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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l 18. 2018

결국 사람 사는 곳이란!

두 번의 퇴사, 세 번째 회사 점심시간의 단상

 두 번을 퇴사했고 벌써 세 번째 회사다. 이직 후 삼 개월쯤 지난 오늘의 점심시간. 라멘을 들이키며 생각했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이란!'





 첫 번째 직장은 항공사 객실승무원이었다.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덜컥 합격해버린. 유니폼이 멋있어서 혹은 나중에 시집을 잘 갈 수 있어서? 따위의 이유는 아니었다. 사범대를 졸업했는데 선생님엔 꿈이 없었다. 동기들처럼 노량진으로 자연스레 가긴 싫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대학생활의 절반을 만난 남자친구의 이별이었다. 그땐 세상이 '정말' 끝난 줄 알았고 그 사람이랑 함께했던 캠퍼스, 더 나아가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 식음을 전폐했고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우울증이었다. 무언가 강하게 집중할게 필요했고 우연히 국내항공사 승무원 모집공고를 봤다. 미친 듯이 준비했다. 승무원이 되기만 하면 이 모든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기에.

 이별'덕분에' 6kg 가까이 살이 빠졌다. 성형외과에서 필러도 맞고 각종 스터디도 다녔다. 결과는 합격. 반대하는 부모님에게 승무원은 마치 하늘이 내려준 사명인 양 설득했던 기억이 난다.

 3개월의 교육기간을 거치면서 이별의 아픔은 완벽히 잊혀졌다. 잊을 수밖에 없는 강도의 교육이었다. 하루 종일 탈출을 알리는 고함을 지르고, 수영을 하고 산소마스크를 쓰고 불을 껐다. 그러다 와인을 따르고 치즈를 서빙했다.



 승무원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솔직히 유니폼을 입고 공항을 걸을 땐 조금 우쭐하기까지 했다. 모닝콜을 돌리고 화장실 물기를 모두 닦아야 하는 군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승무원 이름을 한 명씩 적어 좌석 앞에 붙여두는 진상 손님, 그런 손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는 회사 시스템 때문에 퇴사한 건 아니다. 어느 날 집에서 비행을 앞두고 캐리어를 침대맡에 두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근데 문득 매번 이 캐리어를 끌고 평생을 다닐 생각에 아득해졌다. 바뀐 스케줄 때문에 내일 당장 시드니로 가야 했고 옷장에서 겨울옷을 꾸역꾸역 꺼낸 뒤였다. 그렇게 퇴사했다.


                                                                                  --



 퇴사 후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생활에 절반을 보낸 남자친구와 재회했다. 그는 이제 세계를 떠돌며 불안하게 만들지 않겠노라 약속했지만 모 회사의 박력 넘치는 신입사원이 된 그는 한국에 혼자 있는 나를 또다시 너무 외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와 이별 후 또다시 취직. 아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 취뽀의 팔 할은 그의 덕이었다. 회사에 소속되어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이 점심을 먹고 퇴근 후 동기들과 맥주 한잔을 하느라 너무도 바빴던(그래서 카톡 하나 하기 힘들었던) 그를 보며 나도 일반 회사에 취업하고 싶어 졌다. 어찌어찌 운 좋게 중견기업 인사팀에 들어갔다. 사실 어찌어찌라 표현한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토익과 토스를 공부하고 직무강의를 듣고 인적성 모임을 하고 등.. 그런 피 터지는 취업준비생 시절은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기에 넘어간다.


 인사업무에서 채용을 맡았다. 하루 일과의 반은 경력직 입사자들과 연봉에 관한 씨름. 처우 협상이라고는 하나 조금 더 받으려는 자와 한 푼도 더 줄 수없다는 을들의 숨 막히는 싸움이었다. 회사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사팀 수로 인해 야근과 주말출근이 많았다. 일이 많다 보니 실수가 잦아졌고 업무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졌다. 일요일 저녁이면 회사를 가기 싫어 울었다. 휴학 한 번 하지 못하고 쉼 없이 달려왔기에 좀 쉬고 싶었다. 경력을 중단할 순 없기에 조금 연봉이 줄더라도, 기업 규모가 작아지더라도 옮겨야겠다 생각했고 젊은 분위기의 스타트업인 지금의 회사로 왔다.


 연봉이 낮아지고 업무권한도 적어졌다. 반면 일은 확연히 쉬워졌다. 5시면 칼퇴, 야호 저녁이 있는 삶! 그런데 간사하게도, 막상 한가해지니 또다시 고민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회사근처 일본 라멘집에서 점심을 먹다가 대기업에서 오래 근무하다 온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머슴살이를 하더라도 큰 집에서 하라는 말이 맞나봐' 그 선배는 평소에 본인이 다녔던 대기업을 혐오했다. 꼰대집단.

 불만과 한탄으로 점쳐진 점심시간 대화의 결론은 글로 쓰기도 황당할만큼 당연한 -사람 사는 데는 어디든 다 똑같나 봐-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뭐가 아쉬워 또 무얼 얻고자 그렇게 아등바등 도망다니는건지,


 조금 더 진득하게 해볼걸, 어딜 가도 비슷한데 버텨볼걸 이란 자책이 든다. 진득하게 버티고 있는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에게 존경과 위로를 가득 담아 보낸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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