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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Cha Apr 23. 2023

나는 오늘도 멍을 때린다

멍을 때릴 때도 주체적으로.

Il faut vivre comme on pense,
sans quoi l'on finira par penser comme on a vécu.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온 것처럼 생각하게 될 것이다.

Paul Bourget, 1914

프랑스 작가·비평가 폴 부르제의 이 말.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로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오 멋진 말인걸’이라고 생각했고, 두 번째 들었을 때는 ‘그렇긴 하지..’ 정도 생각했는데, 한 세 번째쯤 들을 때부터는 ‘살기 바빠 죽것는데, 그래서 뭘 어떻게 생각하는겨..’라는 생각이 들어오고 있는 요즘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소위 ‘꼰대’라는 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제대로 된 솔루션은 제공하지도 않으면서 상대방의 고민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태도다 보니. 저 문장을 아무런 문맥 없이 들었다가는.. 아무래도 거부감이 들기 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은 내가 예민 보스  


부르제 형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뭐 그래서 어떻게 '잘' 생각하는지는 각자의 몫에 남겨버리는 게 문제라면 문제 같달까. 우리는 이미 생각하기 싫어도 너무 생각할 것이 많은 삶을 살고 있지 않나. 그래서 이 멋진 말이 진짜 우리에게 실용적으로 다가올 수 있게, 거부감 없이 다가올 수 있도록.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아래 문장 정도 될 것 같다.


우리는 주체적으로 멍 때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주체할 수 없이 멍 때리게 될 것이다.

Peter Cha, 2021


멍 때린 뒤 비로소 가능한 것들.


왜 하필 '생각하다'를 대체하는 동사로 '멍 때리다'를 사용했는가 하면, '생각한다'라는 동사의 가장 반대에 있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멍 때리기'이기 때문에 그렇다. 더욱이, '생각해라'라고 하는 것은 정말 듣기 싫은 명령조의 말이 되기 쉽지만, '멍 때리기'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어느새 주체적으로 하고 있는, 정말 친숙한 행위다.


애초에 멍 때리기는 아주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삶의 부분이다. 당장 오늘만 해도 나는 회사를 나오면서, 이제는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고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래서 폰을 좀 보긴 하지만, 주로 졸거나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면서 퇴근을 주로 하는 편이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에게 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쉴 수 있을 때 쉬지 않으면 번아웃이 온다라는 걸 알기에, 어쩌면 본능적인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적절한 휴식 뒤에 비로소 가능한 것들이 있는 것이다. 개발자들에게 화장실은 '깨닮음의 장소'로 일컬어지는데, 왜냐하면 모니터 앞에서 몇 시간째 끙끙대며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볼 때,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키는 이 세로토닌의 장소에서 좋은 아이디어들이 떠올라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개발자들만 그런가?)



주체적으로 멍 때리기.


한 번은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잠에 들고 눈을 떴더니 12시간이 지난 적이 있다. 그때, '아 내가 정말 피곤했나 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한 번은, Netflix를 홀린 듯이 끝까지 다 봐버리고 나서야, 내일까지 완료해야 하는 일이 있었음(소름)을 깨닫기도 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내가 나를 잘 아는 것만은 아니구나'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나는 '내가 좀 쉬어야 하는 상태'인지, '내가 이제는 충분히 쉬었으니 그만 쉬고 더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 상태'인지, 종종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된 것 같다.


어머니이신, 박 여사님의 말처럼 '뭐든지 적절히'가 좋은 법이다. '내가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하나고, '내가 이제 충분히 멍을 때렸는지' 파악하는 것이 또 다른 하나다. 이 두 가지 생각으로 스스로를 잘 점검할 수 있다면, '나는 나와의 대화를 꽤 잘하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나를 잘 점검하게 해 주기 때문에 그렇다.




파도에 휩쓸리듯 나도 모르게 정신없이 사는 이 삶과 고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또는, 나의 향방 없이 지속되는 이 멍 때림을 지속해도 되는지. 이런 생각들은 어쩌면 폴 브루제가 말했던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의 첫 번째, 두 번째 퍼즐 조각들 쯤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주체적으로 멍을 때리며 이 퍼즐 조각들을 '내 인생'이라는 판에 맞춰보게 되는 것이 생각하는 삶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폴 브루제 형님이 말하고자 했던 생각하는 삶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멍을 때린다.


Meta Keyword:

멍 때리기, 휴식, 생각하며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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