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임 Sep 26. 2024

독일 운전면허 이론수업, 왜 토론을 하는거야

포기하지 않은 나를 칭찬해!

  운전학원을 등록하고 인텐시브로 필기수업을 듣기로 했다. 일반 수업은 일주일에 1과씩 14주를 들어야 해서 일주일에 한 번 몰아서 하는 인테시브 수업에 신청했다. 독일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매장언니랑 같이 수업을 듣는다 생각하니 의지가 되었다.


  오전에 일 하고 오후 시간은 집에서 보내다, 해가 지고 난 저녁에 매장언니를 만나 운전학원으로 향했다. 편하게 쉴 시간에 운전학원을 가자니 영 귀찮은게 아니었다. 나이 마흔을 넘기고 이제 공부는 독일어로 끝일 줄 알았는데(그것도 끝은 아니겠지만) 또! 공부를 한다는 것이 좀 기가 차기도 했다. 그것도 운전면허 공부라니 ㅎㅎ


  2월이라 날씨가 춥고 해도 짧았다. 매장언니랑 같이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었다. 귀찮은 것도 귀찮은 거지만 독일인들 사이에서 어려운 공부를 한다 생각하니 너무 까마득했다. 나랑 비슷한 상황인 동료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학원에 도착하니 상담을 했던 사무실 한 켠에 책상 없이 덩그러니 의자만 20개 남짓 놓여 있었다. 교실이 따로 없고 여기에서 수업을 하나? 언니와 나는 가방을 내려놓을 곳이 없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미리 받은 교재를 들춰보았다. 온통 알 수 없는 독일어로 도배된 책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수업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우리처럼 미리 온 학생은 별로 없었다. 정시가 되자 헐레벌떡 어린 친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딱 봐도 어린 아이들. 많게 봐야 20대 초반이었다. 10대로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40대는 고사하고 30대도 없어보였다. 이런 핏덩이들 사이에서 공부를 해야 하다니 얼굴이 달아오르는 듯 했다. 저들에 비하면 나는 할머니가 아닌가! 거기다 빠르게 쏟아내는 어린 친구들의 독일어를 듣는순간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독일은 외국인으로 둘러싸인 사회였다는 것을. 어학원에도 직장에도 온통 외국인 뿐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순수 100퍼센트 독일인들에게 둘러쌓인 경우는 학부모 모임말고는 없었다. 아찔했다.


  선생님이 오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매일 다른 이가 들어왔는데 주행수업도 하는 선생님이 교대로 필기수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책상이 없는 이유도 알았다. 강의를 하기보다 질문을 하고 토론을 시켰다. '아니, 교통법규를 몰라서 배워야 하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시키면 어쩌자는 거지?'



학생들이 칠판으로 나와 표지판 분류를 했다

  


  신기한 것은 다음에 벌어졌다. 선생님 질문에 아이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손을 들며 대답을 했다. 몰라도 추측해서 대답하고, 혹시 이건가 싶어도 대답하고, 엉뚱한 말이래도 대답했다. 발표문화가 익숙한 아이들이라 그런건지 무조건 손을 들었다. 나랑 매장언니는? 답을 모르기도 하지만 안다고 해도 발표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미소만 지으며 그들 사이에 앉아있었다. 버텨야 했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뜬금없이 조별 발표를 하라고 했다. 앉은 자리를 기준으로 4-5개의 조를 나누고 선생님이 준 과제를 전지에 작성해 발표를 하라했다. 아이들은 교재를 찾거나 인터넷을 뒤져 발표내용을 작성하고, 발표자 1명을 뽑았다. 우리가 팀에 들어가면 같은 팀 아이들이 난감해하는게 보였다. 우리랑 어떻게 의사소통해야할지, 우리가 얼마나 독일어를 잘 할 수 있는지, 시켜도 되는지 안 시키는게 나은지, 고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우릴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의사를 물어봐주었다.  '네가 발표할래?' 당연히 우리의 대답은 '아니'였다. 알면서도 물어봐서 괘씸한 게 아니라, 당연히 하지 않을거라 생각하지 않고 물어봐주어 고마웠다. 팀원으로 여겨주는 행동이 어린 아이들이지만 성숙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신나게 토론하고, 진지하게 과제를 해결하고, 즐겁게 발표하였다.


  매번 수업이 이런 식이다 보니 수업에 가는 것이 곤역이었다. 선생님이 책으로 강의를 할 줄 알았는데 책은 아예 펴지도 않고 질문만 쏟아내고 토론을 시키니 괴로웠다. 독일어를 아예 못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 자리에 있으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완벽하게 잘 하는 이들 사이에 있으니 조금의 실수도 내비칠 수 없었다. 독일에서 자란 한국 아이가 한국 사람들 앞에서 한국어를 하기 부끄러워하는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운전면허 이론수업을 듣다가 이런 걸 느끼다니 참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 오히려 더 좋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간 고된 수업을 끝내었다. 피하고 싶은 상황을 피하지 않고 견뎌낸 스스로에게 대견했다. 이제 필기시험을 준비하면 되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론수업에서 배운 것은 그닥 많지 않다. 두꺼운 책 하나를 받았으나 책 전체를 하나 하나 꼼꼼히 배운 것은 아니다. 시험을 준비하며 혼자 공부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시간을 통해 배운 것이라면, 외국에서 외국어로 면허 공부를 시작했다는 자부심과 많은 나이에도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전학원 등록하기도 벅찬 독일운전면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