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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이 말을 걸 때

먹고 놀고 씻고 자고

by 포포

먹고 놀고 일하고, 씻고 자고 일어나 다시 먹고 놀고 일하고, 씻고 자고 일어난다. 사람의 일생은 이런 행위의 반복이다. 이렇게 명징한 정리는 각박하고 허탈할 수 있어 먹고 놀고 일하고 자는 행위의 사이사이에 낀 콘텐츠들을 찾아봤다. 생각하고, 사랑하고, 뭔가를 이루어가는 콘텐츠, 그들 사이사이의 희노애락들이 모여 하나의 인생을 만든다.


어떤 행사의 기념품 증정에 관한 아이템을 논할 때 수건 이야기가 나왔다. 가장 무난하고, 누구나 좋아할 가성비 높은 기념품이 수건이라는 견해에 대부분 동의했다. 그때 전제가 나왔다.

“좋은 수건이어야 해요.”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그런 전제를 중시하지는 않았을 터다. 수건에도 계급이 없지는 않겠지만, 행사장 기념품용에 굳이 고품질 운운할 것까지야 있겠나 싶었던 시절이다. 요즘의 수건들은 다르다. 용도별, 용처별, 취향별, 세분화되고 등급화되는 경향을 모두가 알고 모두가 경험하며 산다.


생각해 보니 수건이 말을 걸 때가 있었다. 기념품으로 받은 수건들은 바탕에 박힌 활자들이 말을 걸고, 활자가 없는 것들은 면의 촉감이 말을 건다. 가령 나는, 숙부의 희수년에 받은 수건을 쓸 때마다 수건의 섬세하면서 폭신한 촉감이 생전의 그와 닮았다고 느낀다. 그때마다 숙부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현상이다.


어떤 단체의 창립식에서 받은 수건은 반대로 거칠고 메마른 느낌을 줘 언제 걸레로 격하시킬까 고민하게 된다(그 단체는 창립은 거창하게 했지만 곧 유명무실해졌다).


수건에 너무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까 싶으면서도 한번 집착하게 되니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어젯밤 샤워를 하면서 문득 ‘숙부의 수건’은 잘 개켜 있을지, 세탁기에 들어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 집착형 정신병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상상력을 자극해 생각을 정리하는 수단으로 창작자들이 많이 애용하는 행위는 ‘목욕’과 ‘산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혼자만의 시간에 있다. 알몸과 알마음을 닦는 시간, 상상의 지평이 열리고 현실적 정리가 일체화되며 혼돈이 정비되는 경험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대화보다 사람과 식물, 사람과 음악, 음식, 향기, 심지어 사람과 물건이 대화할 때 안정이 되는 경험 같은 것이다.


기왕 정신이 나간 김에 노트북을 열고 ‘좋은 수건’에 대한 정보를 알아봤다. 별의별 수건 종류는 기본이고 재질과 물의 흡수력에 관한 함수 계산법까지, 별의별 지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짐작했듯이 몸을 닦는 바스타월과 핸드타월, 얼굴용, 아기용, 청소용, 강아지용까지 별의별 수건들이 다 있었다.


성격과 취향, 용도별로 다른 수건들에게도 공통점은 하나, ‘물기 흡수력’으로 귀결됐다. 흡수력이 떨어지면 수건의 가치도 떨어지고 한때 왕성했던 흡수력이 저하된 것을 확인하면 곧 걸레로 역할을 바꾼다는 정보야말로 요긴했다. 수건에 대해 면밀히 살펴본 오늘, ‘장미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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