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하여 대사관을 가다
줄줄 새는 위스키 종이 상자를 집어 들자 팔을 타고 흘렀다. 위스키에서는 꿀냄새가 났다.
교통카드를 잃어버렸으니 전철을 찍고 나올 수가 없다.
줄줄 흐르는 술 냄새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고, 그 시선의 초점인 내 당황함과 아이의 불안함을 보는 일은 2019년 1월 마드리드에서 겪은 일로도 충분했는데 4년만에 또 만나게 되는 이 상황이 견디기 어려웠다.
개찰구가 열려 있었고 아이를 데리고 그대로 술병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걸었다.
꿀이 들어간 술이었기에 내 발은 걸을때마다 찔꺽거렸고
찔꺽이는 발느낌 한 걸음마다 터져나올 것 같은 울음을 삼켜가며 내딛어 숙소를 찾아왔다.
숙소는 비어있었고 적막했다.
3층까지 오르는 계단은 아주 좁고, 어두웠으며 마루는 삐걱거렸다.
돈이 없으니 아이에게 저녁을 사 줄 수 없었다.
캐리어에 들어 있는, 가지고 온 것 중에서 먹을 것을
꺼내 데워주고, 카드 분실 신고를 했다.
집에 있는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아이 엄마의 당황과 걱정, 탄식은 9000km 거리 너머의 대서양을 건너 이 작은 숙소 방안까지 전해졌다.
그에 더해 나의 죄책감과 자책감이 아내의 탄식과 뒤섞여 숨마저 짓눌렀고 그대로 꺼져버리고 싶었다.
그 때, 카톡 알람이 울렸다.
내 카드를 가져간 이는 과감하게 도난 카드로 결제를 시도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누군가는 내 돈을 쓰면서 카드까지 결제하려고 하는구나'
무엇을 해야 할지 딱 멈춰졌다.
한밤 달려오는 거대한 트럭 라이트 불빛을 마주하고 로드킬의 운명앞에 선 고양이 같았다.
아내가 몇 가지 방법을 찾아 제시했다.
- Western Union이라는 곳을 찾아라. 카카오뱅크로 송금이 가능하다.
- 대사관의 긴급 송금 서비를 이용해라. 돈을 넣어주겠다.
나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첫 번째 방법은 너무 불확실했다. Western Union의 시스템을 믿을 수가 없었고 어느 지점에 가야 하는지도통 머리가 멈춰서 작동하려 하지 않았다.
충격이란 사람의 뇌 활동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은 소설의 극적 소재만이 아님을 경험했다.
숨을 고르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송금해서 영국대사관에서 받으려면 ....
시차는 8시간 차이.
'대사관은 9시에 문을 열겠지. 한국 시간으로 이미 오후 5시다. 그러면 9시까지는 대사관에 가야 돈을 받을 수 있겠구나.'
다음 날 아침,
시차 적응을 못한 아이와 나는 아침 일찍 눈을 떴고
컵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을 먹고 대사관으로 갈 채비를 했다.
그런데 대사관에 갈 차비가 없다.
신용카드가 있었으면 바로 구매할 수 있었을텐데, 유로를 환전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아침 8시에 문을 연 환전소는 없었다.
어떻게 대사관까지 갈까. 그냥 무임승차를 하면 된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혼자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다 보고 있다. 아이에게 '우리가 돈이 없어서 이번만 그냥 몰래 타자'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차비를 구한다는 말인가.
또 한 번 좌절했고 막막했다.
'길에서 구걸하고 앉아 있는 게 가능한 일이구나.
나도 그렇게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돈 좀 달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일단 역으로 가면 무슨 수가 생기겠지 하면서 3층 계단을 내려왔다.
2층집 문이 보인다.
어제 숙소를 찾아올라오면서 우리 숙소인지 알고 열쇠를 넣어 문을 열려고 했던 집이다.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었다. 벨을 눌렀다. 무작정 눌렀다.
아침 8시20분이었다.
할머니가 나왔고 나는 '돈을 잃어버렸다. 오늘 저녁에 갚을테니 20파운드만 달라' 고 했다. 내 영어가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내 존재 자체가 위협이고 이상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아들과 통화중이었고 아들과 통화하라고 했다.
나는 더 간절한 목소리로 아무 의무도, 호의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인연이라고는 먼지 한 자락도
없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돈을 달라고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20파운드 지폐를 내 밀었고
두 번이나 감사의 절을 했다. 그건 인사가 아니라 '절'이었다. 내 절박함을 알아주는 그 마음에 대한 '절'이었다.
전철역으로 향하다보니 아내가 말한 그 은행이 보인다.
조금 더 떨어진 역으로 가는 동안 이 노란색의 Western Union은 세 곳이나 있었다.
이 지역이 아랍인들 밀집 거주 지역이라 이런 송금서비스가 많이 필요한 곳이라는 것은 이 숙소를 떠날 즘
다섯밤이나 지나서야 이해했다.
전철역으로 가서 아이와 내가 오늘 하루 내내 탈 수 있는 원데이 트레블 티켓을 살려고 보니
21.5 파운드이다. 하..... 하....
또 한번 구걸의 위기다.
내 표 한장만 사서 아이와 같이 다닐 수도 있지만
아이도 모니터에 적힌 금액을 볼 줄 아는 나이다.
우리 둘이 다니기 위해서는 21.5 파운드를 주고 표를 각각 한장씩 사야 한다는 것을.
역무원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조금 떨어진 더 큰 역으로 가 보란다. 거기서는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다시 걷는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길이었고 이미 시계는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가 묻는다.
"우리 어디 가는거야?"
"응, 저기 가면 큰 역이 있대. 거기 가 보자"
역시 아무런 의미도, 희망도 없는 말을 허공을 향해 하듯
아이에게 건넨다.
역에 거의 다 와 갈 즈음
주황색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Money Transfer
사설 환전소다. 50유로를 꺼내 환전을 한다. 환전상은 정말 이 적은 금액을 환전하려는지를 묻는다.
얼마가 필요하고, 얼마가 더 들지 모르는.
아직 18박 19일이 남은 이 여행을 위해
나는 더 큰 돈을 바꿀수가 없었다.
그렇게 21.5 파운드로 티켓을 사서 대사관으로 향한다.
대사관으로 가는 환승역. 기차역은 런던스러웠다.
런던에서도 아주 중심가에 위치한 한국 대사관
대사관 직원은 친절하려고 애썼으나 그 말투와 태도는 정말 딱딱했고, 형식을 갖춘 귀찮음이 단박에 느껴졌다.
이어 나에게 코로나 때문에 가까이 오지 말고 테이블 건너에 서서 이야기 하라고 했다.
길에서 마스크 쓴 사람이라고는 나와 아이 밖에 안 보이는 이 런던에서 말이다.
송금 환율은 은행보다 더 비싸다.
한국에 전화해서 보이스피싱이 아님을 미리 알려둬라.
00은행을 이용하면 추가로 수수료가 더 많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어라.
긴급 송금 받는 절차를 직원은 설명했고, 송금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아내가 충실히 수행해 주었다.
보통 1시간 이상 걸린다는 과정을 30분만에 끝내서
300파운드를 송금받았다.
휴....................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
아이 손을 잡고 구글맵에 저장해 둔 식당으로 간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변한 런던은
과거에 내가 여행했던 그 런던이 아니었다...
아이와 나는 계산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울상이 되어버렸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