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파리의 어떤 차이
스탭 한 명이 갑자기 5일 간의 휴가를 냈다. 직감적으로 물었다. “어디 여행 가?”
잠깐 망설이더니 씩 웃으며 답했다.
“파리에 좀 갔다 오려구요.”
“갑자기? 난데없이 왜?”
“너무나도 싼 티켓이 나와서요.”
50만원대 왕복 항공권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고,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그가 귀국한 뒤 다시 물었다.
“파리는 어때?”
“여전해요. 늘 같아요.”
“늘 같은 곳을 왜 자꾸 가지?”
“늘 좋으니까요.”
아, 이런 우문현답이라니. 자책하며, 파리는 왜 늘 같을까 또 궁금해졌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최근 파리에 다녀온 의료 전문기자가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일주일 동안 파리에 머물며 불편한 것들이 많아 빨리 귀국하고 싶었다고 했다. 화장실, 밤거리, 소매치기, 특별한 것 없는 음식(프랑스 음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맛있다는 게 정설인데, 그는 간단하게 이견을 밝혔다. 서울에 다 있는걸…).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낭만과 예술의 도시’와 너무 다른 것들을 경험하며 ‘역시 한국이 좋다’는 생각을 거듭 했다고 한다.
같은 곳을 여행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갖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전혀 상반된 느낌을 갖는 경우는 흔치 않다. 어디를 가서 누구와 만나고 어떤 대화를 나누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야 있겠지만. 갑자기 파리여행을 떠난 그는 한때 파리에서 살았던 추억이 있기 때문에 변함없는 거리에 위안을 받았던 듯 싶다.
의료 전문기자는 30대 초반의 MZ 세대다. 메디컬 박람회에 취재차 갔던 것인데, “한국보다 새로울 것이 별반 없었고, 한국이 주인공으로 대우받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피부의학계에서는 특히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하는 곳이 서울 강남”이라며, “세계 각국의 피부과 의사들이 강남 의료계를 주목한다”고도 말했다. 물론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한류가 이렇게 분야별로 위세를 뻗치고 있는데다 각종 편의성이나 디지털 시스템이 일상화된 곳에서 살다 보니, (세계 최고의 관광지라 할 수 있는) 파리마저도 그저 그런 도시로 인식된 것이지 싶다.
어쩌다 보니 이런 한국이 됐고, 이런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나이든 이로서 격세지감을 매일 피부로 느끼고 살면서, 과거의 가치관과 경험적 자산에 대한 맹신을 털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다. 그런 시대가 엄연하게 진행 중인데, 어쩌다 보니 비상계엄을 두 차례나 겪고 대통령 탄핵을 두 차례나 보게 되었다.
흥미롭게 음미하기에는 미안하고 억울한데, 세계대전 비슷한 경제 혼란이 가중되고 있으니 불안심리가 계속 꿈틀거린다. 큰 변화 없는 파리에 가서 위안을 얻어 볼까. 이 불안을 역동성으로 승화시키는 묘안을 짜볼까. 봄이 왔는데도 심난한 것은 나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