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 쿠데타 2년, 그리고 10.29 참사 3개월
가끔 “벌써 그렇게나 오래됐어?” 혹은 "그건 여전히 그래?" 싶은 일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뒤이은 군부 독재다. 2021년 2월 1일 있었던 일이니 이제 곧 2년을 꽉 채운다. 2021년 2월, 쿠데타 발발 1년을 맞아 동아시아연구원의 세미나에 참여하고선 민주주의와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고민을 쓴 적이 있었는데, 벌서 1년이 또 지났고, 군부의 독재와 폭력은 여전히 극심하다.
민주주의와 국제개발협력: https://brunch.co.kr/@theafricanist/154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의 통계에 따르면 1월 27일 기준,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은 2,894명이고, 정치범으로 체포된 사람은 17,492명, 그중 아직 수감되어 있는 사람은 13,689명이다. 지난여름에는 1988년 이후 처음으로 군부가 민주주의 운동가를 대상으로 사형을 집행하며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미얀마는 더 이상 국제사회의 제재가 닿지 못하는 국가가 되어버린 걸까? 예고 없는 정치범 사형은 군부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한 시도였다는 분석이 크다. 그중에서도 국민 지지도가 높은 민주화 인사는 군부의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미얀마 독립언론인 카웅(가명)은 사형 집행이 군부의 ‘넥스트 스텝(다음 단계)’이라고 본다. "처음에는 평화로운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맞섰다.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시민방위군의 무장투쟁이 일어나자, 이번에 그들은 초토화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혁명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군부는 정치범을 처형함으로써 시민 억압의 다음 단계를 밟은 것이다." - 시사인(22.8.19) "사형 집행 강행한 미얀마 군부, 그 다음 단계는?"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240
하지만 미얀마 시민들은 아직 굴복하지 않았다. 그동안 미얀마 국내외에서 저항운동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한국에서도 한국의 미얀마 시민들이 여러 조직을 만들고 행동하며 투쟁하고 있다.
지난 1월 29일 월요일엔 군사외교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옥수동의 미얀마 무관부에서 시작해 한남동의 미얀마 대사관까지 행진하는 집회가 있었다. 집회 내내 2023년을 군부독재 종식 원년으로 만들자는 다짐과 염원이 구호와 발언, 노래와 시 낭송에서 이어졌다.
이날 집회를 조직한 미얀마군부독재타도위원회를 포함한 재한 미얀마 단체들,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미얀마민주주의를지지하는한국시민단체 모임은 "미얀마 군부 쿠데타 2주기: 저항과 혁명의 행진"이란 성명을 통해 군부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고발하고 이에 굴하지 않는 투쟁의 의지를 밝혔다.
성명에서 이들은 "쿠데타 이후 2년 동안 민 아웅 흘라잉과 반란세력은 자국민 2천8백 명을 살해했고, 1만 7천 명을 체포해 고문했다. 또한 민가 약 5만 채를 불태웠다. 전국적으로 2백만 명이 넘는 국민이 집을 잃고 피난민이 되었다"며 군부의 수괴인 민 아웅 흘라잉과 쿠데타 세력을 "테러그룹"으로 규정했다. 이어 지난 2년 동안 미얀마 시민들은 집회와 군사작전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항했고, "봄의 혁명 성공을 위해 결코 물러서지 않고 투쟁할 것을 각오"했음을 밝혔다.
나는 2021년 미얀마에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한동안은 뉴스도 열심히 찾아보고 소식도 공유하고,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몸담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며 작은 기여라도 하려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내 상황이 바뀌고, 국내외에서 또 다른 일들이 생기며 한동안은 미얀마 소식을 거의 잊고 지냈다. 그러다 이 집회의 포스터를 보곤 ‘아, 아직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침 가겠다는 친구들이 있어 집회에 참여했다.
집회에 자주 나가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집회는 기억에 오래 남는다. 친구들과, 더 많은 사람들과 모여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같은 구호를 외치며 변화를 바랄 때의 마음, 거리에서 큰 소리를 내고 때로는 차도를 걷기도 할 때의 느낌, 집회 장소 주변을 통제하는 경찰의 존재에서 느껴지는 국가의 힘과 성격의 체감이 그날그날의 주제와 날씨, 풍경에 따라 여러 감정, 체험과 섞여 오래가는 기억의 뭉치가 된다.
이미 심각한 문제들이 해결되거나 충분히 고민할 겨를도 없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일이 생기고, 여러 소식과 정보(때로는 가짜 정보) 그리고 의견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시기에 무언가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차분히 고민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게 가다간 미얀마를 잊을 것 같아서 집회에 나갔는데, 이날의 기억으로 앞으로 또 있을 연대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집회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올해는 꼭 미얀마시민들이 군부 독재를 끝내고, 미얀마에도 한국에도 민주주의가 꽃 피면 좋겠다. 그 길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2년 민주주의 촉구 공동성명 (~1.31): http://forms.gle/GvitnSSQTSsBAn6g6
집회가 끝난 장소가 마침 한남동이라, 조금 더 걸어서 이태원을 찾았다. 10.29 참사 직후,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생겼던 시민 추모 공간에 갔던 이후로 처음이다.
참사가 났던 골목은 다시 개방되었고, 그 벽 한편에는 사람들의 쪽지와 희생자들의 사진이 붙은 추모의 벽이 있었다. 그날, 이 골목에서 책임자들의 무능과 무관심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다쳤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졌다.
가까이 살기도 하고, 이태원을 좋아해서 나도 가끔 지나곤 하던 골목을 참사 이후 처음으로 걸었다. 이제 그 골목에 있는 가게들도 다시 영업을 시작했고, 이 길을 통해 윗길과 아랫길을 오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곳의 공기와 바닥과 벽 모두가 무겁고 차갑게 느껴졌다. 참사가 진행되던 순간, 그리고 그 직후 온라인을 통해 여과 없이 전해지던 그날의 모습의 떠올라서 그렇게 느낀 것도 있지만, 3개월이 되도록 그 누구도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뻔뻔하게 날뛰는 것을 보면서 느낀 분노와 답답함, 우울함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이태원 추모의 벽은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 해밀턴 호텔 옆, 참사 현장에 있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가 마련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는 녹사평역 근처에 있다. 합동분향소에서 마침내 희생자들의 영정을 마주하고 헌화하고 묵념할 수 있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밝혀지지 않은 일들이 참 많다. 하지만 이렇게 기억하는 사람들과 그렇게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과 연대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10.29_itaewon_official/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명운동: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8vDzxAt8usX7O7jbUD_3JX0TLU6GjZNQimzz9xGpa6TUw2A/viewform?fbclid=PAAaaZnNqEx8agmY1Y8rngWDHRSDxVBCjBUtK6kj-6rlwH-3YzNu8zI9zTD-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