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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Sep 07. 2023

금융자본주의가 점령한 아프리카 기후정상회의

그리고 시민사회의 우려와 비판

올해 12월 두바이에서 열릴 2023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를 앞두고 아프리카 각국 정상이 케냐 나이로비에 모였다. 케냐 대통령 윌리암 루토(William Ruto) 주도로 처음으로 개최된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Africa Climate Summit)에 25개 국가 및 정부 정상, 국제기구, 시민사회단체, 기업 등이 모여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녹색성장과 기후 금융 솔루션을 활성화할 것인지를 논의했고, 회의 3일 차인 어제(9월 6일), "나이로비선언(Nairobi Declaration)"과 함께 막을 내렸다.


출처: 2023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 홈페이지


루토 대통령은 아프리카가 가진 청년 및 천연자원과 녹색 경제의 잠재력이 상당하고 아프리카의 기후와 발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곧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이번 정상회의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발전과 기후변화 대응에 관련된 기존의 국제 금융이 오히려 아프리카 각국을 부채의 덫에 빠지게 했다며, 아프리카가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공정한 접근을 요구했다.


아직 나이로비선언의 전문이 공개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여러 언론에 보도된 것을 종합해 보면, 이번 선언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지구 온도 1.5도 상승 저지를 위한 글로벌 탄소배출 43% 저감

전력 및 청정에너지 보급을 위한 노력

북반구가 2009년 코펜하겐 기후 회의에서 약속한 연간 천억 달러 규모의 기후 금융 제공 이행

작년 COP27에서 합의한 '손실과 피해' 재원 조성 실행

화석연료 거래, 해상 및 항공 수송에 대한 탄소세 부과를 통한 기후 관련 대규모 투자 활성화

탄소배출권 등 시장 기반 접근 강화

다자개발은행의 빈곤국 대상 양허성 차관* 확대 등

* 양허성 차관: 일반 금융에 비해 이자, 거치기간, 상환기관이 대출받은 국가에 유리한 차관

케냐 언론 NATION에서 정리한 나이로비선언 주요 내용. 출처: NATION


이번 기후회의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여러 참석자가 탄소배출의 획기적 저감의 필요성과 기존의 국제적인 기후 대응 프레임워크가 아프리카에 불공정하고, 약속된 것도 이행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채무 상황 부담으로 국내 기후변화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점을 언급했음에도, 여전히 금융, 투자, 탄소배출권과 같이 시장 중심적이고 금융자본주의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3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 주요 주제. 출처: 2023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 홈페이지


정상회의의 주요 주제 또한 ▲ 기후 행동 금융, ▲  아프리카를 위한 녹색성장 아젠다, ▲ 기후 행동과 경제 발전, ▲ 글로벌 자본 최적화로 시장과 금융에 치중되어 있었다. 미국 정부 특사로 정상회의에 참석한 존 케리가 "우리는 탄소시장의 성장이 아프리카와 지구촌 남반구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이 시장은 수십억 달러 규모가 되어야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고, 이를 위해서 우리는 이 시장에 환경건전성을 확보해야만 합니다"라고 말하며 탄소시장 확대를 강조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https://www.citizen.digital/news/john-kerry-urges-growth-of-carbon-markets-to-address-climate-change-n326687


하지만 이런 금융자본주의적 접근에 대해 아프리카 내외의 500여 개 시민단체의 연대체 "Real Africa Climate Summit"은 루토 대통령과 아프리카 각국 정상, 그리고 아프리카연합에 공개서한을 보내 이번 정상회의가 "중대한 기후 문제에 있어 아프리카의 이해와 위치를 강화하기보다 아프리카를 희생해 친서구적 의제와 이해를 증진하는데 열중하는 서방 정부, 컨설팅 회사, 자선단체에 의해 장악"되어버렸다고 비판하고, 시급히 정상회의를 "재설정(reset)"할 것을 요청했다.


시민사회단체 연대모임 "Real Africa Climate Summit 23"의 공개서한 전문 보기: https://www.realafricaclimatesummit.org/


정상회의 시기에 맞춰 "아프리카 민중 대안 정상회의(African People's Alternative Summit)"을 개최하는데 참여한 케냐의 기후활동가 에릭 은주구나(Eric Njuguna)는 정상회의 종료 후 한 인터뷰에서 이번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는 탄소시장 확장을 원하는 맥킨지&컴퍼니 같은 서방 컨설팅 회사 및 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탄소시장 확장은 아프리카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인터뷰 기사: https://www.democracynow.org/2023/9/6/africa_climate_summit_held_in_kenya


탄소시장은 기본적으로 기업과 지구촌 북반구 국가들에게 공동으로 오염할 권리를 주고, 그들은 탄소시장의 이름으로 그들의 땅에서 쫓겨난 로컬과 선주민 공동체의 땅에서 배출을 상쇄합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나이로비 정상회의에 맞서 아프리카 민중 대안 정상회의를 조직해 아프리카 민중이 그들의 요구와 이해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와 플랫폼을 마련했습니다. - 에릭 은주구나


그렇다면 이들 시민단체와 대안 정상회의가 원하는 아프리카 기후 대응의 방향은 무엇일까? Real Africa Climate Summit은 앞선 공개서한 말미에 8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1. 정상회의 조직에서 맥킨지의 통제와 영향에서 벗어나 정상회의 의제 재설정을 위해 아프리카  주도하는 전무가 그룹을 구성해야 한다.

2.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 협약(UNFCCC)에 참여하는 아프리카 각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앞세우는 아프리카의 이익과 우선순위를 진전시켜야 한다.

3. 아프리카의 기후, 에너지, 개발 이슈를 통합하는 접근을 채택해야 한다. 이러한 아프리카 주도의 통합적 접근이 없다면, "녹색 성장"과 같은 개념은 "신식민주의"를 심화할 뿐이다. 

4. 아프리카의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방해하려는 화석 연료 산업과 서방의 이익, 아프리카 내 화석연료 생산국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에 집중해야 한다.

5. 부국과 부자가 계속해서 아프리카를 오염시키고 쓰레기장이나 기술 실험장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탄소시장이나 지리공학(Geo-engineering)과 같은 잘못된 해결책을 피해야 한다.

6. 공적 및 사적 금융 삭감을 통해 아프리카 내 신규 석유, 가스, 석탄 프로젝트의 퇴출할 수 있도록 아프리카의 발전과 IPCC, IEA 그리고 다른 과학적 기구의 제언을 반영한 정의롭고 공정한 기후 정책의 도입과 시행이 필요하다.

7.  기후와 에너지, 발전이 얽힌 문제 해결을 위한 아프리카 공동의 내러티브와 의제를 만들기 위해서 시민과 정책입안자 사이의 투명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

8. 이러한 노력을 실현할 수 있는 충분하고 합의된 기후 자금을 제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프리카 각국 정상과 시민사회 모두 국제 금융 제도의 불공정함과 부정의함을 알고 있지만 정책을 만드는 사람 대부분은 그 문제를 또 다른 금융자본주의를 통해 해결하려는 모순된 행보를 보인다. 한국 정부를 포함한 비-아프리카 행위자들 또한 탄소배출 자체를 줄이려는 노력 대신 '상호 이익'을 내세워 자국의 탄소감축 목표량을 다른 나라에서 확보하는 크레딧을 포함한 탄소배출권을 확보하는데 열 올린다.  


ODA를 통해 탄소배출권(크레딧)을 확보한다는 목표가 담긴 한국 정부의 그린 ODA. 출처: '24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안) 


기후위기를 일으킨 주범인 금융자본주의 세력이 기후변화 "전문가"로 탈바꿈해 "해결책"을 내놓고, "녹색" 주변에는 이 위기를 자꾸 비즈니스 기회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들러붙어 그 의미를 흐리고 있다. 수많은 국제적인 "기후" 회의와 "그린" 개발협력/ODA는 기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일까 그저 하던 대로 비즈니스를 계속하려는 시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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