렇게 무서운 장인일 거라 생각했던 선생님은 어느새 내 할아버지가 되어 계셨다. 

내부적인 사정으로 작업이 길어지면서 선생님은 주변의 선생님들께 직접 전화를 돌려 섭외를 해주셨다. 그렇게 만나게 된 인연이 악기장 고흥곤 선생님, 방짜유기장 이봉주, 이형근 선생님이시다. 안 주머니에서 꺼낸 전화번호부로 하나하나 번호를 눌러 선생님들만 알만한 어투로 전화를 하셨는데 "이런 젊은 애가 있어~" "어 보내봐"라는 식이었다. 아마 내가 다른 선생님들을 촬영할 수 있었던 까닭은 모두 종 선생님의 보증으로 가능했던 것이라 짐작한다. 선생님은 또 당신이 생각한 진짜 장인을 찍어야 한다며 거긴 나 혼자 가면 택도 없다고 먼 지방을 함께 가주셨다. 선생님을 모시고 내려가는 길에 문득 나에게 왜 이렇게 잘해주실까 궁금해 여쭤보았다. "잘할 것 같았어"였다. 이 짧은 말이 이 일을 하는 동안 따라올 것 같다.  

만날 때마다 종소리를 입에 달고 계시는 선생님, 공장 운영에 돈 걱정 하다가도 종이야기를 하며 소년처럼 신나게 이야기하시는 선생님. 가끔 선생님을 볼 때면 젊은 사람들 보다도 더 젊음을 간직한 듯 보인다. 

장인이 된다는 것이 가슴속에 소년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가능한 것인가? 세상의 파도에 여러 가지 포기할 이유들이 생기지만 그 흔들리는 소년의 반짝이는 눈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남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소년이 있다는 것은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 그 소년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궁극의 종소리를 하나 만들고 그만두는 것이 소원이라 말한다.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소리가 와따야~"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촬영날 촬영감독님과 단 둘이 촬영을 했다. 선생님은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우리는 지난 4년 동안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들을 늘어놓고 익숙한 매캐한 공장 냄새와 늘어지는 그림자 속에서 천년을 이어온 범종의 타종을 목도했다. 전통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이런 몇몇의 장인들의 하루하루가 역사를 만들었구나 생각한다. 그 안에 우리의 역사도 함께 한다. 범종이라는 것이 깨우침을 위한 종이다. 하지만 나는 매번 각각의 종소리가 어떻게 다른지만 생각하면서 들었던 것 같다. 올해가 가기 전 진천에 내려가 다시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와야겠다. 그럼 선생님은 또 종소리를 들려주시겠지.. 아마도 내가 마음을 열지 않고 들었던 것을 아시나 보다. ㅎㅎ



주철장 네 번째 <쇳물 붓는 날> 보러가기

https://youtu.be/sSU2c9xqXoc?si=qy5B5G9A3CXZdV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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