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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Aug 23. 2018

맛의 주택가, 약수동

난 酒路 여기를 가 - #4. 다산路

 다산로는 6호선 버티고개부터 그 언덕을 내려와 약수 그리고 신당까지의 길을 말한다. 이 길을 따라 4년 동안 3번의 이사를 했다. 서울에 올라와 막 정착하고자 했을 때였다. 그래서 다산로는 내게 고되면서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약수를 중심으로 청구와 신당까지 대부분의 다산로는 주택가로 이루어져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보다 오래된 빌라가 많은 전형적인 주택가. 그래서 동네는 조용하고 오래되고 요란하지 않은 맛집이 많다. 약수역에서 나와 청구역까지의 그 일직선의 길에서 병원도 갔다 혼자 밥도 먹고 가벼운 차림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조그만 카페에서 이별도 했다. 주택가만큼 다양한 사연을 가진 공간이 또 있을까?




다양한 맛의 이야기가 모여있는, 다산로



만포막국수


 약수동에는 이북식 찜닭집이 모여있다. 3대 맛집이라 불리는 '진남포면옥', '만포막국수'. '처갓집' 그 세 곳 모두 약수에 있다. 그중 여긴 약수역 1번 출구 뒤에 있는 '만포막국수'. 치킨은 지겹고 닭한마리를 먹기엔 덥고 부산스러울 때가 있다. 그럼 답은 찜닭이다.


 푹 고아져 야들해진 살 위에 달달한 실파가 올라져 있다. 어느 살을 집어도 퍽퍽하지 않다. 그 위에 실파를 둘러 양념장과 찍어먹으면 된다. 가게에 따라 실파 대신 부추가 올라간 집도 있다. 파의 약한 향이 닭 맛을 심심하게 만들지 않기에 개인적으로는 실파를 더 선호한다.


 이북식 음식이 갑자기 미식의 기준이 된 것 같다. 난 평양냉면을 먹지 않는다. 도저히 그 은근한 메밀향과 저 멀리 난다는 고기육수의 맛을 찾지 못하겠다. 피가 두껍고 투박한 모양의 이북식 만두도 영 내 스타일은 아니다. 미식가의 입맛은 아니구나 좌절하고 있을 때 이북식 찜닭을 발견했다. 감칠맛 도는 심심한 닭이 든든한 안주로 제격이었다. 또 마음에 든 점은 조용히 먹을 수 있는 닭요리라는 거다.

 무릇 치킨, 닭한마리와 같은 닭요리는 소란스럽게 먹고 정신없이 취하게 된다. 여기는 딱 두 명! 일요일 세시에 이 곳에서 먹은 찜닭과 소주가 기억이 난다.





전주순대국


 술안주로 제일 좋은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난 순대라고 답한다. 내가 하도 을지로의 산수갑산 순대 이야기를 하고 다녀서 그런지 모두가 그러려니 한다. 다산로에서 소개하고 싶은 순대 맛집은 '전주순대국'.




 여기 피순대는 진짜 맛있다. 피순대는 당면이 들어간 일반 순대와 다르게 선지가 들어간 순대를 말한다. 고소하고 부드러워 선지를 먹지 못하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가 있다. 전주가 유명하다는데 원조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청구에 있는 이 곳 이름도 '전주순대국'. 메뉴는 순댓국, 피순대, 순대 모둠이 끝이다.



 순댓국과 피순대 안주면 전날 숙취로 외쳤던 '내가 다시는 술 마시나 봐라'라는 다짐을 무장해제시킨다. 심지어 집이랑도 가깝다.

 순대는 매일 먹고 싶은 음식은 아니다. 대신 적당한 안주가 없을 때, 거나하게 취하고 싶을 때,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또는 편한 사람과 소탈하게 마시고 싶을 때 먹고 싶다. 음.. 꽤 자주 먹고 싶다는 말이다.




 다산로에서 4년을 살고 서울의 서쪽으로 1년 정도 이사를 갔다. 결국 이곳이 그리워 다산로 근처로 다시 이사를 왔다. 역시 여기오니 마음이 편하다. 1년 동안 방황하다 돌아온 이 주택가엔 여전히 내가 좋아한 길과 식당들이 무던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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