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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Oct 21. 2018

본질에 집중하자, 해방촌

난 酒路 여기를 가 - #6. 신흥路

 이상하게 더 잘하고 싶을수록, 잘나 보이고 싶을수록 본질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


 회사에서 낸 기획안이 호평을 받았다. 오프라인 반응도 기대보다 뜨거웠다. 덕분에 맡겨진 많은 일들을 약간의 흥분감을 가진 채 처리했다. 그런 내게 팀장님은 정작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 없이 화려하기만 하다고 했다. 요가도 그렇다. 매번 하고 나면 뻐근한 근육통이 이틀은 갔는데 요즘은 그런 근육통도 없었다. 아쉬탕가 시퀀스에 익숙해졌다 생각했다. 요가 선생님은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중요한 몸의 본질을 빼두고 편한 근육만 사용하는 거라고 했다. 요가에서 요령을 피웠던 거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모임이 주에 3-4번은 있었다. 심지어 주말에는 두 탕의 약속을 뛰기도 했다. 마치 영업사원처럼 뛰어다니다 가장 친한 언니의 생일도 놓쳤다. 아뿔싸, 본질을 놓친 채 겉치레에만 집중했다.


 마치 요즘의 나처럼 본질을 놓친 식당이 어느 거리나 즐비하다. 음식과 재료의 맛보다 그 외의 것들을 앞 새 운다. 촛농이 흘러넘치는 촛불을 켜 두기도 하고 국적을 모르겠는 각종 음악들을 식당 가득 틀어놓기도 한다. 분위기를 먹는 건지 음식을 먹는 건지 다소 찝찝한 기분으로 값을 치르고 나오면 허전하다. 식당의 본질이 없기 때문이다. 소위 핫한 거리일수록 이런 식당들이 흔한데, 그런 거리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해방촌에서 본질을 지키고 있는 식당을 소개하고자 한다.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과 술 본연에 충실한, 그 길에서 보기 드문 식당들을 칭찬한다.



쿠촐로 오스테리아



 

 트러플이 귀하다고 누가 그랬는지. 요즘 가장 흔한 식재료는 트러플인 것 같다. 지드래곤 냉장고에만 있을 줄 알았던 트러플이 어디든 즐비하다. 트러플로 파스타도 만들고 리조또도 만들고 심지어 과자도 만든다. 그런 흔한 트러플 요리 중 단연 으뜸은 쿠촐로의 트러플타야린 이라고 생각한다.

 이 집의 파스타는 생면이다. 생면의 꾸덕한 질감과 진한 트러플향은 정직한 파스타라는 느낌을 준다. 와인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아란치니, 카치오페페 같은 전채요리도 훌륭하다!


 이곳에서 파스타를 먹은 뒤에 김지운 셰프의 마렘마, 쿠촐로테라짜를 모두 다녀왔다. 결국 재방문은 다시 여기다. 그만큼 파스타 자체에 충실한 집은 없는 것 같다. 물론 가격도 세 곳 중 가장 합리적이다. 늦은 시간까지 둥그런 테이블에 와인과 샴페인을 시켜놓고 먹다 보면 이 집이 표방한다는 '이탈리아 선술집'에 와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우니가 주재료인 식당(야채가게/ 성광대도)



 원래 우니를 잘 먹지 못했다. 첫인상은 마끼 위에 올려진 노란 덩어리. 비릿하고 느끼했다. 보통의 해산물은 비릿하면 상쾌하거나 느끼하면 부드러웠다. 그런 나를 보고 지인은 돈 굳는 입맛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이런 나에게 우니에 대한 맛을 알게 해 준 두 곳의 식당이 있다. 모두 신흥로 언덕길에 위치한!


#1. 야채가게


 들어가면 어둡고, 심지어는 축축한 분위기에 다소 압도된다. 대표 메뉴로는 우니우동이 있는데 붓가케 우동과 같이 비벼먹는 우동이다. 우니와 낫또, 와사비를 버무려 먹는 음식으로 일본식 고추가 더해져 매콤한 맛도 있다. 우니 향이 강하지 않아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무리 없이 먹을 수 있다. 이 우동은 은근히 한라산 소주와 잘 어울린다. 이 집은 주류 종류도 굉장히 다양하다. 소주는 물론 사케, 와인 심지어는 조금 과하다 싶게 모엣샹동도 있다.



#2. 성광대도



 해방촌 언덕 꼭대기까지 걸어가도록 만드는 힘은 이곳의 우니메밀소바 덕분이다. 홍콩 느낌이 물씬한 이 곳은 원하는 음악을 신청하면 자유롭게 틀어준다. 대표 메뉴인 우니메밀소바는 가격도 저렴하다(1.8). 만원이면 우니도 추가할 수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마음껏 우니를 먹을 수 있다. 김치볶음밥도 파는 다소 난해한 컨셉의 식당인데 술 종류도 이것저것 다양하다. 보통은 칵테일을 마시는 데 가장 좋아하는 건 '삼천포쿨러'. 사장님이 삼천포 출신인데 작업주로 만들다 메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크렌베리의 단 맛 뒤에 꽤나 높은 도수의 보드카 향이 느껴진다.




 해방촌의 그 길은 신흥로라고 부른다. 이름처럼 막 뜨고 있는 지역의 달뜬 분위기가 느껴지기보단 정직하고 실력 있는 식당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골목 사이를 누비고 언덕을 오르내리며 먹는 음식과 술들은 기분까지 들뜨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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