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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 신동엽

시 읽기

by 박둥둥


화창한

가을, 코스모스 아스팔트가에 몰려나와

눈먼 깃발 흔든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여기 이렇게

금강 연변 무를 다듬고 있지 않은가


신록 피는 오월

서부사람들의 은행 소리에 홀려

조국의 이름 들고 진주코걸이 얻으러 다닌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여기 이렇게

꿋꿋한 설악처럼 하늘을 보며 누워 있지 않은가


무더운 여름

불쌍한 원주민에게 총 쏘러 간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여기 이렇게

쓸쓸한 간이역 신문을 들추며

비통 삼키고 있지 않은가


그 멀고 어두운 겨울날

이방인들이 대포 끌고 와

강산의 이마 금그어 놓았을 때도

그 벽 핑계삼아 딴 나라 차렸던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꽃피는 남북평야에서

주림 참으며 말없이

밭을 갈고 있지 않은가


조국아

한번도 우리는 우리의 심장

남의 발톱에 주어본 적

없었나니

슬기로운 심장이여,

물 속 흐르는 맑은 강물이여.

한번도 우리는 저 높은 탑 위 왕래하는

아우성 소리에 휩쓸려본 적

없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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