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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Jun 08. 2024

#9 스크린으로 만난 장인

20240608

시간이 흘러 전시가 끝나고 전시에서 뱉었던 숨이 영화제 초청작으로 이어졌다.

바쁜 광고일로 편집 시간을 일주일 미뤄달라 요청드리고 정신없이 편집을 끝냈다.

이번에도 홍보에는 여력이 없어 주변에 지인분들과 선생님들께 초청의 연락을 드리고 영화제의 시간은 정시에 찾아왔다.

행사 당일에도 잡혀있던 미팅들이 있어서 한 시간 전까지 근처에서 아이데이션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미 와있는 지인들과 생각지 못한 반가운 손님까지 얼굴을 마주하니 불현듯 긴장감이 밀려왔다.


악기장 선생님께서 주변 장인 분들에게 소개를 해주시는 수고 덕분에 처음 뵙는 장인 분들까지 영화관 로비를 채워주셨다. 늦게 도착하시는 분들을 기다린다는 핑계로 극장으로 들어가시는 분들을 뒤로하고 영화관 밖으로 나가 담배를 태웠다. 홀로 편집하고 아쉬운 후반작업으로 스크린에 올렸는데 과연 어떻게 보시고 계실까. 많은 분들이 실망하시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절반 이상의 러닝타임을 밖에서 서성거리며 흘려보냈다.

GV가 잡힌 탓에 영화관으로 들어가 나머지 절반을 천천히 관람했다. 장인의 집요하고 섬세한 작업들이 등장하는 씬에서 여기저기 감탄과 놀라는 리액션들이 작게나마 들려왔다. 숙제검사를 맡는 학생의 마음으로 관객의 숨소리, 표정하나 눈치보기 바빴다. 영화가 끝나고 무대에 조명이 켜지고 의자에 앉아 관람객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역시나 엄청나게 떨려서 초반에는 긴장한 기력을 여실히 내비치며 아쉬운 대답과 가쁜 호흡으로 삐끗삐끗 대화를 이어나갔다.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안정되어서 왜 이일을 하는지 어떤 비하인드가 있었는지 대화다운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이 프로젝트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촬영감독님에게 어땠느냐 물어보았다. "야.. 너무 좋다" 본인이 찍었지만 하도 오랫동안 한 촬영이라 새로움을 느끼기도 했을 터인데 편집이 그래도 잘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기둥인 촬영감독님은 이 프로젝트의 제작비를 대고 있기도 했고, 내가 이런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준 은인이다. 나름 엔딩크레딧에 제일 먼저 제작에 이름을 싣고 존경의 의미를 표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지인들의 관람평을 듣고, 표정을 보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휴.. 다행이다... 괜찮았구나' 안도의 마음에 이번 작업 역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들께서 스텝들 식사를 대접해 주신다고 하셔서 근처 식당에 갔다. 두 테이블에 걸쳐 앉아있는 국가무형문화재 선생님들이 우리의 영상을 보시고 또 축하해 주시고 존경한다는 말씀까지 전해주셨다. 나에게는 모두 끝판왕처럼 거대한 분들인데 우리도 나름의 기술을 가지고 이분들과 각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술잔이 오가고 마지막 건배사를 하게 되었다.

"저는 여기에 계신 분들을 한 자리에서 뵙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영광입니다. 처음에는 한 분 한 분 섭외하기도 어렵고 저를 설명하는 것도 시간이 걸렸는데, 지금 이 자리를 보니 나름의 성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찾아뵙고 앞으로 작업을 또 걸어 나가겠습니다" 덤덤하게 오늘의 이벤트가 가슴 벅차지만 결국 또 우리는 공방에서 끈질기게 만나야 함을 고백했다.

선생님들과 1차 식사자리가 끝나고 남은 스텝들과 교수님 그리고 지인분들과 낙원동 근처에서 2차와 3차, 그리고 4차를 달렸다. 스텝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예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자축을 하고 또 흥겨운 대화를 이어갔다.


종 선생님이 보고 싶어 졌다. 오늘 오시지 못한 선생님이 5년 전 처음 나를 보고 나를 믿어주고 다른 선생님들들께 직접 전화로 섭외를 해주셨던 수고가 이렇게 영화관 한 조각을 채웠다고 말하고 싶었다.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느냐는 물음에 "잘할 것 같았어"라는 무거운 말을 뱉으셨는데 그 중간 점검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었다.


취했지만 또렷하게 집으로 들어와 긴장의 끈을 툭하고 풀었다. 나는 이 일을 왜 하는 것일까.. 그리고 선생님은 왜 이일을 하고 계실까. 말없이 떨리는 것들이 이 일에 많은 부분을 채우고 있다. 7월에는 장편의 첫 촬영을 하려고 한다. 두 달을 고민하며 시간을 흘렸지만, 결국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또 그 안에서 그림들을 찾아봐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종 선생님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한 우물만 판 장인의 정수물을 길어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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