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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Feb 11. 2020

이겨내는 것에 관하여

시르아사나(머리서기)

성인이 된 후 가장 어이없게 울어본 적이 언제일까.

길가다 혼자 넘어져 핸드폰 액정이 깨졌을 때. 유튜브로 '슬픈 팝송 모음_가사해석' 을 보다가. 친구와 싸우고(믿기지 않겠지만 아직도 친구와 싸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수많은 흑역사가 스쳐 지나가지만 단연코 요가 매트 위에서 울었을 때라고 꼽을 수 있다.


요가를 한다고 하면 모두가 머리로 설 수 있냐고 물어본다. 이효리나 비크람의 기이한 동작을 미디어로 접한 사람들이 요가에 대해 흔히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바로 시르사아사나, '머리서기'다.




나 역시 요가를 막 시작했을 때부터 머리서기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우리 몸에서 가장 단단하다는게 머리인데, 머리로 서는게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초반에는 이불을 깔고 벽에 기대어 머리서기를 연습했다. 나름 수월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근본도 없이 연습하다가 간 곳은 동네 앞 재활의학과였다. 언젠가부터 목과 어깨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그 찌릿찌릿함은 팔까지 타고 왔다. 의사는 내 엑스레이를 보고 '목디스크' 라고 진단을 내렸다. 두달치 요가 수업료보다 비싼 도수치료비를 일시불로 긁고 오는 길에 알아차렸다. 우리 몸에 가장 단단한 머리는 가장 약한 목 위에 있다는 걸.


머리서기는 머리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 5할은 처음 머리로 디디고 설 수 있도록 하는 하체의 힘, 나머지 5할은 반다(코어)의 힘이다. 머리로 부터 뻗어나오는 힘이 가슴 한 복판을 지나 단단한 복부에 모이고, 그 힘으로 다리를 위로 뻗어 내야한다. 반다의 힘이 없이 머리로만 서게 되면 그 체중은 오롯이 목으로 쏠린다. 하루종일 컴퓨터를 거북이처럼 보며 고생했던 목은, 갑작스러운 저녁의 머리서기 수련을 통해 두배로 고통받았다.


당분간 머리서기를 하지 않았다. 요가수업 말미에는 항상 머리서기를 했는데 그때마다 패배자처럼 누워있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회사를 다니며 자존심따위 버린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익숙한 굴욕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그냥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디스크가 어느 정도 낫고서 천천히 머리서기를 시작했다. 다리를 차는 반동으로 올라가는게 아니라 한 다리씩 천천히 들어 올렸다. 푹신함에 기대지 않게 이불대신 요가매트를 깔았다. 실력이 늘어가는 어느 날, 크게 넘어졌다. 그러고는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공포감은 극복되지 않았다. 억지로 다리를 올렸지만 두려움으로 굳은 몸때문에 금세 무너졌다. 머리를 박고 매트위에서 울었다.

남들은 쉽게 하는데 왜 나는 안되는거야. 이거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거야 라며 꽤 오랜시간 매트 위에 엎드려 울다 살짝 머쓱해져서 일어났다. 혼자 살아서 정말 다행이다.


이제 목표가 바뀌었다. 거꾸로 서는게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기. 다양한 사람들의 머리서기 영상을 찾아봤다. 넘어지는 영상도 보며 이미지를 만들었다. 억지로 다리를 올리지않고 그 전 단계까지만 갔다. 어떻게하면 덜 아프게 넘어질까도 연구했다. 그러다 정말 어느 순간 섰다.


요가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몸이 대답할 때가 있다고 요가 선생님이 그랬다. 처음 거꾸로 섰을 때 그런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한 번 서고 나니깐 왜 그동안 안되었는지 모를정도로 쉽게 설 수 있었다. 연휴에 가족들앞에서 머리서기를 보여줬다.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부모님을 불러 놓고 뭔가를 보여준것 같다. (아마 지독한 사춘기 시절부터해서 처음인 것 같다.)


돌이켜보니 약 일 년간의 머리서기 과정은 새로운 자세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이겨내는 거였다. 만성질환을 이겨내고, 꼼수를 이겨내고 두려움을 이겨내는. 그 시간을 지나 나는 좀 더 넓은 마음과 단단한 몸으로 세상을 거꾸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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