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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처럼

희한한 세상을 지나가며

by 포포


광화문에 갔다가 오랜만에 무교동북어국집을 갔다. 점심식사 시간으로 이르다 싶었는데도 줄이 길게 서 있었다(식당 문앞에서 이어진 줄이 중간의 길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으로 넘어가 또 이어지는 특이한 형태였다).


잠시 갈등했지만 “회전이 빠르니 기다리자”는 동료의 말에 따랐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긴 줄이 금세 줄어들어 예상보다 빨리 입장할 수 있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은 기쁨과 급하게 먹고 나가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동시에 생겼고, 즐기는 반주를 못하게 된 아쉬움(술을 팔지 않고 오로지 북엇국 식사만 가능하다)과 간에게 휴식시간을 줄 수 있게 된 안도감도 동시에 생겼다.


커다란 대접에 담겨 나온 북엇국에는 북어 몇 조각과 잘게 썬 두부, 풀어진 계란이, 길쭉한 접시 위에는 부추절임과, 오이지, 김치가 조금씩 담겨 나왔으며, 별도로 나박지(물김치)가 자그마한 종지에 담겨 나왔다. 그중 무엇이든 더 먹고 싶은 걸 추가할 수 있는 게 이 집의 특징이다.


북어 추가, 두부 추가, 밥 추가를 취향 대로 주문하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모들이 후딱후딱 갖다 줬다. 모든 것이 후딱인데 밥과 국, 반찬들 모두 맛이 좋아 후다닥 먹고 나왔다.


여전히 반주를 못한 아쉬움과 개운하게 배를 채운 상쾌함이 공존하는 가운데 ‘잘 되는 식당들’의 공통점이 떠올랐다.

요즘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옛날 그대로’의 운영으로도 잘 되는 집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체계적 시스템이 보이지 않고 엉성하고 투박한 고객 응대(서비스란 말과는 분명 다르다)가 척척 돌아간다. 테이블 번호나 벨도 필요 없이, 손을 반쯤만 올려도 알아채고 내어 주는 ‘이모’들의 힘이랄까. 북어처럼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별거가 되는, 뭔지 모를 손정의 맛이랄까.

“이렇게 잘 되는 식당이 왜 프랜차이즈 사업을 안 할까? 대박 날 텐데…”

호남 지방의 어느 식당에서 무심히 내뱉었던 말이다. 무교동북어국집처럼 음식은 맛깔나고 손님들은 바글바글했다.

이제 그 말에 사과하고 싶다. 이렇게 잘 되는 집이 왜 굳이 프랜차이즈를 내겠는가. 골치 아픈 경영과 빈틈없는 관리에 빠져 시름할 이유가 있겠는가 싶은 감정이입이 됐다. 단일한 맛집으로 유명세를 탄 곳들이 프랜차이즈로 나섰다가 실패한 경우를 수없이 봤기 때문이다.


북어는 북(北)쪽 물고기(漁)란 뜻이다. 북쪽 바다, 함경도와 강원도쪽 동해에서 많이 잡혔다는 의미다. 다른 말 명태-생태-동태-황태-먹태-노가리 등등은 먹는 형태별로 붙여진 것들인데 한국에서 유독 이름이 많다(잡는 시기, 먹는 방식, 생긴 모습, 지역별 방언까지 합치면 수십 가지 이름이 있다). 세계 1위 어획량(&소비량, 단위는 마리가 아니라 톤이다)인 멸치 다음으로 많이 먹는 어류, 한국에서도 언제 어디에서나 어떤 형태로든 쉽게 접하는 대표 어류다.


물론 지금은 한국산을 볼 수 없다. 기후변화 때문에 북어들은 더욱 북으로 북으로 주거지를 이동해 러시아 국적이 되었다. 바다의 국경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데 그들은 어디에서 잡히느냐에 따라 신분이 바뀌는 것이다. 북어 입장에서는 희한한 국적 변화다.


별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생각되는 것, 희한한 세상을 지나가고 있어서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한해도 불구하고, 힘내서 내일을 맞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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