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을 떠나기 전 마지막 주말, 춘천으로 2박 3일 여행을 간다. 아들이 노래를 부르는 레고랜드도 다녀오고, 연애할 때 이후 가보지 못했던 춘천도 구경하고 올 예정이다.
아침 먹고 여유 있게 출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침상 치우고 부엌에서 이것 저것 챙기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가져가서 먹으려고 부엌에 보이는 것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몰랐던 거다.
군고구마와 바나나는 오가면서 먹기 좋을 테고,
과일돌이 아들이 먹을 딸기와 사과도 씻어서 챙기고,
냉동실에 들어있던 빵도 하나 넣고,
잘라놓은 샐러드 거리 야채랑,
주전부리 과자랑... 견과랑, 우유, 두유...또..
넉넉히 챙겼다 싶으면서도, 뭐 더 챙길만한 게 없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서성였다. 여기선 별거 아니어도 아무것도 없는 콘도에 가져가면 요긴하게 먹을 수 있을 테니까.
가방에 착착 집어넣으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어렸을 적 엄마는 멀리 가려고만 하면 먹을 것을 바리바리 챙겼다. 그게 참 별로였다. 휴게소 같은 데서 사 먹으면 되는데. 그러는 쪽이 훨씬 맛있고 재밌는데. 왜 맨날 먹을 것들을 다 싸가지고 다니는 걸까.
엄마는 출발하기 전부터 다섯 식구 먹을 한 짐을 싸느라 힘을 쏙 뺐다. 그러고는 잔뜩 뿔이 난 얼굴로 "왜 나만 이렇게 바빠!? 자기는 손도 까딱 안 한다니까!"라며 아빠에게 씅질을 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항상 어디 가려고만 하면 출발하기 전부터싸웠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어서일까, 아니면 어른이 되어서일까. '나가서 사 먹으면 돈 아깝지... 비싸기만 하고 맛도 없는데... 여기 있는 것들 갖고 가면 얼마나 잘 먹을 텐데...' 하면서 하나라도 더 챙기게 된다. 보고 자란 건 다 내 몸속에 저장되나 보다. 엄마가 일부러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먹거리로 꽉 채워진 가방을 싣고 춘천으로 달린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부모님과 갔었던 한 온천의 호텔방이 생각난다.
늦은 오후, 체크인을 하고 나니 식사를 하기에는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나가기도 피곤해서, 엄마가 배낭에 넣어 온 음식들을 펴놓고 요기를 했다. 낯선 공간에서 다시 만난 익숙한 먹거리들이 달디 달았다. 둘러앉은 가족들은 옥수수를 뜯고, 삶은 달걀을 뱃속으로 쑤셔 넣으며 입을 모아 말했다.
"관광지는 비싸고 먹을 것도 없어."
"이렇게 먹는 게 최고지~~"
"맞아 맞아!"
궁상스러웠을지는 몰라도, 오래오래 기억될 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장면.
오늘은 남편과 아들과 함께 코에 바람을 넣으러 간다. 더듬으며 찾아간 춘천의 어느 낯선 방에서, 가져간 먹거리들을 풀어놓으며, 또 다른 추억거리들로 뱃속을 두둑이 채워야겠다. 집에서 채워온 가방 덕일까, 마음마저 넉넉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