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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May 13. 2019

세상과 연대한 김복동 님을 기억하다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추모와 기억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5월 8일(수요일)부터 6월 8일(토요일)까지 올해 초 세상을 떠나신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특별전을 개최한다. 원래 박물관은 일요일과 월요일 휴관하는데, 이 특별전 기간 동안은 특별히 일요일도 개관하여 오늘 다녀올 수 있었다.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추모와 기억전' 포스터가 걸려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입구. Photo: 우승훈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난 김복동은 학교에 다니다 그만둔 뒤 집안일을 돕던 중, 15세의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연행되었다. 당시 김복동과 그의 가족은 김복동이 정신대로 군복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내가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 못 해도 엄마한테는 말해라."
"내가 간 데가 공장이 아니더라. 군인 받는 공장이더라."
내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통곡했어.
- 김복동. 양산에 암자 中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그렇게 부산을 거쳐 일본 시모노세키로 끌려간 김복동은 아시아 곳곳을 침략하던 일본군의 '위안'을 위해 중국 광둥, 인도네시아, 자바, 싱가포르 등지를 이동하며 성노예 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너무 괴로워 자살을 시도했지만, 결국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아 8년 만인 1948년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몇 해 뒤 결혼도 했지만 아이를 놓지 못한다는 이유로 심한 구박을 받고,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 등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의 생존자가 되었다. 이후 부산 다대포에서 작은 가게를 하던 김복동은 1991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처음으로 공개 증언을 한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 김학순을 보고 1992년 초, 정신대 신고 전화를 통해 자신의 피해사실을 밝혔다. 


'내가 나서서 증언을 하지 않으면 평생 묻혀버릴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나서 공개 증언을 시작한 김복동은 갖은 방해와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더 큰 세상과 연대하며 운동가로 성장했다.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추모와 기억전' 포스터


김복동은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운영한 전쟁 성노예에 대해 고발할 수 있는 곳이라면 국내뿐 아니라 국외 어디든 가서 증언했고, 한발 더 나아가 세계의 전시 성폭력 생존자들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모든 약자들과도 연대했다. 그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과 함께 전시성폭력 생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설립했고,  베트남 한국전 성폭력 생존자에게도 사죄와 지원의 메시지를 보냈으며, 여성인권실현과 전시성폭력 방지를 위해 헌신한 국제 여성인권단체 또는 활동가를 지원하기 위한 상인 '김복동 평화상'도 제정했다. 이 상을 운영하는 정의기억재단은 2018년 제1회 김복동 평화상 수상자로 우간다 내전 성폭력 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아칸 실비아 오발을 선정했다. (관련 글: https://brunch.co.kr/@theafricanist/27)


나도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 피해를 입었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한국 국민으로서 사죄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열심히 나비기금을 모아서 지원하겠습니다. 앞으로 커가는 후손들과 어린애들은 절대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니, 각국 나라에서 전쟁이 없는 나라가 되도록 힘을 써주면 좋겠습니다. (김복동. 2014년. 출처: 여성신문)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2층, 평화의 소녀상. Photo: 우승훈


김복동은 2011년 일본 동북부에 대지진이 나자, 국내에서 피해자 돕기 모금을 제안하고 제1호 기부자가 되었고, 2016년 규슈 지역 강진이 있었을 때도 100만 원을 기부하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이후 수요시위) 참여자들에게 모금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김복동은 "우리는 일본 사람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해를) 단지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조금만이라도 모금에 협력해 달라"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또한 어느 수요시위 날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도 동참했는데, 김복동은 그들을 향해 "이 할머니도 희망을 가지고 매주 수요일 거리에 나오니 힘내세요"라고 응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출처: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3/all/20190206/93995499/1)


박물관 앞에 붙어있던 응원의 메시지. Photo: 우승훈


이번 전시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개관 7주년 기념으로 개최된 특별전이다. 이 전시를 보러 가면, 박물관의 상설 전시회도 볼 수 있는데, 다소 복잡한 구조의 작은 박물관이었지만 구성이 아주 좋았다. 소리와 시각적 효과, 생존자들의 육성을 활용하여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무거움과 참혹함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지하 1층)해서 각종 자료를 통해 '위안부' 제도의 실체와 그 피해, 그리고 생존자들이 참여한 운동사를 살피고(2층) 마지막으로 전쟁과 여성 인권, 평화를 위한 연대를 제안(1층)하는 흐름은 관람객들을 단순히 일본의 '위안부' 운영에 대해 분노하거나, 생존 여성들을 불쌍히 여기도록 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 거대한 평화 운동의 흐름 속으로 초대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것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이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박물관 입구. Photo: 우승훈


이번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추모와 기억전'을 설명하는 글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김복동은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자였지만, 우리의 이별은 여성인권·평화운동가 김복동을 떠나보내는 일이었습니다. (중략) 어느 곳 어느 자리에 서있는 누구에라도 아픔이었고 위로였고 마마(Mama,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어머니를 뜻하는 말)였고, 영웅이었던 김복동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그 삶을 기억하는 일은 오늘 우리 모두가 김복동이 되어 희망을 잡고 살았던 그녀를 따라 평화와 인권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김복동은 떠났지만,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끝나지 않았고, 수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고 있으며, 거기서 살아남은 수많은 김복동들이 전쟁과 폭력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2014년 '나비기금'의 첫 지원대상자였고, 2016년 세상을 떠난 성폭력 생존자, 여성인권 운동가 레베카 마시카 캇수바(Rebecca Masika Katsuva, 1966-2016)가 살았던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아직도 광물, 다국적 기업, 복잡한 국제정치가 얽혀있는 분쟁이 이어지고 있고, 군사조직들은 성폭력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관련 글: https://brunch.co.kr/@theafricanist/48)


콩고도 콩고지만, 멀리 볼 것도 없이 경기도의 미군 부대 앞에 있는 '기지촌'에서 강제 성매매를 당한 필리핀 여성 이야기가 최근 보도되기도 했다. (기사(영상):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260829)


전쟁을 포함한 폭력이 여성의 몸을 전장으로 이용해온 역사는 너무나도 길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보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야 말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고 평화를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변화를 만드는 일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특별전을 찾아 김복동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그의 길을 따라 폭력과 싸우는 여성과의 연대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 고통을 받고도 사는데 나보다 더 딱한 사람이 안 있겠나. 이 천지 하늘아래 엄마라고 불러줄 핏줄 하나 없지만은 내 힘닿는 데까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와 같은 일을 당한 여성들에게 보탬이 되도록 힘껏 돕겠습니다. (김복동.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박물관 뜰에 있던 김복동 포토월. Photo: 우승훈


인권운동가 김복동. Photo: 우승훈



덧.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가는 길.


박물관으로 향하는 골목 초입부터 이어지는 벽화들. Photo: 우승훈

2004년 정대협에서 발족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위원회'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모금과 뜻을 통해 2012년 개관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겪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공간"인 동시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하며 전쟁과 여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행동하는 박물관"(박물관 홈페이지-박물관 소개)이다.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박물관은 큰길에서 약간 떨어진 골목길에 자리 잡고 있어, 초행인 나는 가면서도 이 길이 맞나 싶었다. 그래도 길 안내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하여 박물관이 위치한 골목 초입에 들어선 뒤 벽화나 포스트잇 메시지들을 따라가며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입구가 닫혀있어서 좀 당황했다. 아마도 입구는 항상 닫혀 있는 것 같으니, 입구가 굳게 닫혀있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회색 문을 옆으로 드르륵 밀면 "과거에 이러한 비극이 있었구나 하는 역사의 평화의 공부방 (2012. 5. 5. 본 박물관 개관식, 김복동 선생님의 축사 中)",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이번 특별전 기간 동안 박물관은 월요일만 휴관하지만, 원래는 일요일과 월요일이 정기 휴관일이며, 관람일에는 오전 11시부터 18시까지 운영된다. 관람 요금은 65세 이상 성인과 장애인은 1,000원, 청소년은 2,000원,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는 1,000원, 그 외 성인은 3,000원이다. 관람료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운영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및 전시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활동에 쓰인다고 한다. 더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http://www.womenandwarmuseum.net/)


박물관에 거의 다다랐음을 알게 해 주는 포스트잇 메시지들. 노란 나비모양 포스트잇에는 박물관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남긴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Photo: 우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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