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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달다면

봄은 봄이다

by 포포

아침 일찍 한 단톡방에 올라온 글을 보고, 아낌없이 옮긴다.

‘아들은 군대 가고 딸은 여행 간 집에 아내와 둘만 있으며 어색하고 무서운 적막의 공기를 느껴야만 하는 가련한 남자의 숙명.(진실한 남자라면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저 마음을 십분 이해하면서 ‘나는야 진실한 남자’라고 답신을 올렸다.

글쓴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지방을 전전하는 낭만과객이자 가객이다. 여기저기 강의를 다니느라 KTX를 자가용처럼 이용하는 자유인이기도 하다.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든 상념들을 술술 써 올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굳어져 가던 낭만적 감정을 긁어 일으킨다.


여행을 떠난 그의 딸은 지금 상하이의 와이탄 강변을 걷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낭만과객의 글에 의하면, 그곳은 저 딸을 낳기 전 부부가 연애하던 곳이다. 엄마 아빠가 연애하던 곳으로 여행을 간 장성한 딸이 부모가 놀던 와이탄 강변 유럽식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인다. 흠흠, 한편의 영화다.


랑만더 뉘런 부커카우. 랑만더 난런 커카우! 浪漫的女人不可靠, 浪漫的男人可靠

(낭만적인 여자는 믿을 수 없다. 낭만적인 남자는 믿을 수 있다.)


30년 전 와이탄강변 술집에서 그가 본 글인가 보다. 그는 저 말을 명언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지만 ‘나는 반댈세’라고 말한다. 낭만적인 여자는 믿을 수 있고, 낭만적인 남자는 믿을 수 없다. 근거는 없다.


10여 년 전 딱 이맘때, 봄볕이 좋은 날에 술 전문가와 낮술을 한 적이 있다. 모름지기 전문가라는 이들과 술을 마시면 술맛이 날 리 없는데 그날따라 ‘술맛이 달았다.’ 그러자 술 전문가는 마시는 술병마다 맛이 다를 수 있다며 그 근거를 설명했다. 술맛 떨어지게 하는데 도가 튼 전문가 지병 같은 거였다. 소주 맛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술맛이 달다는 게 마시는 사람의 컨디션이나 기분 문제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같은 브랜드라도 병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요. 다만 그 차이가 미세해서 사람들이 같게 느낄 뿐인데, 더러는 단맛이 유독 강하거나 쓴맛이 유독 강한 병술이 나와요.”


소주를 양산하는 제조 탱크의 크기로 설명이 끝났다. 소주의 원료는 간단하다. 태반은 물이고, 거기에 주정(알코올)을 넣고 단맛을 내는 감미료(1% 수준)를 섞는다. 어디에서? 어마어마한 탱크에서. 어마어마는 어는 정도인가. 하이트진로의 탱크 1개를 예로 들면 약 60만 리터 규모다. 소주 한 병은 375㎖이니 600,000÷0.375로 계산하면 160만병의 (물과 주정과 감미료가 섞인) 술이 한 탱크에서 (순식간에) 출고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들(물, 주정, 감미료)이 모두 균일하게 섞일 리가 없다. 어느 것은 달고 어느 것은 쓸 수밖에. 술맛 떨어지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날씨를 음미하고 낭만을 따지며 술맛을 따지는 걸 보니, 봄은 봄인가 보다. 날씨가 풀리면 정국도 풀리고 경제도 풀린다는, 낭만보다 훨 믿음직한 속설이 있는데, 속설은 속설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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