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ide Feb 15. 2020

입덧에 대한 국민청원이 마감되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라도

올해 내 생일을 병원에서 보내면서, 이렇게 사는 것은 진짜 아니다 싶어서 국민청원을 올렸었다.

(처음엔 생각도 못했는데, 산부인과 주치의 선생님이 먼저 제안해주신 덕에 용기를 얻었다)


청원 내용은 [입덧에 대한 보험 적용] 이었다. 임산부에게 들어가는 병원비 상당수가 비보험 처리로 꽤 높은 비용을 자부담해야 하는데, 이것이 부당하다, 보험 적용되도록 해달라는 글을 썼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4475


한달동안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동의를 얻으면, 공개답변이 달린다고 하였다.

한달새 내 게시글에 달린 동의는 587명. 1000명만 넘어도 좋겠다 싶었는데 아쉽게도 목표한 바는 이루지 못했다. 내 나름대로는 맘카페를 비롯하여 다양한 곳에 공유를 요청하는 게시글을 올렸고, 셀럽에 가까운 기 출산 여성 혹은 연예인에게도 공유를 부탁하는 쪽지를 보내고, 언론사 5-6군데에도 메일을 썼지만 크게 이슈화되지는 못한 것 같다.


네이버에서 꽤 규모가 크다고 알려진 맘카페 '맘스*릭'에는  가입자만 무려 286만명이 넘고, 이곳의 임산부 게시판에는 매일같이 입덧과 관련한 호소문이 올라오고 있다.


이들이 그냥 매일같이 맘카페에서 '입덧 때문에 힘드네요, 근데 약값은 너무 비싸네요... 수액값도 너무 비싸네요...' 하고 여자들끼리 투덜거리고 하소연할 것이 아니라, 다같이 들고 일어섰으면 진작에 바뀌었어도 백번은 더 바뀌었을 것을...




임신은 배커지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여자의 몸 속에서는 전쟁과 같은 격변이 일어난다. 자궁이 방광을 압박해서 화장실에 30분-1시간에 한번씩 왔다갔다 해야 하고, 그래도 배뇨감이나 배변감이 시원하지 않고 영 찜찜하다. 자궁이 점점 더 커지면 심장에서 다리까지 통하는 혈관이 원활하지 못해서 다리에 종종 쥐도 난다. 자궁이 골반이나 치골을 눌러서 수시로 찌릿찌릿한 통증이 생기다보니 표정관리가 안된다.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갑자기 표정이 일그러진다거나 하는 등, 당황스럽고 통제되지 않는 순간이 생긴다. 점점 더 배가 불러오면 똑바로 혹은 엎드려 누울 수가 없어서 늘 옆으로 누워서 자야 한다.


단연코 최고봉은... 입덧과 속쓰림 ㅠㅠ 자궁이 위와 식도를 압박하면 속쓰림이 심해진다는데 나는 이미 입덧으로 인하여 토를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식도와 위가 상해서 하루 3번 속쓰림 약을 달고 산지 오래 되었다. 앞으로 남은 6개월동안 더 심해질 일만 남았다는데 정말 무섭다.


어렸을 적에, 임신하면 뱃속의 태아가 16주에 발사이즈가 얼마나 귀여운지 (그래서 낙태하면 안된다는-_-...) 이따위 교육이나 배웠더랬다. 태아 발사이즈 모양의 배지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미쳤지...


임산부가 이렇게 체형의 변화를 겪어가며 고통스러운데, 도대체 실체도 없는 태아 발사이즈 따위나 파헤치고 앉아있으면서 임산부 골반 틀어지고 허리 휘고 이런 건 왜 모른척해?


이건 사회의 인식 문제도 있지만 여자들의 문제도 분명히!! 있다.

여자들끼리 맘카페에서 '우리끼리 하소연 흑흑' 이런것 할 시간에, 우리의 고통을 좀 더 외부에 알리고, 남자들에게도 알리고 했어야 했다.


여자들의 고통은 그저 당연한 거라며, 감내해야 하는거라며, 여자라서 어쩔수 없지 모... 이렇게 하는 것은 세상의 변화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도 열심히 쳐내리기로 한다.

바위가 깨지지는 못하더라도 더렵혀지기라도 하겠지.


계란의 존재를 계속 알려야 할 것이 아닌가.




국민청원 게시글


제목: 임신 중에 발생하는 입덧도 질병 처리 및 보험 적용이 되야 합니다.


내용

저는 임신 12주차이자, 심한 입덧으로 인해 3주째 입원해있는 산모입니다.


흔히들 ‘입덧’이라 하면, 임신하면 으레 겪는 일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사람마다 체질이 각기 다르기에, 누군가는 조금 미식거리다가 지나가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밥도 못 먹고 토하고, 누군가는 1-2달간 고생하지만 누군가는 10달 내내 고생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저처럼, 한달내내 밥을 안 먹어도 토를 하다가 결국엔 위액과 담즙도 토하고 피까지 토하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입덧약’을 처방받았습니다. (이 역시 비보험이라서 약값이 비쌉니다.) 그래도 처음 2주간은 약의 힘으로 구토가 잦아들어서 약의 힘으로 버텼습니다. 하지만, 임신 8주차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먹은 알약을 그대로 토했습니다. 물만 마셔도 토하는, 정말 심각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먹은 게 없어도 위액과 피를 토하는 상태가 되자,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을 급히 관두어야 했고, 집에서도 구토를 반복하느라 나중엔 아예 화장실에 하루 종일 앉아있는 등, 일상생활 자체를 영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입덧으로 인한 치료는 현재 비보험이라고 합니다.(입덧약, 입덧 수액, 입덧 입원 등)

이 때문에 비용에 대한 부담이 커서, 짧은 입퇴원을 반복하는 산모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처음엔 짧은 입퇴원을 반복하였으나, 결국엔 장기입원을 하지 않으면 제 목숨과 태아의 목숨이 위험할 정도가 되어 장기입원 중입니다.


왜 ‘입덧’이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고, 그에 따라 보험 처리도 되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아이가 성장기에 으레 ‘감기’를 겪는다고 해서 감기가 질병이 아니고 비보험 처리가 되는 것이 아니듯, ‘입덧’ 또한 임신하면 당연히 생긴다고 해서 질병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입덧 때문에 산모의 생명에 위험이 생겨서 부득이하게 임신중절을 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태아로 인해 산모의 생명에 위험이 생길 경우 임신중절 사유에 해당됨)

입덧 때문에 다른 사람의 밥 먹는 냄새만 맡아도 토하는 터라, 입덧 환자들은 대게 1인실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다가, 보험이 안 되는 수액을 하루에 3-4번씩 맡다보니, 출산도 안 한 상황에서 이미 천문학적 비용을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저 역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저도, 태아도, 집안 경제도 남아나지 못할 거라는 절박함으로 이렇게 청원을 올립니다.


임신 확정을 받은 후 보건소에서 엽산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물도 못 마시는 상태여서 엽산은 무용지물입니다. 참고로, 보건소에서 무료로 나누어주는 엽산이 잘 안 받아서 못 먹는 산모도 많습니다. 이런 사은품 수준으로 임신을 축하하는 것 정도가 아닌, 임신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을 마련해주시길 바랍니다.


정부에서 저출산 관련하여 많은 예산을 쓴다고 하는데, 임신만 장려한다고 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임신한 산모가 10개월 동안 올곧이 건강을 유지하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뱃속에 어떤 생명체를 둔 상태로 10개월을 견뎌내는 것은 여자 혼자의 정신력으로 버텨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러기를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산모의 건강을 위해, 건강한 산모가 되어 태아를 잘 임신하기 위해,
입덧과 관련한 비용을 보험 처리 가능하도록 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임신, 출산, 육아는 남편과 나의 몫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