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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ㄹim Oct 07. 2022

소소인간 。

    







여느 날처럼 벌러덩 누워 하늘 자전거를 타며 


과자를 아작아작 씹고 있는데 


내 방을 지나던 할머니가 돋보기안경 너머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계신 것이 아닌가.



그리곤 내내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다 마침내 입을 여셨다.




"누워서 뭘 먹으면 소가 된다카이"




구전되어오는 이야기를 특유의 진지한 표정과 근엄한 목소리로 구연하여


꼬마적 나를 여러 번 울린 경력이 있는 할머니였다.



 어릴 때야, 소? 소가 된다고? 으에에.. 하며 퍼뜩 일어나 자세를 고쳐 앉았겠지만. 


그로부터 강산이 세 번 바뀌었고. 그동안 새끼 토끼같이 말간 눈을 반짝이던 막둥이 손녀의


눈은 길게 가늘어지고 귀엽고 퉁퉁한 주둥이는 뾰족하게 날카로와져


어디 맛난 거 있나 없나 혀만 낼롬거리는 능구랭이가 돼버린 것을.

 


할머니는 아직 모르시는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호기심 반 장난 반으로. 끙-차. 



문 쪽으로 힘겹게 몸을 돌리며 답했다.





"할머니. 봐봐 봐. 내가 누워서 먹고 있긴 한데 동시에 이케 이케 발로 운동도 하고 있잖아. 먹는 게 운동으로 바로 사라지니까 똔똔이가 된다고나 할까. 암튼 나는 누워서 먹고 있다고

볼 수 없는 거지.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는 소가 될 수가 없다구."




살다 살다 별 그지 발싸개 같은 말을 다 듣는다. 라고 호통하실 것을 예상하고 인위적으로 팔자 눈썹을 만


들어서는 에구 오또카지 하는 표정으로다가 과자를 집어 드는 데,


할머니가 천천히 뒷짐을 지시며 이어 말하셨다.




"니넌 참으로 그리 생각하나?"


"응!"


"틀릿데이"


"응?"





"똔똔이가 될라카면. 니캉 묵는 속도 맹키로 발도 요래 요래 잽싸게 움직여야 카그든. 근데 암만 봐도


니는 씹고 묵는 거보다 발이 한없이 느린 기라. 우짜든 간에 니 말도 반 내 말도 반 맞으니까네.


니넌. 딱 그기다..그 그  뭐라카노 그 .."

 


"응???"




천장을 올려다보며  '뭐라카노' 를 대체할 말을 찾아 헤매던 나의 올모스트 백 살 조모는. 그러고도 꽤


한참이 지난 후 마침내 손바닥을 탁 마주치며 말했다.




"반.인. 반. 수 !"




불식 간에 머리에 뿔이 돋고 발목 밑으로 묵직한 쇠발 굽이 달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르륵


나도 모른 새 과자를 들고 있던 손이 툭 떨구어져 버렸다.


반면, 할머니는.


근래 들어 가장 흡족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 어느 때 보다도 활기찬 걸음걸이로


저만치 부엌을 향해 가고 있었다.





◊◊◊◊◊◊◊





다시 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끼들 끼들 킥킥킥 웃음 조각이 팝콘처럼 계속 튕겨져 나왔다.




' 반인반수라니! ' 




생각해보니 그랬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랑은 요즘 말로 치면 티키타카가 잘 되는 편이었는데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할머니와 '말' 을 나눈 지가 너무도 오래돼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더랬다.



육십 살 나이차가 무색한. 달콤 살벌 쫄깃한 우리의 우정 전선 이상 무! 를 확인 한



참으로 오랜만에 꽤나 괜찮았던 어느 늦은 일요일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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