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바로 매일 아이를 차에 태우고, 학원에 데려다주었다가 데리고 오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보통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의 학원이나, 학원 차를 이용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 평범한 환경을 꿈도 꿀 수 없다. 시내권에 있는 학원에서, 논밭이 펼쳐진 'XX면 OO리' 구석까지 원생을 데려다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번거롭다면 학원을 안보내면 되는 건데.. 그러기엔 하루가 너무 길다^^;;; (학교까지는 라이딩을 오는 학원 차가 몇 개 있긴 하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어차피 직접 하교를 시켜야 하니, 아이를 태우고 집으로 오지 않고 시내로 나가서 학원에 들여보낸다. 그리고 근처 무인 카페에서 기다린다. 마치는 시간에 맞춰 데리고 집으로 온다. 나는 이 정도 수고를 감수해서, 한 시간 남짓의 여유를 얻어내고야 만다. 곰이 숨겨놓은 꿀통처럼 은밀하고 달착지근한 빈틈을.
며칠 전, 그날도 아이를 학원에 들여놓고 카페에 앉아있었다. 가져간 책을 펴고 두 장쯤 넘겼을 때쯤, 스피커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벚꽃 엔딩’이다.
‘따란~~ 따라란 따라란~ 라란~~’
(자동 음성지원이 되는 마법)
‘벚꽃엔딩’은 봄이 아니더라도 연중 내내, 시도 때도 없이(?) 울려 퍼진다. 지겹거나 진부할 법도 하다. 그런데 그 멜로디에는 마법이 입혀져 있나 보다. 나는 무방비 상태로, 여지없이 설레고 말았다. 어디론가 훌쩍 달려가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책장이 넘겨지지 않았다.
종소리를 들려주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자동적으로 침을 흘렸다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 노래가 입력됨과 동시에 내 몸과 마음이 술렁거렸다. 나는 순순히 ‘벚꽃엔딩’과 '강릉의 나' 사이의 견고한 조건반사에 응하기로 했다. '이 기분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다!! 아들 학원이 끝나면, 꽃이 피어있는 곳으로 달려가리라!!'
미술학원을 마친 아이가 차에 올라탔다.
“우리 꽃 보러 가자! 헤매는 거야!!”
충동구매 아니고, ‘충동 (꽃) 구경’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몰랐다. 무조건 꽃이 피어있으면 되었다. 마침 오던 길에, 학원 반대편 방향 도로에 벚꽃 터널이 열린 걸 보았었다. 그 길에서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네비는 끄고, 아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켰다. 그리고 ‘고래밥‘ 한 봉지를 뜯었다. 오케이, 출발 준비 완료! 우리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무작정‘ 달릴 생각에 들썩거렸다. 멀리 가도 강릉 손바닥 안이겠지만^^
우리는 꽃구름 속으로 달음질쳤다.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는 몰라도, 무조건 벚꽃이 줄지은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다. 연분홍 꽃무리가 끊어지면 다시 다른 연분홍을 찾아서 달렸다. 멀리서 하얀 목련이라도 보이면 그 방향을 쫓았다. 길이 막혀있어서 돌아 나오기도 하고, 아까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했다. 경로는 꼬이고 꼬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는 목적지가 없었으니까. 우리의 목적은 봄꽃이었으니까.
도로 곁에서, 아파트 사이에서, 폭죽이 터지듯 봄이 뿜어지고 있었다. ‘와아~~ 너무 예쁘다~~’ 탄성을 질렀다. 겨우내 죽은 듯이 서 있던 나무속에 저런 색채가 숨어있을 줄이야. 앙상하던 가지들이 저렇게 부풀어 오를 줄이야. 겨울의 흔적이 채 다 지워지지 않은 도시를 흔들어 깨우는 축복 같은 기지개. 우리는 그 몽롱한 기운 사이를 누볐다.
얼마쯤 달렸을까. ‘벚꽃 내비게이션’의 성능이 꽤 그럴싸한 건지, 아니면 우리나라 가로수 중에 벚나무가 유난히 많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느새 우리는 강릉을 척추처럼 가로지르는 남대천 천변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곳이야말로 눈보라가 펑펑 쏟아지는 듯했다. ‘어쩌다 보니 이곳으로 흘러왔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완벽한 클라이맥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