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답게, 여자답게. 라는 말이 없어질 세상을 꿈꾸며
임신 16주차에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성별이 나왔다. 내 뱃속에서 자라는 생명체의 성별은 ‘아들’이란다. 이미 대상포진 수준으로 온 몸을 뒤덮은 여드름과 수포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었다. 내 뱃속에 있는 생명체가 나와 여러 면에서 호르몬 충돌이 발생하고 있었다.
내 몸 속에 생긴 남성 호르몬을 버텨내느라 몇 번의 발작이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태반이 완성되어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데... 이미 흉터가 된 부분도 여럿 있다. 출산 후에 피부 관리부터 받아야지ㅠ 임신 중에는 피부약을 쓸 수가 없단다. 젠장.
어떤 성별이 되었든지 상관없이 무조건 나는 하나만 낳을 생각이기 때문에, 짝꿍과 나는 그리 기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다만, 엄마에게 말하기가 꺼려졌다.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훤히 보였다.
예상대로였다. 엄마는 ‘어머! 아들이라니 너무 좋다.’ ‘아들이라서 너무 좋다’ 라고 했다. 나는 화를 내었다.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안 행복했나보네?’, ‘엄마는 나보다 내 (남)동생을 낳을 때 더 좋았어?’ 라고 물었다. 엄마는 흔쾌히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엄마는 아들을 1순위로 원했고, 극심한 입덧에도 불구하고 여자인 나를 낳았을 때 ‘아... 아들 또 낳아야 하네...’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 어떻게 '딸'인 내 앞에서, 이런 말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할 수 있지? 나한테 미안함이란 1도 안 느껴지나보다.
그래, 엄마 세대에는 그럴 수 있다. 아직 남아선호사상이 많이 있었고, ‘대를 이어야 한다’는 사고가 있는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자에게 더 유리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우리 자녀의 시대에는 사라져야 한다.
아들이 든든할 것이라고? 그렇지 않다. 어쨌든 나보다 30살 이상 어린 아이이다. 아이가 남자라고 해서, 엄마를 지켜달라느니 따위의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든 딸이든 내가 보살피는 거지, 남자라는 성별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 다음에 '제2의 남편'처럼 나를 지켜달라는 말은 폭력이다. 남편은 지금 내가 선택한 남편 한명 뿐이고, 내 아이는 성인이 되면 놓아주어야 할 존재이다. ‘딸은 친구 같고’ ‘아들은 엄마를 지켜주네’ 와 같은 말은 강요이고 압박이다. 그 말 때문에 얼마나 많은 딸과 아들들이 엄마에게 정신적으로 구속받으며 살아왔던가...
엄마에게, ‘아들이라[서] 더 좋다’라는 이야기를 내 앞에서 다시는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내 아이가 남자[답게] 자라기를 강요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물이 풍부해도 좋고, 힘이 약해도 좋다(힘이 세도 좋지만). 힘이 약하다고 얕잡아보는 사람이 잘못된 것이지, 내 아이가 힘이 약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내 아이가 여성성을 많이 가져도 좋고, 이 다음에 자녀를 가졌을 때 꼭 본인의 성을 고수하지 않아도 좋다.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해도 상관없다. 그 외에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우리 엄마와 같은 사고를 가진 사람이 더 많겠지. 늘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어느 순간 치고 들어올 편견들과 폭력적인 말들. “남자가 왜 이래”, “남자애가 ***해야지”, “남자애는 이렇게 키우는 거야” 라는 말들이 벌써부터 내 머리를 강타한다.
효를 강요하지도 않겠다. 아이가 낳아달라고 한게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낳은 것이니까, 내가 잘 키워야 하는 의무는 분명히 있되, 아이가 나에게 효도를 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것은 아이의 선택이다. 입덧으로 토를 할 때마다 '아... 이놈아 엄마좀 살려줘... 너 진짜 복수하고 싶다...'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지만, 그래도 어느덧 임신 6개월에 다다르고 있다. 너무 힘겨운 6개월이었지만, 내 선택이고 내가 견딘 것이다. 아이한테 무언가를 바라거나 강요하지 말아야지. 다짐, 또 다짐한다.
그저 내가 할일은... 내 아이가 어떠한 성격을 가지던,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겠다. 아이가 아들이든 딸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