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우동
오랜만에 가족식사를 중국집에서 했다. 가장 간단한 코스요리를 먹고 식사 주문을 받을 즈음 갑자기 우동이 떠올랐다. 기름진 음식으로 더부룩해진 배를 따뜻한 국물로 가라앉히고 싶은 욕구가 생긴 듯했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선택을 고민해야 할 때 나는 우동을 시켰고, 그 순간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폭소가 터지면서 이런 성토들이 쏟아졌다.
종업원 : 우동요? 우동은 없습니다만.
막내딸 : 아빠, 중국집에서 왜 일본음식을 시켜?
큰딸 : 중식은 짜장이지. 그냥 짜장 드셔…
아내 : 갑자기 웬 우동? 제발 튀지 말아요.
늘 그렇듯 내 편은 없었는데, 아군이 없는 게 서운한 게 아니라 ‘중국집에 우동이 없다’는 게 뜨악했다. ‘일본음식’으로 알고 있는 막내의 우동 상식은 그렇다 치고, 같은 세대를 살아온 동반자까지 ‘웬 우동?’이냐며 힐난하고 있으니, 이런 희한한 고독이 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게 아니야, 우동은 짜장과 함께 중국집의 양대 산맥이었고, 일본음식이 아니라 중국이 발원지이며, 휴게소 우동과는 차원이 다른… 어쩌구저쩌구 하다가 ‘입틀막’을 당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짜장면을 먹는데 어찌나 맛이 없는지, 가뜩이나 더부룩한 배에서 가스 쌓이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더 우중충해져 갔고, 몸은 오뉴월 한기가 찾아올 것 같고, 눈물까지 고일 태세였다.
우산 아래 몸을 낮추고 걸으며 ‘중국집에서 우동이 사라진 이유’를 생각했다.
우선 우동이 짬뽕에 밀린 것은 언제부터일까 헤아려 보니 까마득하긴 했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이것이 문제라는 유행어가 시작된 까마득한 시절과 비슷하지 싶었다.
중국집에서 짬뽕이 우동을 밀어낸 것은 우리의 맛 취향이 자극적으로 변해가면서, 술의 마리아주로서도 짬뽕이 우월하다는 점에서, 백종원의 홍콩짬뽕이 전문점으로 입지를 굳히기까지, 여러모로 자연스러운 결과로 해석됐다.
짜장은 말할 것도 없이 중국집의 독보적 메뉴다. 짜장을 흉내낸 모방음식들이 등장하기도 어렵고 짜파게티니 짜파구리니 하는 것들이 별미 시늉을 해봤자 새발의 피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에 비해 우동은 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일단 독보적일 수가 없다. 비슷한 부류의 면요리들이 수두룩하고 ‘우동’으로 불리는 각종 국수들, 간편식들도 지천이다.
맛있는 요리, 희귀한 요리가 지천인 중국집까지 와서 왜 굳이 우동을 먹는단 말이냐. 비 내리는 거리를 걸으며 우동이 중국집에서 밀려난, 밀려나고 있는 이유를 헤아려 보니 근거들이 차고 넘쳤다.
다행히 우동은 중국집에서는 밀려났어도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길거리 여기저기서 흔하고 친숙하게 마주치는 것은 다반사지만, 고속도로 휴게소라는 맞춤장소가 등장한 것이다. 우동의 입장을 헤아려 보면, 휴게
소야말로 우동을 위해 탄생한 신흥업태다. 술을 못 마시는 곳, 시간에 쫓기는 곳, 자극성 맛을 거부하는 곳, 졸음을 유발하지 말아야 하는 곳.... 이곳의 우동은 짜장이나 짬뽕에게 밀릴 이유가 없다.
사람도 그렇지만 음식도 발 뻗고 누울 자리를 잘 찾아야 한다. 가장 서민적이고 가장 편안하고 가장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우동에게 힘을 주고 싶은 5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