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좋아요

by 윤사과

지금처럼 코끝이 차가운 공기에 시큰거릴 때면 할머니집이 생각난다.

정확히는 설명절 즈음의 할머니집이다.


할머니집은 진주 산골마을 어딘가에 있었다.

멀미가 심한 나는 가는 길 내내 멀미를 해댔고, 도착해서는 오래 묵은 방 안의 먼지 탓인지 알레르기가 도져 눈물 콧물로 휴지 반 통은 너끈히 써댔다.

그중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은 화장실이었다. 그 집엔 문만 닫히고 잠기지 않는 푸세식 화장실과,

언제 고장 난 건지 모를 정도로 너무 잘 열리는 서양식 화장실이 있었다.

푸세식을 가자니 남들의 흔적을 감당할 용기가 없었고,

서양식을 가자니 친척들과 나의 하체를 공유해야 하는 상황이 두려웠다.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어 며칠씩 참고 버티다 보니, 시골에 다녀오고 나면 한동안 변비에 시달리곤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을 상쇄시킬 만큼 좋은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시골 아침 마당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

그 공기는 도시보다 더 차갑고, 더 맑았다.

그 공기를 코로 들이마실 때면 상쾌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몸속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진정한 목욕재계!


아침부터 분주한 친척들과의 어색한 마주침을 피하고 마음껏 차디찬 공기를 마시기 위해, 나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 앞 큰 나무까지 종종 걸어가곤 했다.

건물 2층 높이는 되는, 마을의 수호신 같은 커다란 나무였다.

그 아래 서면 나무가 만든 커다란 그림자 속에 갇혀 더욱 차가워진 공기를 뼛속까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거기까지 가서야 소심한 나는 마음껏 겨울 공기를 들이켰다.

이제 와서 보니 팔 한 번 크게 벌리지도 못하고 숨만 홀짝였는데,

그때의 나는 모든 게 부끄러웠나 보다.


겨울은 차갑지만 단정하고, 꼿꼿하지만 맑은 여인 같다.


겨울에 태어난 나는 겨울이 좋다.

작가의 이전글꽃사과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