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지인 외에 다른 사람들의 맨얼굴을 볼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오늘, 마스크는 물론이고, 엷은 화장기 한 겹 없는, 가감 없는 맨얼굴들을 마주했다. 오랜만에 보는 낯선 이의 얼굴들이 새삼스럽게 설었다. 나는 대중목욕탕의 온탕 안에 앉아있었다.
탕 안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두 눈으로는 어딘가를 보고 있었으나, 무엇도 응시하지는 않았다. 세월의 굴곡을 드러내는 주름은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더욱 깊어 보였다.
탕 속에서는 부글부글 끊임없이 거품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그 포말들처럼 생겼다가도 금세 사라지는 생각들을 흘려보내고 있는 듯했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 희노애락이 완벽하게 걷어진 무표정이었다. 홀로 앉은 이들은 '탕 속에서는 이런 표정을 짓는 거야'라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는 듯,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는 얼굴들 속에서 딱 한 가지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고단함'이었다. 실제로 고단이 얼굴에 얹혀있는 건지, 내가 그렇게 읽어낸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사람들의 무표정 안에는 무거움이 있었다. 뜨거운 탕 속에서의 시간 동안은, 바깥세상에서는 드러내지 않았던 깊은 표정을 겉으로 꺼내는 것일까..
목욕을 마치고 나서는 길,
찬 공기를 가르며 목욕탕 밖을 나서는 얼굴들이 한결 가볍다. 말간 것이, 천진한 아이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