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의 인연
대학생 때 생계로 이런저런 알바를 많이 했었다. 아르바이트 한 번 하지 않고 대학교를 졸업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스무 살 때 상경해서 새로운 자취생활의 기쁨을 누린 것은 잠시였다. 아무렇지 않게 예쁜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학비 걱정 없이, 비싼 교재비 걱정 없이 대학 생활을 하기에는 내겐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때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꽤나 애를 썼던 것 같다. 하지만 학교에서 하는 공공근로에 학생회에 추가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살이 빠져가는 나를 보며 주위 친구들은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학교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공부를 하는 친구들을 보며 ‘참 여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이름이 붙여진 소위 카공족인 것이다. 나도 커피를 좋아하고 카페에 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학교 옆 카페에 ‘단골’까지 되어가면서 죽돌이가 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커피 가격에 나는 결코 될 수 없었던 카공족. 자연스레 카페에 가는 발걸음도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알바를 구하고 있는 순간 꿈의 알바를 접하게 되었다. 커피가게.
서울의 한 유명한 직장 빌딩가에 있는 테이크아웃 가게였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알바 급여도 인상해주고, 새벽 오픈 시간대부터 점심시간까지만 일 하는 그 카페가 괜찮을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드디어 작은 테이크아웃 전문점에서 처음 커피 일을 하게 되었다.
때는 추운 겨울이었다. 6시쯤 일어나서 출근을 하려니 해가 뜨지 않은 깜깜한 시간에 몸을 일으켜 겨우 자취방을 나왔다. 몸이 어찌나 무겁고 아침 시간은 얼마나 춥던지.
지하철 역에 도착해서 카페로 향하는 길에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했고, 자전거로 계란을 배달하는 아저씨, 신문배달 아저씨, 우유배달 아저씨, 식당에 일하러 나온 아주머니, 아침 장사를 시작하는 사장님들이 새벽을 열고 있었다. 조금 더 있으면 회사에 출근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지나갈 것이다.
깜깜한 흑색에서 점점 푸른색으로 밝아지는 하늘을 보며 내가 부지런한 사회 구성원이 되어 오피스가의 아침을 여는 기분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자고 있을 시간인데 누군가는 이렇게 열심히 하루를 시작하고 있구나! 하면서.
일은 꽤 힘든 편이었다. 때는 너무 추운 겨울이었고, 새벽이었고, 테이크아웃 전문점이라 매장 내부에 난방 시설도 잘 되어 있지 않았다. 외부에 있는 화장실은 너무 관리가 되지 않아 가고 싶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건 오픈을 하는 업무라 얼음보다 차가워진 쇠 자물쇠를 맨손으로 열고 냉기로 가득 찬 가게에 내가 처음으로 들어가 작은 온풍기로 가게를 한참 데워야 했던 점이다.
그때 나는 열심히 일 했지만 두 달을 성실하게 마치고 학업과 실습을 핑계로 일을 그만두었다. 힘도 들었지만 더욱이 냉장고를 드는 일 때문에-내가 할 수 없다고 사장님께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이 들자고 해서–허리를 크게 삐끗하여 그 후로 몇 년간은 허리 때문에 꽤 고생을 했었다. 고된 겨울 아침의 알바는 두 달간의 짧은 경험으로 마무리되었다.
내 생애 두 번째 카페는 그야말로 꿈의 북카페였다. 북카페가 유행하기도 전인 것 같은데, 정말 많은 책들과 공연할 수 있는 공간, 너무 잘 갖추어진 주방, 쾌적한 실내 공간과 야외 테라스까지 갖춘 카페였다. 이 곳에서 일을 하면 내가 이 곳의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도 잠시, 카페가 너무 유명해지면서 일의 강도가 몇 배로 세졌고, 나는 매일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기 일쑤였다. 결국 임금 인상이나 추가 직원 채용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해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꿈의 북카페를 떠났다.
그런데 취직을 하고 신기한 일이 생겼다. 생계로 카페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며 힘들게 보냈던 경험들이 내가 가진 장점으로 되돌아올 줄이야!
직장 일의 일부가 커피를 가르치기 위해서 물건들을 사고 커피 머신이며 교육실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나는 어깨너머로 배우고 몸에 익힌 경험을 제대로 살려 일을 잘 해낼 수 있었다.
나는 서점에 가서 커피에 관련된 이 책 저 책을 구입하여 읽어보고 커피 공부를 했다. 처음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한 커리큘럼을 만들고 다큐멘터리와 관련 영상은 다 찾아보았다. 열성을 다해 가르쳤고, 내가 돕는 대상을 위한 비매품 교재를 몇 날 며칠 야근을 하며 만들었다.
벌써 십 년 전이라 그때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일을 쉬는 날에도 커피를 배우고 가르치며 가르친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흘러 직장생활이 8년 가까이 되었을 때 , 매장 현장이 얼마나 힘든 건지를 잊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힘들 걸 알면서도 좋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진짜 경험’은 하지 못해서 몰랐던 걸까.
일부 커피 관련 업무를 계속하며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커피를 내어주고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내가 마음이 이렇게 뿌듯한데.’, ‘사람들이 나의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좋은데.’ 하며 자연스럽게 ‘나의 카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서서히 키워갔다.
결국 매 년 그만두고자 했지만 매 년 그만두지 못했던 꽤 오래된 직장일을 ‘정말로’ 그만두고 카페 창업을 하게 되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자영업 사장이라는 불안정한 직장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