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짐과 떠오름 사이
오랫동안 교유했던 스님이 갑자기 떠오른다. 찾아뵌 지 오래라 근황이 궁금하다. 그는 시인이자 화가이자 전
각가이기 때문에 직업이 무엇인지 헷갈리지만 아무래도 스님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이분이 구도를 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전각을 하며 겪었던 하고 많은 에피소드 중에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 기억은 깊고 깊은 산중 암자에서 홀로 수행하던 시절의 얘기다.
지금처럼 따뜻한 봄날 오후, 툇마루에 앉아 있는데 이루 말할 수 없이 심심했다(고독이 아니라 심심이라고 말
했다)고 한다. 그날따라 바람도 없고 새소리도 없고 햇빛도 멈춰 있는 것처럼 적막했다. 그때 마당 건너 나무
에서 이파리 하나가 슬그머니 떨어졌는데, 그 잎이 너무나 반가워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모든 것이 정지된
세상에서 움직이는 것 하나가 나타나자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기억은 제주도의 어느 다방에서 유명한 시인을 만났던 날의 일이다. 스님이 전각가라는 것을 알고 있
던 시인이 ‘도장 하나 파 달라’고 부탁했는데 팔 수 있는 도구가 아무 것도 없었다. 전각은 돌이나 나무에 파는
것인데, 어쩌나 싶다가 스님은 먹고 있던 ‘무’를 싹둑 잘라 거기에 전각을 해주었다고 한다. 즉석에서 판 ‘무 도장’을 받아든 유명시인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시”라고 감탄하더라는 이야기다.
사람은 누구나 사는 동안의 기억들이 있다. 기억의 단면들을 잇고 이어 자기 삶의 역사를 회고하는데, 사실은 이을 수 있는 기억들보다 잊혀진 것들이 훨씬 많다(어쩌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다). 더러는 잊혀진 기억을 살려내고 싶을 때가 있고, 우연한 계기로 잊었던 기억들이 살아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특정한 음악이나 풍경, 장소, 장면들이 그런 작용을 해준다. 글씨나 그림, 특정한 형태나 소리, 날씨, 음식도 마찬가지다.
엊그제 이태리 식당에서 메밀 파스타를 먹고 몰도바 와인을 마셨는데 후식에 쫀드기가 나왔다. 세상에, 와인에 쫀드기라니. 쫀드기를 찢어먹다 보니 어린 시절 같이 놀던 순이가 떠올랐다. 순이는 건강한지, 다이어트는 잘하고 있는지, 여전히 쫀드기를 좋아하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궁금증이 이어졌다.
이런 궁금증, 기억인지 추억인지를 떠올리게 하는 소리가 있다. 저물녘 퇴근 무렵이면 창밖에서 찹쌀떡~메밀묵~소리가 들리는데 그때마다 의아하고 걱정이 들곤 한다. 서울 한복판, 강남 언저리에서 저것을 파는 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저 소리는 낡지도, 늙지도 않는다.
찹쌀떠억과 메밀무욱은 떡과 묵의 문제가 아니다. 외치는 억양, 소리가 같다는 게 문제다. 20년 전, 30년 전,
50년 전에도 저 옥타브, 저 억양, 저 리듬이었다는 확신도 든다. 똑같은 사람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고, 저 고유의 소리를 특허출원하라고 권하고도 싶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지만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고 강변하는 외침 같다. 외치고, 읊조리고, 기억하고, 궁금해 하는 이 모든 것들도 사라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