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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어질 굿바이

생각 많은 연말 시즌

by 포포

요즘은 하루하루를 비상하게 자고 일어난다. 싱숭생숭 어질어질하다. 비상한 마음으로 출근하는 하루가 어쩐지 고맙고 새롭다고나 할까.

“전쟁 때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전쟁을 겪었던 선친이 했던 말이다. 아버지 말씀이라 새겨들으려 애썼지만 전쟁을 겪지 않았으니 체감할 리 없었다.


“독재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독재타도 투쟁에 나선 적도 없는 형님이 이런 말을 할 때는 마음속 반론이 일어났다. 일제나 독재 시대를 살았다면 인생의 방향을 보다 쉽게 정하지 않았을까.


“진짜 프로는 프로답지 않은 것이다.”

선배 기자가 한 말인데, 그저 근사한 말을 하나 싶었다가 설명을 들으며 이해했다. 기자답고, 작가답고, 선생답고, 군인답고… 그렇게 직업군에 길들여지는 것은 위험하다는 논지였다. 무리 속에 살지라도 무리 짓지 말아야 한다는 프로론이 새삼 (어느 군인을 보며) 떠올랐다.


날마다 사람을 만난다. 어떤 때는 피곤하고 어떤 때는 힘이 난다. 피곤에 절게 하는 사람과 에너지를 건네주는 사람이 있다. 오늘 하루,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 전반이 달라진다는 것을 절감한다.


우리는 Korea의 K 시리즈가 맹위를 떨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다행이고 영광인 한편으로 일제강점기나 남북전쟁기, 독재투쟁 시대를 살았던 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적극적인 항쟁을 했든, 소시민으로 생존만 했든, 눈치만 보며 기웃거렸든 상관없이 모두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이렇게 철든 회고를 하게 만든 비상계엄에도 마땅히 감사해야겠다).

사람을 구분하는 또 하나의 기준을 이번에 알고 말았다. 사람 중에서도 리더는 두 종류로 나뉘는데 난관 앞의 행동을 보고 알 수 있다. 설득하는 이와 명령하는 이다. 설득은 명분과 소신을 필요로 하고, 명령은 신분과 계급을 토대로 실현된다. 전자는 느리고 인내가 필요하며, 후자는 빠르고 단순하다.


누가 이기느냐, 어떤 것이 나은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용기, 그러려는 자세다. 정의와 불의, 의리와 배반, 옳고 그름을 구분하기가 의외로 어려운 시대다. 제복을 입은 이들은 더욱 그렇다. 제복 자체가 자의식 차단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복종하고, 한편으론 판단하고 구분할 줄 아는 용기(또는 지혜?)가 제복에게는 더 필요하다. 수많은 반대 논리가 나오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수많은 프로들(자의식을 가진 이들)에게 엄지척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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