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도를 닦는 것이구나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힘든 날이었다.
아기가 3일째 콧물을 흘리고 있고, 어제부터는 코 마저 다 헐어서 인중 부위가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아픈 아기의 짜증은 덤. 여러모로 아기의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였다.
이럴 때는 평소보다 1.5배 가량 더 힘들 것을 각오하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하루의 첫번째 관문, 아침식사. 코가 막혔으니 입맛이 있을 턱이 있겠냐만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우선 밥을 주었다. 역시나, 먹지 않는다. 그런데 아뿔싸. 물을 챙겨주러 일어난 1초, 그 찰나에 아기가 밥그릇을 던져버렸다. 요즘에 힘도 세져서인지, 하필이면 던진 밥그릇이 1미터 너머로 날아갔다.
흐트러진 밥알 파편 앞에서 나의 마음도 파편처럼 흩뿌려졌다. 하... 하지만 오늘은 아기가 아프니까.. 웬만하면 심기를 건드려서 울게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참을 인자를 써가며 밥그릇을 주웠다.
밥을 안 먹으니, 달콤한 바나나를 먹어볼까? 이 역시 먹지 않는다. 어쩌나... 사실 평소엔 이 정도 거부하면 그냥 안 먹이기도 했지만, 오늘은 이비인후과에서 처방받은 독한 약에 항생제까지 먹어야 하니까 그 전에 뭐라도 먹이고 싶었다. 아파서 입맛 없는건 알겠지만, 이렇게 아픈 아이한테 뭐라도 안 먹이면 몸속에서 감기 바이러스가 더더욱 판을 칠까봐... 결국 최후의 보루인 식빵을 주었다. 헉, 이것조차 먹지 않는다. 식빵마저 거부하는 일은 손에 꼽는데. 정말 많이 아픈건가 싶다.
어쩔수 없이 바로 약으로 넘어간다. 이비인후과 약이 써서 그런지 많이 거부하는데, 배즙에 타주면 잘 먹길래 그렇게 먹이고 있다.
아기의 뱃속에 들어간 건 배즙과 약이 전부인데, 부엌에는 흩뿌려진 밥알, 바나나, 식빵 조각들이 휘날린다. 잘 먹는 날은 오히려 식탁이 깔끔한데, 안 먹는 날은 오히려 이렇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든 하루의 시작.
바닥을 바로 닦아내지 않으면, 아기가 밥알을 밟고 걸어가면서 밥알을 온 집안에 번지도록 만들기 때문에 바로 치워야 한다. 아기를 거실에 두고 홀로 바닥을 닦고 있는데 뭔가 조용해서 보았더니, 옆에 와서 물티슈를 다 빼내고 있었다. 오 마이 갓. 그래, 이 정도는 귀여운 측에 속한다.
물티슈를 대충 다 다시 때려넣고, 급하게 아기 등원 짐과 내 출근 짐을 챙겨서 집을 나선다. 내 옷과 가방에도 이런 저런 밥알들이 굴러다닌다. 잠시라도 앉아서 한숨 돌리고 싶은데, 그럴새가 없다.
직장에서 다른 이들이 나에게 "오늘 좀 피곤해보이시네요"라고 물었다. 나는 "애가 아침에 밥을 잘 안 먹어서요"라고 대답했다. 양육의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아이고.. 고생했겠네요"라고 대답한 반면, 그렇지 않은 분들은 크게 와닿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래, 나도 애를 낳기 전에는 애가 밥을 안 먹는게 양육자에게 어떤 힘듦을 선사하는지 피부로 느끼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아침 2시간의, 전쟁과도 같았던 시간을 기록해본다.
밥 먹는 건 하루 3번. 1년 365일동안 1000번도 넘게 반복하는 일이지만, 육아에서 그것은 너무나 다이내믹하고 평범하지 않은 일이다. 밥 먹는 것 자체는 지극히 평범한 일인데, 이걸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게 바로 육아의 세계이다.
나의 인내력이 상승하고 있는지, 아니면 점점 바닥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튼.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힘든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