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스시회사 Eat happy 면접과 시범근무
우연의 징검다리를 건너 필연이라 믿고 들어온 회사 eat happy. 아기 엄마가 인터뷰할 때 별 거 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했지만, 독일이라는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회사를 다니겠다고 면접을 보자니 여간 떨리는 것이 아니었다. 지역 전체 매장을 관리하는 지역관리자가 면접을 하러 온다는데 독일어를 못 할까 두려웠고 채용이 거절될까봐 겁이 났다. 내 특기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지만 언어 앞에서는 참으로 작아지니 말이다.
두렵던 면접날이 결국 이르렀고 '에라 모르겠다!!!'하며 면접장소로 향했다. 면접장소는 매장이 있는 마트였는데 우리집에서 상당한 거리였고 평소 가본 적이 거의 없는 동네여서 낯설었다. 모름지기 면접이니 일찍 도착해야지싶어 면접시간보다 30분 이른 8시 30분에 도착했다.
마트는 동네에서 보던 작은 마트가 아니었고 꽤나 큰 나름 대형마트였다. 어딘가에 매장이 있을텐데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해 무작정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막연한 추측으로 마트 안에 있는 정육코너나 생선코너 옆에 있지 않을까 싶어 멀리 보이는 정육코너를 향해 걸었다. 그러나 스시 매장은 없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찾지못해 마트 직원에게 '잇해피가 어디 있나요?'라고 물으니 '잇해피가 뭐야?'라고 반문했다. 스시만드는 매장이라 설명하니 그제서야 마트 입구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럴리가? 분명 마트 초입부터 꼼꼼히 살피며 들어왔는데. 다시 되돌아가보니 야채코너 뒤로 자그마한 매장이 보였다. 너무 작은 규모에 놀랐고 그 안에 일하던 두 여성이 나를 알아보고 들어오라며 손짓해 또 한 번 놀랐다.
면접장소라는 것은 따로 없었고 지역관리자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마트 안에 있는 빵가게에 겸연쩍게 앉아 꽤 긴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더 겸연쩍게 나보다 작은 구수한 인상의 시골 아저씨가 지역관리자라며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나보다 머리 하나 작은 남자는 정말 처음이었다. 베트남 사람이라 했다. 독일회사지만 나의 상사는 베트남사람이구나! 어느 면접과 비슷하게 그동안 무얼해봤는지 한국에서는 어떤 직장을 다녔는지, 아이는 몇 명인지, 비자는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구수한 인상에서 어느 정도 긴장이 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모를 채용거절에 눈을 또랑또랑 뜨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얼굴로 표현했다. 다행스럽게 오늘 하루 시범적으로 일해보자했다. 산 하나는 넘은 셈이다.
좁은 매장으로 안내를 받고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한 명은 베트남 아주머니였고, 한 명은 히잡(무슬렘 여인들이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쓰는 스카프)을 두른 애띤 얼굴의 여성이었다. 스시 만드는 곳에 일본 사람은 고사하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국적의 여인들이 일을 하고 있다니. 거기다 무슬렘 여인은 스시를 만들 줄 알긴 하는지, 아니 스시를 먹을 줄 아는지, 아니 그건 고사하고 스시가 뭔지 알기나 할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놀랄 시간은 이 걸로 충분! 베트남 아주머에게 정신없이 이끌려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로 갔는데 나보다 작은 체구에 어찌나 발이 빠른지 발바닥에 불이 붙었나싶을만큼 따라걷기 힘들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입이 심심했나 싶게끔 속사포로 지침을 쏟아냈다.
"운중(그녀가 발음하는 내 이름)!, 조리대를 닦을 때는 키친타월로 닦고 설거지한 그릇의 물기를 닦을 때는 이 휴지로 닦아. 이 휴지는 비싸니까 한 번 닦고 바로 버리지 말고, 여러 번 물기를 닦아 물에 충분히 젖을 때까지 사용하고, 그런 뒤 더러워지면 청소를 하는데에 사용하도록 해."
"운중! 마끼(보통 재료 한 가지를 넣어 말은 꼬마김밥)를 포장할 때는 작은 간장 하나에 와사비 1개, 캘리포니아롤을 포장할 때는 큰 간장 하나에 와사비 1개, 여러 스시가 담긴 중간 박스에는 큰 간장 하나에 와사비 2개, 큰 박스에는 큰 간장 2개에 와사비 2개를 넣어 포장해야해."
"운중! 마끼를 말 때는 밥을 이 정도 넣는데 밥이 속으로 들어가니까 예쁘게 꼼꼼히 펼 필요 없이 고루 핀 다음 김발을 당겨가면서 야무지게 풀리지 않게 말아야해. 재료는 빈틈없이 고루 넣도록 해. 그래야 썰었을 때 재료 없는 부분이 생기지 않아. 김끼리 만나는 끝은 아래를 향하도록 해야 풀리지 않고 재료가 너무 크면 싸기가 힘들고 너무 작으면 맛이 제대로 안 나니 적당히 넣어야해."
쏟아지는 지침은 기억하기도 힘들었지만 몸으로 실행하기는 더 어려웠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잘 말리지 않거나 재료가 적절하지 않았다. 한 번 알려줬는데 기억하지 못 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했다. 정신없이 바쁘고 몸은 고되고 다리는 너무 아팠다. 왠만하면 서서 집안일 하는데 일을 하느라 서 있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엄청 많은 일을 했고 시간도 꽤 많이 흐른듯 해 퇴근할 시간이 되었겠다 싶었다. 스시를 진열하러 매장 밖으로 나왔을 때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는데 2시간 밖에 지나지 않아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집에 가려면 4시간은 더 일해야해!!!
폭풍같았던 시범근무를 끝내고 퇴근하는데 다행스럽게 베트남 아주머니가 계속 일할 수 있겠냐, 이 일이 마음에 드냐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들려주고 다음 출근을 기약하고 퇴근했다. 집에 와서는 너무 피곤해 저녁까지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가족들은 나를 염려해주었고 나는 괜찮다 안심시켰지만 내심 걱정되었다. 이렇게 힘든데 계속 할 수 있을까. 적응되면 괜찮으리라는 막연한 짐작으로 힘을 내어보는 수 밖에.
마트 속 좁디 좁은 매장, 시골 아저씨 같은 베트남 지역관리자와의 인터뷰, 히잡을 두른 동료, 뭐든 빠른 베트남 아주머니. 기억해야할 수백 개의 지침, 그만큼의 메뉴, 만들어내야하는 스시의 종류와 양, 그리고 완성도. 일을 시작한 첫날은 나의 상상력이 미치지 못한 미지의 세계 그 자체였다. 독일 안에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놀랍기 그지 없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