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일리 Jun 25. 2023

1300원으로 우리 동네를 바꾸는 방법

송정동 1유로 프로젝트, 로컬 라이프를 디자인하다

요즘 1300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과자 사 먹기? 아니면 아이스크림? 국밥 1만 원 시대에 고작 천 원 정도로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렇다면 건물 임대료는 어떨까?

핫한 성수 옆 동네인 송정동에 1유로짜리 건물이 등장했다. 여기 단돈 1유로, 1300원으로 마을을 바꾸고 있는 곳이 있다.

송정동 1유로 프로젝트는 방치되어 있던 낡은 공간을 건물주로부터 건물을 3년 간 1유로에 빌린 후, 청년 브랜드들에게 이를 무상으로 임대해 주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다. 이곳에 입주한 청년 점주들은 이곳에서 임대료나 보증금을 내지 않는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 건물주는 왜 그렇게 싸게 건물을 빌려주는 건지, 누가 입주하는 건지...  다양한 궁금증이 생겼다. 깊은 질문들로 넘어가기 전에, 사소하지만 궁금했다. 왜 하필 1달러, 1천 원이 아닌 1유로였을까?


그건 오래된미래공간연구소(로컬퓨처스)의 대표가 유럽에서 유학을 하면서 알게 된 유럽의 소도시 재생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도시 재생의 일환으로 이미 '1유로'로 다양하고 가치 있는 주거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출처: 1 euro houses 웹사이트

2016년, 이탈리아에서는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지방 소도시의 재생을 위해 외국인에게 빈집을 1유로로 팔기 시작했다. 전통을 간직한 마을이지만 계속해서 인구가 빠져나가 방치되는 낡은 빈집이 늘어나면서 빈 집을 1유로에 판매했고, 다양한 외국인들이 유입되며 전통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활기 있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네덜란드에서도 마약과 매춘으로 악명 높은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단돈 1유로 주택을 예술가들에게 매매하기도 했다. 창의적인 예술가들은 공간을 재설계하며 낙후된 지역을 창의적이고 활기 넘치게 바꾸어 놓았다.


송정동의 '코끼리 빌라' 역시 거의 3년 간 낙후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송정동은 핫한 성수동과 인접한 지역임에도 교통편이나 인프라가 좋지 않아 노후된 주거 지역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중랑천과 가까이 있고, 근처에 4개의 대학교가 있어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섞여 살아가고 있다는 점 등 가능성이 많은 동네였다. 이에 로컬퓨처스는 “가치 있는 청년 브랜드를 키우고 3년 후 탈바꿈된 공간을 돌려받는다"며 건물주를 설득했고 무려 163평의 공간을 3년간 무상으로 임대할 수 있게 되었다.

건물주의 배려와 선의, 점주들의 사회적 가치를 위한 활동들이 모여 결과적으로 수익도 창출할 수 있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로컬퓨쳐스의 말처럼 건물주는 청년사업가들의 자립을 도우며 낡은 건물의 가치를 높이고, 입주한 스몰 브랜드들은 월세 없는 공간에서 자생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을 얻게 된다. 특히 청년 사업가들은 1년에 두 번 이상 지역사회를 위한 무료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조건으로 입주했기에 낙후된 건물에서 다양한 지역 커뮤니티 활동이 진행되며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는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곳에는 F&B, 서핑, 반려 동식물 등 17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입 접한 브랜드 역시 재미있는 곳이 많다.  가죽 공방, 그로서리 스토어, 가드닝, 욕실, 서핑 등 브랜드 리스트만 들었을 때는 '힙'한 브랜드만으로 채워진 상업 공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가서 투어를 하니 지역 주민에게 타겟한 공간이 꽤 많았다.


함께 러닝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고 근처에서 러닝을 할 때 짐을 맡길 수 있도록 사물함까지 마련해 둔 에그타르트 샵부터, 주말농장처럼 옥상에서 분양을 받아 가드닝을 할 수 있는 가드닝 클럽까지 보고 나니 이곳은 '로컬 기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런더풀
서울 가드닝 클럽

그 동시에 반려동물, 서핑, 제로웨이스트, 공방 등 다양한 키워드로 공간이 이루어져 있어 주민이 아니어도 충분히 구경할 거리가 많다.

다만 오래 앉아 있을 넓은 카페나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특히 대부분 좁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다양한 사람이 섞여 교류할 수 있는 넓은 광장이 부재하다고 느꼈다. 프로젝트 구조 상 빈 공간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겠지만 지역 주민에게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플랫폼으로써 작동하려면 넓은 유휴 공간을 만드는 것도 좋았을 듯하다.


2월에 이틀 동안 진행한 1유로 프로젝트 오픈 행사에만 약 2천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이 주목을 받은 건 '힙해서' 였다고 생각한다. '청년무상임대사업'이라는 말 대신 '1유로 프로젝트'를 선택한 것부터 달랐다. 지자체 주도로 진행했다면 나올 수 없는 네이밍이다. '사회적 기업' 혹은 '공공사업'이라기보다 '라이프스타일 샵' 혹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인식되는 것 역시 이곳에 입점한 브랜드들의 색깔 덕분이다.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는 소비 트렌드도 주목을 받게 하는 데에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공간 기획뿐만 아니라 공간의 '브랜딩'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럼에도 1유로 프로젝트의 본질에는 선순환을 이야기하는 따뜻한 진심이 있다.  며칠 만에 새로운 팝업스토어가 생기고 신기한 곳들로 넘쳐나는 힙한 성수동이 아니라 그 옆 동네에서 로컬과 상생을 말하는 이곳이 주목받는 건오랜만에 '힙하기만 하지 않은' 공간을 만나 반가운 게 아니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하이엔드 브랜드만이 할 수 있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