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숲, 틈 (2025)
얼마 전 반짝다큐페스티발에서 <숲, 틈>(최예린, 2025)이란 작품을 보았다. 일본 군마현에 있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 추모비 철거에 저항하는 운동이 주제인데, 작품은 현장에서 저항하는 시민들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추모비를 세우는 기억 활동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숲, 틈>의 구성은 마치 추모비를 세우듯 층층이 겹쳐져있다.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16분 동안 나는 군마현에 있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이름의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 추모비를 찾아 걸어가는 길을 걸으면서, 극우단체와 공권력에 맞서 추모비를 지키려는 시민들 속에도 들어갔고, 추모비가 세워질 당시 청소년이었던 100명의 시민과 함께 일제 강제동원의 역사/력사/歴史를 깊이 기억에 새기고 성찰하겠다는 결의를 담은 비문을 읽었다.
군마의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 추모비는 2004년 일본 시민사회가 군마현 정부와 논의하여 10년 기한으로 건립한 추모비로, 설치 당시 정부는 정치행사를 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추모비 건립을 승인했다. 하지만, 2012년 열린 추도제에서 한 참가자가 '강제연행'을 언급하자 우익단체들은 이들이 '정치적'이라며 당국에 민원을 제기했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설립 허가 갱신을 거부하고 철거에 나서게 된다. 제국주의와 강제동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활동은 존재 자체가 정치일 수밖에 없기에 이런 결말은 예견될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추모비를 유지하고 과거를 통렬히 성찰하는 선택을 하는 정치도 분명 가능했기에 군마 추모비 철거는 추모비 철거 이상의 것을 상징한다.
군마 추모비 관련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82822390004763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12914570002378
군마의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 추모비는 과거를 왜곡하고 지우려는 세력의 트집 잡기 때문에 2024년 1월 29일 정부에 의해 철거되었다. 철거 당국은 "철거 및 원상회복"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마치 기억과 역사, 소수자를 철거하고 지워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만들 수 있다는 말 같아서 섬뜩했다. 한국에서도 차별선동과 증오발언이 점점 더 공공연해지고 있다 보니 이 일이 남의 일 혹은 한국이 피해자가 되는 일로만 보이지가 않았다.
혐오와 차별의 범람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양심과 희망, 서로를 지켜 낼 수 있을까? <숲, 틈>은 국경을 넘는 기억에서 희망을 찾는다. 추모비 이후의 시공간에서 작품 속 사람들과 관객은 함께 읽고, 말하고, 기억하며 각자의 마음속에 크고 작은 추모비를 세웠다. 잊으라는, 신경 끄라는, 너만 생각하라는 말로 가득 찬 세상에서는 기억하는 일이 그 자체로 저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