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삶을 위한 두 가지 나를 위하여
아.. 하긴 해야 하는데.... 너무 하기 싫다..
내 안에 두 가지 '나'의 치열한 싸움이 생길 때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이 치열함은 일상 속에서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다. 심지어 매일.
'첫 번째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내가 잠을 자는 것을, 내가 푹~ 쉬는 것을, 내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그리고 여행하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어느 날에는 아무도 걷잡을 수 없이 게으르게 늘어져 사는 것을. 사랑한다. '두 번째 나'도 나를 사랑한다. 내가 멋진 몸을 가꾸는 것은, 멋진 상을 타는 것을, 내가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을, 때로는 남들보다 돈을 더 벌고, 영어도 멋지게 잘하고, 남들이 나를 부러워할만한 것들을 이루는 것을. 사랑한다.
이 두 가지 마음이 서로 부딪힐 때, 주로 '아.. 나도 모르겠다..'와 같은 말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나와 같다면, 이 글을 통해 두 가지 마음의 좋은 합의점을 찾을 수 있기를.
자, 이제부터 첫 번째 나를 '놀자' - '인생 뭐 있냐, 놀자!'라고 외치는 나, 두 번째 나를 '철자' - '철 좀 들자'라고 말하는 나 -라고 지칭해 본다. 놀자와 철자는 둘 다 좋은 녀석들이다. 나름의 장점이 확실히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사랑스런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두 녀석의 밸런스를 잘 맞춘다는 것은, 사실상 엄청난 자아분열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놀자와 철자가 같은 비중을 가진다면 만화책 한 권이라도 맘 편히 볼 수도, 몸매와 건강 생각에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맘 편히 먹을 수도 없다. 이 두 녀석은 서로가 서로에게 그야말로 앙숙 같은 존재다.
그래서인지, 두 녀석은 서로에게 ‘아.. 그러지 말걸..’이라는 후회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을 선물하곤 한다.
대학생 시절, 존경하는 한 교수님께서 수업 중 잠시 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누군가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한다고 할 때 말이야.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누군가는 내가 여기서 출발해서 도착까지 몇 시간이 걸리는지 체크하고, 그 안에서 읽을 책 같은 걸 들고 타기도 하거든.
이 기차가 도착까지 3시간이 걸린다 하면, 이 사람은 3시간 동안 바깥 풍경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책만 집중해서 읽고 도착했을 때, 그 책을 다 읽었다는 것에 엄청 뿌듯했다고 하자고. 근데 알고 보니, 그 기차는 스위스의 아름다운 절경이 훤히 보이는 융프라우 골든패스라인이었어. 그럼 그 사람은 과연 그 기차를 잘 탄게 맞을까?
너희가 20대 초중반이라는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말이야. 전공이라는 책을 들고 타서 졸업 후의 세상으로 여행 중이라고 하면. 너희가 이 책을 열심히 읽고, 내려서는 그 책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좋지만, 한 번쯤은 눈을 들어서 바깥 풍경도 보고. 그것을 보면서 감탄을 하기도 하고, 사색에도 잠겨보고. 연애도 해보고, 새로운 것도 시도해 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사실은 이 대학이라는 기차를 내리고 난 뒤에, '덜' 후회하는 대학생활이 되지는 않을까?"
그 말에 힘입어, 대학생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온갖 것들을 해보려 설치다.. 책을 덜 읽고 사회에 나와버려 호되게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아무튼, 교수님 말씀처럼 사실 두 자아 모두 각자에게 가장 적절한 때가 있다. 놀자가 확실히 활약해 줘야 후회하지 않을, 놓치지 않는 인생 절호의 순간이 있는가 하면 평소에는 꾸준히 철자의 말을 들어야 후회하지 않는 결과를 받아 낼 수 있기도 하다. ‘두 자아 중 어느 녀석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인생을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생길 후회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목적 하에, 둘 중 어떤 녀석이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지 혹은 사용할 것인지 점검하고 결정하는 것이 중요해질 따름인 것 같다. 그렇다. 결론적으로 놀자와 철자, 이 두 녀석은 다 좋은 녀석들이다. 두 녀석 다 나를 너무 사랑해서, 단지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
사실, 놀자와 철자는 항상 대립하는 것도 아니고, 대립만 하는 것은 아니다. 덕질과 업이 일치한다는. 소위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덕업일치(德業一致)가 가능하다면! 놀자와 철자는 큰 시너지를 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대개는 덕업일치를 이뤘다가도, 덕질이 업이 되는 순간 일과 쉼의 경계가 다시 생기기 쉬워서.. 이 또한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후회 없는 삶’이라는 같은 욕망의 두 가지 다른 형태가 놀자와 철자일진대, '무엇 때문에 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명확히 내릴 수 있다면. 이들의 다툼은 보다 좋은 합의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삶의 이유를 잘 정한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노는 것도 쉬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이전에는 놀자 혹은 철자의 영역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던 것들이 한 가지 공통의 목표를 가지게 해 준다. 쉬어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잘 쉬어야 것이 중요한 일이 되고, 주어진 일에 집중해서 할 때도 같은 목적을 위해 놀자가 방해를 하지 않게 된다.
이처럼, 잘 정해진 삶의 목적은 내 안의 두 가지 '나'들이 대립이 아닌 타협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내 행복과 삶의 목적에 대한 답을 내리기 전까진, 이들의 치열함은 쉽게 허무한 다툼으로 끝나고 '죽지 못해 산다'와 같은 표현으로 그 다툼이 마무리되기가 쉽다.
'삶의 목적과 이유'라는 토픽 자체로 또 다른 커다란 토픽이 되어버리는 감이 있지만, 고민 끝에라도 이것들이 잘 정해진다면 확실히 마음을 다스리기 편해진다.
사실.. 나름 삶의 이유를 잘 정했다 하더라도, 다시 매일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끝나지 않는 크고 작은 치열함으로 나는 참 고생이 많다. 놀자와 철자. 이 두 놈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 낼 나를 위하여.
Meta Keywords:
후회, 삶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