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칸 실비아 오발, 제 1회 김복동 평화상 수상 그리고 신의 저항군
우리는 아직 해방이 안 됐어요. 왜 우리를 ‘위안부’ 할매라 부르나요? 노예로 끌려 다니며 희생된 ‘성노예’인데….
여성인권활동가 김복동
2015년 말, 한일 외교장관이 발표한 한일 정부 간 일본군 '위안부'합의에 반대하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발족한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후 정의기억재단)이 지난해 처음 제정한 '김복동 평화상'의 초대 수상자로 우간다의 아칸 실비아 오발(Acan Sylvia Obal)을 선정했다. 정의기억재단은 이 상의 제정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김복동평화상'은 1990년대 피해사실 증언 이후 다양한 국내, 국제 캠페인을 통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 전시성폭력 근절 그리고 평화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여성인권활동가의 삶을 살아오신 김복동 할머니의 뜻을 이어받고자 여성인권실현과 전시성폭력 방지를 위해 헌신한 국제 여성인권단체 또는 활동가를 지원하기위해 2017년 11월 25일 제정되었다.
(김복동 활동가에 대한 여성신문의 기사: http://www.womennews.co.kr/news/85446)
그리고 아칸 실비아의 수상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아칸 실비아는 노르웨이 난민 위원회에서의 난민 지원 활동을 통해 인권운동가로서 취약계층의 인권향상을 위해 주력하였다. 이어 2011년 Golden Women Vision in Uganda를 결성하면서 우간다 북부지역의 무력분쟁으로 인한 전시성폭력 피해 여성과 아동의 인권회복활동과 이들의 자활지원 활동을 진행하며 여성인권운동에 기여해왔다.
아칸 실비아의 활동이 그 의미가 남다른 것은 본인 스스로 역시 전쟁폭력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아칸 실비아의 아버지느 전쟁 중 살해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반군에 의해 어머니 또한 납치되어 현재까지 그 생사가 불문명하고 그의 언니 또한 반군에 납치, 살해당하기도 했음에도 그는 여성인권을 보호하고 전시성폭력 재발방지를 위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전쟁을 무기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전시성폭력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우리의 책임을 깨닫게 하며 여성인권을 보호하고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칸 실비아에 대한 시상식은 8월 14일 제6차 세계 일본군'위안부'기림일 국제심포지엄 <73년간의 기다림, 마침내 해방>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이에 앞서 아칸 실비아는 12일, 인천 문학구장의 SK-기아전의 시구자로 나섰다. 한국에 생존해 있는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 숫자인 28을 등번호로 달고 시구자로 나선 아칸 실비아는 많이 벅차오른 듯 시구 전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마리몬드가 이번 시구를 제안했다고 한다.
(시구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eNDIMMkvVc)
북부 우간다 출신의 아칸 실비아 오발은 1980년대 후반 시작되어 약 20년 동안 북부 우간다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신의 저항군(Lord's Resistance Army, 이후 LRA) 반란 기간에 가족을 잃었다. 자신도 17세에 강간을 당하고 임신한 뒤 강간범과 강제로 결혼당했다. 하지만 전쟁과 성범죄의 생존자인 아칸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카리타스라는 NGO의 피해자 지원 사업에 참여해 요리법을 배웠고, 2000년엔 사람들이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용서와 화해를 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노르웨이 난민 위원회(Norwegian Refugee Council)에 행정보조로 들어갔다. 거기서 9년을 난민을 위해 일한 아칸은 2011년에 Golden Women Vision이라는 NGO를 공동으로 설립하고 반란의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사회 경제적 역량을 증진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Golden Women Vision은 공동체 기반으로 여성들에게 제빵, 비누 만들기 등 소득창출 기술을 가르치는 사업을 주로 진행한다고 한다. Golden Women Vision과 함께하고 있는 84명의 참여자 대부분은 반란 기간 동안 납치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과 아동들이다.
이제 북부 우간다에서 LRA가 활동하지는 않지만, 그 후유증은 여전히 크게 남아있다. 특히 반란 기간 중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여전히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신체의 일부를 잃거나 총상을 안고 살아가는가 하면, 홀로 가족을 부양하는 여성들도 많다. 2014년 발표된 Justice and Reconciliation Project의 보고서에 따르면 144명의 응답자 중 60%이 여성이 강간을 경험했고, 22%가 강제결혼을 당했했다고 응답했고, 97명 중 90명의 응답자가 지금도 과거와 같은 성폭력이나 성폭력 위협을 경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보고서: http://justiceandreconciliation.com/wp-content/uploads/2014/11/SGBV-Baseline-Report-Summary-WEB.pdf)
신의 저항군 Lord's Resistance Army
우간다 북부에서 시작해 약 30년 동안 우간다를 포함한 인접 국가에서 악랄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LRA의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촐리 민족 출신이자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티토 오켈로(Tito Okello)는 지금의 대통령인 요웨리 무세베니가 이끄는 민족 저항군(National Resistance Army, 이후 NRA)에 의해 축출당한다. 그리고 NRA는 우간다 전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해 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행정부와 군부에서 주류가 된 바간다 민족에게 위협을 느낀 북부지역의 아촐리 민족은 반정부 운동을 전개한다. 초기에는 알리스 아우마 라크웨나(Alice Auma Lakwena)가 만든 성령운동(Holy Spirit Movement Force, HSMF)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1990년대 초, HSMF가 정부군에게 패퇴하고 라크웨나가 케냐로 도주한 이후엔 그의 먼 사촌이자 기독교 전도사였던 조세프 코니가 반란 세력을 결집하고 LRA를 조직했다.
LRA는 우간다 대통령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Museveni)를 몰아내고 아촐리 민족주의와 성경의 10계명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정부군에 맞섰다. 이들은 상아, 금, 다이아몬드 밀수와 우간다와 갈등 관계에 있던 수단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30년 넘게 활동을 이어왔다.
LRA의 방식은 잔혹하다. LRA 창설 초기엔 북부의 아촐리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우간다 정부의 통제력 확대와 민간인 피해가 누적되며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그 결과 LRA는 강제로 사람들을 징집하기 시작했고, 징집을 거부하는 사람은 죽이거나 귀나 입술 등의 신체 일부를 절단했다. LRA의 활동 지역에서는 여성의 피해도 막대했다. 여성들을 납치해서 강간하거나 조직원의 아내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 LRA는 1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을 살해했고, 3만여 명의 아동을 포함하여 약 6만 7천 명 이상의 사람을 납치하여 소년병, 성노예, 짐꾼 등으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있다. 이런 행위에 대해서 2005년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조셉 코니와 주요 간부들을 전쟁범죄와 인권유린 범죄로 기소했다. 조셉 코니는 살인, 노예화, 성노예화, 강간 등의 12개 반인권범죄와 민간인 학대, 민간인 학살 지시, 약탈, 어린이 강제징집 등 21개 전쟁범죄로 기소되어 2005년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되어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우간다 정부의 'Operation Iron Fist'이후 우간다 내 LRA의 세력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우간다에서는 사실상 세력을 잃은 채 이웃 콩고민주공화국, 남수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LRA는 주로 조직원과 간부들의 사면을 걸고 우간다 정부와 몇차례 평화협상을 진행했지만, 결국 상호 신뢰의 부족으로 타결에 이르지는 못했고, LRA의 세력은 점점 작아져 갔다.
2008년, 우간다, 르완다, 콩고 군이 LRA를 섬멸하고 코니를 잡기 위한 합동작전을 펼쳤지만 작전정보가 유출되어, 코니를 포함한 LRA군은 작전지역을 사전에 빠져나갔다. 미국 찰스턴 대학 정치학과의 크리스토퍼 데이 교수는 LRA가 이 이후로 "생존 모드"에 돌입했다고 표현했다. (관련 논문: https://enoughproject.org/wp-content/uploads/2017/08/Survival-Mode-Rebel-Resilience-and-the-Lords-Resistance-Army.pdf)
2010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신의 저항군 무장해제와 북부 우간다 재건법(Lord's Resistance Army Disarmament and Northern Uganda Recovery Act)에 서명한 뒤 군사전문가를 파견하고, 코니와 주요 간부들 체포에 현상금을 걸었다. 미국과 아프리카연합 등의 압박으로 코니의 통제력은 약해졌으며, 최근 3년 사이 주요 간부인 도미닉 온그웬(Dominic Ongwen)과 미카엘 오모나(Michael Omona) 등이 항복했지만, 코니는 여전히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RA의 여단장이었던 도미닉 온그웬은 항복 이후 국제형사재판소에 구속되어 현재 전쟁과 반인권 범죄 70건에 대한 재판을 받고 있다.
현재 LRA에는 약 200여 명의 조직원이 남은 것으로 추정되며, 주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동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LRA에 의한 피해를 기록하고 있는 LRA Crisis Tracker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6명의 민간인이 LRA에 의해 사망하고 160여 명이 납치당했다. (홈페이지: https://lracrisistracker.com/)
타이틀 사진: 우간다 북부 최대의 난민촌인 Pabbo 난민촌. Flickr / John and Melan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